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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형의 M&M] 그 한마디, 따뜻한 커피처럼

The Ink Spots - Java Jive

이윤형 기자 | lyh@newsprime.co.kr | 2017.11.24 16:39:15
[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민요 '아리랑'도 다양한 지역특색은 물론, 한국 근세의 민족사와 사회상까지 반영하고 있죠.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usic & MacGuffin(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천냥 빚도 갚을 수 있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는 타인을 온전하게 생각하는 진심이 담겨있을 때 진정성을 더합니다. 하지만 말뜻이 같더라도 인사치레로 건네는 호의는 오히려 듣는 이에게 스트레스를 줄 수도 있는데요. 

진심이 없다는 건 둘째 치고, 민감한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둘러대는 껍데기 같은 말이라면 듣는 이의 기분에는 거북함은 물론 답답함과 울화통까지 덤으로 얹혀질 것입니다.

열일곱 번째 「M&M」에서 음미할 곡은 미국 흑인 보컬 그룹 잉크 스파츠(The Ink Spots)의 자바 자이브(Java Jive)입니다. 

1934년 미국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에서 결성된 4인조 그룹 잉크 스파츠는 매력적인 보컬 하모니로 라디오를 통해 미국 전역의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크로스오버적 성공을 거둔 그룹입니다. 

미국 흑인 보컬 그룹 잉크 스파츠(The Ink Spots). ⓒ 구글 이미지 캡처


인기에 힘입어 1940년에 작곡된 카페인 찬양가 '자바 자이브'는 경쾌한 분위기와 중독성 있는 오스티나토 기타 인트로(일정한 음을 같은 높이로 반복하는 연주법, 곡 초반 '딩기딩딩-딩기딩딩' 처럼 들리는 부분) 그리고 재치 있게 담아낸 말장난 같은 가사로 대중들에게 더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수많은 아카펠라 그룹들이 리메이크하기도 했죠. 

이 곡은 화자가 의도적으로 의미를 숨긴 노래는 아닙니다. 이 곡에서 의역이 필요한 것은 제목 정도일 텐데요. 커피로 유명한 인도네시아 자바섬(Java Island)을 단순하게 '커피'의 의미로, 재즈 연주의 독특한 리듬감인 스윙을 뜻하는 '자이브'를 사용해 '커피를 즐긴다' 정도의 해석이 가능합니다.

의미도 의미지만 이 곡은 화자가 하고 싶은 말을 돌려 전달하는 노래도 아닌데요. 단지 인트로가 흘러나오는 순간 카페인 중독자처럼 커피를 마시고 싶어질 뿐이죠.

난 커피를 사랑해. 홍차도. 난 자이브도 사랑해 그것도 날 사랑하고. 커피와 홍차. 자바와 나. 한 잔, 한 잔, 한 잔, 한 잔, 한 잔. 난 자바를 사랑해. 달콤하고 뜨겁거든. 앗 모터씨 저는 커피포트입니다. 저에게 한 잔 따라줘요. 한 잔 더할게요. 한 잔, 한 잔, 한 잔, 한 잔, 한 잔. 

(…) 아, 예쁜 머그잔에 한 잔 따라주세요. 밴드에서 노래하기 전까지 지르박을 출거예요. 5센트짜리 동전을 포트에 넣어줘요. 조 천천히 잡아. 웨이터 웨이터 여기에. 난 커피를 사랑해 홍차도 (…)

이 노래 대부분의 가사입니다. 사실 전부라고도 할 수 있죠. 앞서 말했듯이 이 노래는 큰 의미 없는 커피 찬양가일 뿐인데요. 분명한 것은 노래를 듣자마자 자동반사적으로 커피를 생각나게 만드는 강력한 힘을 가진 곡이라는 것이죠.

인트로가 흐르자마자 커피를 찾게 되는 이 노래처럼 곤란한 질문엔 진심 없이 기계적으로 따뜻한 말을 건네는 사람도 존재합니다. 

"추운데 들어와서 커피 한잔씩 해. 응? 차 한잔씩 해. 추운데 빨리 들어가" "내가, 내가 (커피) 쏠 테니까 자, 얼른 와 주문들 해" "날씨가 추운데 어떻게 왔어?"

정말 따뜻하죠. 이 정 넘치는 말들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부터 자원외교 비리 수사와 군 사이버사령부 여론조작 혐의 등 전직 대통령을 향한 새 정부의 적폐청산과 관련 검찰수사에 대한 질문을 던진 취재진에게 건넨 말들을 나열한 것인데요.

저 정도 말은 곤란한 질문을 회피하기 위해 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지난 2015년 4월20일 자원외교 관련 비리 의혹 수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일명 '성완종 리스트'를 남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MB맨'으로 불리는 것과 관련한 질문에는 "듣고 싶은 얘기를 하루 종일 따라다녀도 못 들어, 가서 빨리 커피나 마셔"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MB 정권이 당시 자원외교 정책을 추진했고 나랏돈을 29조원이나 날린 당시 사건에서 그는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안하무인격 태도로 무책임한 말을 내뱉은 것이죠. 

최근 검찰의 '적폐청산' 수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을 향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의 국정원 댓글공작 수사와 다스 실소유주 논란은 물론 MB 정부 대표사업으로 불리는 '사자방(4대강·자원외교·방산비리)' 관련 의혹도 재점화되고 있습니다. MB 정부가 국정원과 군을 동원한 불법적 정치 개입 의혹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청산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자원외교 비리와 관련된 질문을 한 취재진에게 커피나 마시라고 말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 Jtbc 뉴스 캡처


그럼에도 이 전 대통령 측은 아직까지 일언반구의 말도 없습니다. 지난 12일 바레인 정부 초청으로 출국장 앞에서 새 정부의 적폐청산에 대해 "지난 6개월간 적폐청산을 보면서 이것이 과연 개혁이냐, 감정풀이냐 정치보복이냐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고 불편한 감정을 드러낸 게 전부입니다. 

이 전 대통령은 바레인 출국 이전부터 공식석상엔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습니다. 때가 되면 입장을 표명하겠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쓴 지도 58일이 지났죠. 제대로 짚지 못한 적폐들은 산적해있는데 말입니다. 

바레인 일정 이후 아직까지 특별히 알려진 일정은 없지만, 일정이 알려진다면 여느 때처럼 취재진들은 짧게나마 입장을 듣기 위해 모여들 것입니다. 이 전 대통령이 관련 질문을 피할 때 으레 둘러대는 말이 커피라는 점에서 취재진들 사이에서는 입장을 들으러 간다는 말을 '커피 얻어먹으러 간다'는 말로 사용하기도 한다는데요.

언젠간 또 커피를 사준다는 말을 들을 기회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국민들은 겉만 따뜻해 보이는 거짓 호의보다는 시원한 입장표명과 적극적인 수사 협조를 원한다는 것을 알기 바랍니다. 노래를 들으면 생각나는 한 잔의 커피처럼 궁금한 질문엔 듣고 싶은 얘기들 듣고 싶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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