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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해부] 코오롱 ⓶정권교체와 함께 식은 '물(水)사랑'의 기억

4대강사업과 동고동락, 코오롱워터는 어디로?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7.11.24 17:34:24

[프라임경제] 2015년 기준 대한민국에는 1만2460개의 기업이 존재하며 이 중 대기업의 반열에 오를 수 있는 것은 상위 0.1%의 몫이다. 한국의 대기업은 세계 유례없는 독특한 DNA를 품고 있는데, 창업주 일가의 개인적 성공에서 태동했다는 것이다. 속도전과 다름없었던 근대화의 역사 속에서 차고 넘쳤던 기회를 거머쥔 이들은 '재벌'로 불리며, 성장과 승계를 거듭해왔다. [기업해부]는 창업주의 손을 거쳐 탄생한 작품이자 후계자의 손을 통해 새롭게 디자인된 현재, 또 미래의 가치를 톺아보는 과정이다.

코오롱은 올해 자본총액 기준 재계 순위 32위(9조6430억원)의 중견그룹으로 총 40개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최근 코스닥에서 무섭게 상승 중인 티슈진 등 제약·바이오계열사들이 주목받고 있지만 핵심은 여전히 코오롱인더스트리다. 화학·패션·소재업을 주도하며 작년 그룹 매출의 49.2%를 거둬들였고, 전체 자산의 절반이 넘는 52.7%를 혼자 독식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24일 코오롱인더스트리 구미공장을 찾은 이웅열 코오롱그룹 회장이 노사 상생동체의 일환으로 진행된 통관창고 외벽 도색작업을 마치고 김연상 노조위원장을 비롯한 직원들과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 뉴스1 (코오롱 제공)

또 다른 축은 건설·부동산·무역업을 주력으로 하는 코오롱글로벌인데, 이들 두 회사가 전체 그룹 매출의 86.8%를 거둬들였을 정도다. 그런 코오롱이 10여 년 이상 수처리, 환경관리 분야에서 상당한 저력을 보였음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먼저 2004년 코오롱캐피탈의 470억원대 횡령사건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단일 금융사로는 역대 최대 규모였고 담당 임원이 구속됐는가 하면 이웅렬 회장과 코오롱제약 등 계열사가 상당한 규모의 유상증자에 참여해야 했다.

사건의 충격파로 코오롱은 430여명을 감원하고 이듬해인 2005년 구미공장 근로자 80여명을 추가 정리해고하면서 노사관계마저 삐걱거렸었다. 회사의 조직적인 횡령 정황이 곳곳에서 포착됐지만, 직원들의 일방적 희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 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직장을 잃은 직원들은 해고무효 소송을 내며 맞섰지만 대법원은 4년 만인 2009년 코오롱에 유리한 쪽으로 결론을 냈다.

다만 일련의 상황을 거치면서 코오롱에 대한 평판과 사세는 안팎으로 적잖은 타격을 입었고, 결과적으로 정부 시책과 궤를 맞춘 신성장 동력 확보는 탁월한 출구전략이 됐다.

◆'470억대 횡령스캔들' 출구전략 보니…

2010년 이웅열 회장은 '2015년까지 연매출 2조원 규모의 세계 10대 수처리기업으로 성장하겠다'고 선언했다. 코오롱워터텍(현 코오롱이엔지니어링)을 위시한 코오롱의 수처리사업은 '한반도대운하'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4대강 사업)으로 이어지는 이명박 정권의 핵심과제와 결이 같았다.

2012년 민주노총 회원들이 대검찰청 앞에서 이상득 전 의원의 코오롱 그룹 불법정치자금 수수 고소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노총 측은 검찰과 사법기관이 이 전 의원의 저축은행 관련 수수만 수사할 뿐 금품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있는 코오롱그룹에 대해서는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 뉴스1

다만 이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이 1980년대 코오롱, 코오롱상사 사장으로 재직했고 선대 회장인 이동찬 명예회장과 경북 포항 출신의 돈독한 관계라는 점은 일종의 주홍글씨가 됐다.

실제 박근혜 정권 출범 직후인 2013년 국세청은 코오롱을 상대로 비자금 관련 세무조사를 벌였고, 이 전 의원은 불법정치자금 수수혐의로 1심 재판에서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명박 정권과 코오롱을 잇는 중요한 고리가 하나 더 있다. 김동찬 회장의 비서실장에서 그룹 부회장에 올라 이웅렬 회장을 지근 보좌한 김주성 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이다. 그는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세종문화회관 관장으로 자리를 옮겼고 2008년부터 2년 넘게 국정원 안살림을 도맡았다.

그를 누가 정권 실세 중 실세 보직으로 앉혔는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사회생활 대부분을 코오롱에서 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배경을 짐작할 수 있다. 검찰은 과거 국정원 '블랙리스트' 기획자로 김 전 기조실장을 지목하고, 지난 9월 그를 출국금지 조치했다. 김 전 실장은 검찰 수사가 본인을 향하자 10월 초 한화테크윈 사외이사 직함을 내려놨다.

오너일가와 MB정권의 유착의혹은 4대강 사업에서도 일부 담합행위 적발과 맞물려 관련 계열사들은 코오롱의 '빛'에서 '그림자'로 처지가 뒤바뀌었다.

대표적인 것이 5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된 4대강 총인사업과 코오롱워터텍이다.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2013년 당시 한 문건을 공개했는데, 이는 코오롱워터텍이 4대강 수질개선작업의 핵심인 총인사업에 참여하면서 심의위원과 관계 공무원들에게 10억원대 금품을 2009년부터 3년에 걸쳐 뿌렸음을 입증하는 자료였다.

지역별 프로젝트에 따라 영업비 현금집행 내역이 포함됐는데 일례로 진주총인의 경우 심의위원과 지방자치단체에 각각 1200만원, 1350만원을 할당했고 구체적인 살포시기도 책정돼 있었다.

◆물관리 수직계열화, 작년에 '산산조각'

당시 코오롱워터텍 말고도 코오롱그룹은 코오롱워터앤에너지(코오롱워터·현 환경관리), 코오롱엔솔루션, 코오롱환경서비스 등 줄잡아 4~5개의 관련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었다. 3년 전인 2014년까지만 해도 이웅열 회장은 과감한 출자와 인수합병(M&A)를 추진하며 물사업에 열정을 보였었다.

이 회장이 80%, 특수관계인까지 합치면 지분율이 95%에 달하는 코오롱워터텍은 이 회장 개인 회사에 가까웠다. 또 코오롱환경서비스 등 다른 계열사 역시 이 회장이 직접 유상증자에 참여하고 캐나다 폐기물 처리업체와의 합작, 또 다른 글로벌 기업과의 합병을 속속 성사시키며 공격적 투자에 열심이었다.

그러나 4대강 담합정황을 예의주시하던 공정거래위원회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의 의혹 공세를 피하지 못한 채 2015년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글로벌 10대 물관리 업체를 표방했던 이 회장의 포부가 완성되기 직전이었다.

코오롱워터텍은 2014년 6월 코오롱이엔지니어링으로 사명변경이 확정되자 간판에서 '워터텍'을 뗐다. 연간 매출이 2000억원이 넘는 코오롱워터는 작년 8월 보유지분 전량을 매각하면서 그룹과 완전히 결별했다.

결국 수처리제를 만드는 코오롱생명과학부터 '코오롱인더스트리(수처리 분리막 모듈생산)-코오롱글로벌·코오롱워터텍(시공·기자재)-코오롱워터앤에너지(하수처리기술 보유)-코오롱환경서비스(관련 시설관리)'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 고리가 산산이 깨졌다.

과거 "이웅열 회장이 직접 관여된 사업 영역인 만큼 전사적인 차원에서 역량을 집중할 가능성이 높다"던 업계의 분석도 무색해진 셈이다.

특히 작년 8월 코오롱워터의 매각 과정은 상당히 복잡했다. 회사의 전신은 환경시설관리공사로 환경관리공단의 100% 자회사, 즉 공기업이었다. 그러나 2000년 민영화 대상이 되면서 2007년 코오롱에 인수된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인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치자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 계열 사모펀드(PE)인 핀벤쳐스가 재무적 투자 명목으로 지분 34.99% 받아갔는데, 지난해 두 주체가 보유했던 지분 전량(99.37%)이 '이엠씨홀딩스'라는 새로운 법인에 팔렸다.

코오롱워터앤에너지라는 이름으로 코오롱그룹의 수처리 계열사 핵심이던 '환경관리 주식회사'는 작년 8월 외국계 투자법인에 전격 매각됐다. 나이스(NICE)기업평가의 최신 평가리포트를 보면 여전히 관계사로 코오롱 계열사 다섯 곳이 명시돼 있다. 이엠씨홀딩스는 조세회피처인 케이만군도를 주투자무대로 삼은 신생법인이며 환경관리는 원래 환경관리공단 산하 공기업이었다. ⓒ 나이스기업평가 보고서 캡처


투자업계에서는 매각 원인으로 핀벤쳐스와의 풋옵션 계약을 꼽는다. 코오롱은 재무적 투자 조건으로 코오롱워터앤에너지의 증시 상장을 내걸었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16년 3월31일까지 코오롱워터앤에너지가 상장에 실패할 경우 핀벤쳐스는 이듬해 3월31일까지 4.35%의 이윤을 붙여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할 수 있고 규모는 650억원 상당이었다.

재무적 부담이 적지 않은 탓에 코오롱은 작년 5월 회사에서 발전사업 부문을 '코오롱에너지'로 떼어내고(인적분할) 양측이 지분 교환을 통해 코오롱이 발전부문을 회수하는 식의 매각을 결정했다.

코오롱워터앤에너지를 사들인 이엠씨홀딩스의 외국인투자기업 기본정보 내역. ⓒ 산업통상자원부

눈에 띄는 것은 환경관리를 품은 이엠씨홀딩스의 정체다. 외국인투자기업기본정보를 살피면 업체는 비즈니스서비스업을 하는 비금융지주회사인데, 작년 6월16일 외투기업으로 최초 등록된 신생법인이다.

부각되는 것은 대표적인 조세회피처 중 하나인 케이만군도를 대표투자지역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업신용평가사를 통해 확보한 환경관리 주식회사의 최근 기업평가 자료에 여전히 코오롱 지주사 등 5개 그룹사가 관계사로 명시돼 있다는 점이다.

상법상 '관계사' 또는 '관계회사'라는 명칭은 특정기업에 종속된 회사를 가리키며 흔히 일정비율(20%) 이상의 지분을 출자했을 때 관계사라고 칭한다.

어쨌든 공기업 민영화를 통해 연간 2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낳는 유망한 수처리 전문기업이 민간업체를 통해 해외자본, 특히 조세회피처를 무대 삼은 업체 손으로 넘어간 셈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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