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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해부] 현대중공업그룹 ②지분구조…지주사 전환, 3세 승계 본격화

정기선 부사장, 초고속 승진 · 알짜 자회사 대표직 밀어준 배경은?

전혜인 기자 | jhi@newsprime.co.kr | 2017.11.30 15:32:03

[프라임경제] 국내 대기업들은 대내외 경제상황과 경영방향에 따라 성장을 거듭하거나, 몰락의 나락으로 내몰리기도 한다.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고 있다. 국내산업을 이끄는 주요 대기업들의 '선택'과 '집중'을 파악해보는 특별기획 [기업해부] 이번 회에는 현대중공업그룹 2탄 지분구조에 대해 살펴본다.

2002년 현대그룹에서 떨어져 나와 홀로서기 시작한 현대중공업은 올해 또 한 번 대격변을 맞았다. 지난 4월 사업부문별 인적분할을 통해 △현대중공업(009540) △현대로보틱스(267250) △현대건설기계(267270)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267260, 이하 현대일렉트릭)으로 분사하며 지주사 전환을 선언한 것이다.

현대중공업이 모든 사업을 총괄해 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010620)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구조를 깨고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가 3개 상장사와 2개 비상장사를 자회사로 보유하면서 '지주사-자회사-손자회사'로 이어지는 지분정리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다.

◆현대중공업지주 마지막 과제 '순환출자 정리'

현대중공업 기업집단은 올해 11월 현재 상장사 및 비상장사를 포함해 총 28개의 계열사로 이뤄져 있다. 현대중공업의 신규 지주사인 현대로보틱스가 △현대중공업 27.84% △현대일렉트릭 35.62% △현대건설기계 32.11% 3개의 상장사와 △현대오일뱅크 91.13% △현대글로벌서비스 100% 2개의 비상장사를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다.

지난 4월 신규상장 당시 현대로보틱스가 다른 자회사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분은 13.37%에 불과했다. 지주회사는 상장 자회사 지분을 20% 이상(비상장 자회사는 40% 이상) 보유해야 한다는 행위제한 규제를 충족하기 위해서는 최소 7% 이상의 추가 지분 확보가 필수적인 상황이었다. 

이에 지난 8월 주주들을 대상으로 공개매수 물량을 접수한 끝에 △현대중공업 820만주 △현대일렉트릭 52만주 △현대건설기계 38만주를 사들이는 한편, 해당 주주들에게 현대로보틱스 신주 424만주를 배정하는 현물출자를 통해 지분율을 끌어올렸다.

이어 현대미포조선이 분사를 통해 보유하게 된 현대일렉트릭·현대건설기계 지분 7.98%를 매수하고 유상증자를 진행하며 지주사의 영향력을 더욱 확대했다.

최근 현대미포조선이 보유하고 있던 하이투자증권 및 이하 금융계열사를 DGB금융지주에 4500억원 규모로 매각하면서 지주사 전환 작업은 사실상 마무리 절차를 밟고 있다. 공정거래법에 따라 산업지주회사가 금융사를 소유할 수 없으므로 순리에 따른 조치로 볼 수 있다. 

현대중공업이 호텔현대를 매각하면서 현대중공업기업집단의 계열사 수는 28개로 줄었다. 현대미포조선과 DGB금융지주 간 하이투자증권 매각 절차는 다음해 초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 프라임경제

그룹은 현대로보틱스의 사명 변경도 함께 추진 중이다. 지주사에 어울리는 새 이름으로 2기 전성기를 맞이하겠다는 각오다. 가칭 '현대중공업지주'로 불리는 현대로보틱스의 차기 대표는 권오갑 현대중공업 부회장이 내정됐다. 

물론 현대중공업그룹이 완벽한 지주사 체제를 완성하기까지 몇 가지 넘어야 할 산이 남았다. 첫째는 현대중공업 조선3사의 순환출자 구조를 끊는 것이다. 현대중공업은 2012년 삼호중공업 인수 이후 15년 동안 '현대중공업→현대삼호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중공업'으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구조를 유지해왔다.

그런데 올해 초 인적분할로 '현대로보틱스→현대중공업'의 고리가 하나 더 생기면서 현대삼호중공업은 규정상 증손회사인 현대미포조선의 주식을 아예 털거나 100% 전량을 인수해야 한다. 회사로서는 현대중공업에 보유지분 42.3%를 넘기는 것이 좀 더 유리한 상황이다. 

이에 비해 현대미포조선은 지분 정리가 거의 마무리했다. 지난 4월 인적분할을 통해 쥐게 된 현대로보틱스 지분 7.98%은 지난 6월 털었고, 8월에는 현대일렉트릭 및 현대건설기계 지분을 로보틱스에 넘겼다. 지난달에는 보유 중이던 현대중공업 지분 중 3.2%를 2543억원에 매각하면서 잔여 지분이 4.8%까지 줄어 홀가분한 상태다.

남은 것은 비상장사인 태백풍력발전과 태백귀네미풍력발전인데 추가매입대상 지분은 5%에도 못 미치지만 구조조정이 한창인 가운데 비주력 사업인 풍력발전 자회사에 여유자금을 투입할 수 있을지 불확실하다. 일각에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오너 3세' 정기선, 불황 속 초고속 승진

한편 현대중공업그룹은 지난 14일 '세대교체'를 키워드로 내세운 사장단 인사를 단행했다. 눈에 띄는 것은 현대중공업 최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의 장남이자 오너 3세인 정기선 부사장의 승진이다.

1982년생인 정 부사장은 2009년 대리로 현대중공업에 처음 입사한 뒤 해외유학을 떠나 2013년 부장 직함으로 복귀했다. 이듬해 상무보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상무 직함을 달았고, 다시 2015년에는 전무로 승진해 올해 부사장에 올랐다. 매번 최연소 기록을 갱신하며 초고속 승진을 거듭한 셈이다.

현재 현대중공업에서 선박영업부문장과 기획실 부실장 역을 겸직하고 있는 정 부사장은 이번 인사를 통해 현대글로벌서비스의 대표이사 부사장으로도 내정됐다.

현대글로벌서비스는 지난해 말 현대중공업에서 물적분할을 통해 분사된 신규법인이다. 그룹 안팎의 선박 A/S와 정비를 담당하는 부서를 따로 떼어 설립한 회사인데 매분기 영업이익률이 30%를 웃돌아 가장 수익성이 좋은 알짜 계열사다. 이를 두고 3세 승계를 위한 사전정지작업의 일환이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인적분할 전 정 부사장이 보유한 현대중공업 지분은 0.1%도 안 되는 617주에 불과했는데 업계에서는 정 부사장이 부친인 정 이사장의 지분 10.15%를 증여세까지 감수하며 넘겨받는 것 자체가 상당한 부담이라는 평가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 분할하고 지주사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정 이사장의 지배력은 과거와 확실히 달라졌다. 분할 받은 자사주를 처분하는 과정에서 지주사 지분율을 25.8%까지 확대한 덕분에 증여세를 납부할 수 있는 소위 '실탄'이 마련된 셈이기 때문이다. 사업 효율성 제고라는 표면적 명목과 달리 지주사 전환 자체가 경영권 승계라는 진짜 목적을 숨기고 있다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정기선 부사장은 선박영업부문장으로 해외 수주활동에 보폭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은 지난 5월 정 부사장(왼쪽)이 사우디 바흐리와 맺은 스마트십 부문 협력 MOU 체결식에 참석하고 있는 모습. ⓒ 현대중공업

정 부사장은 그동안 선박영업부문장으로 현대중공업의 해외수주에 매진해 왔다. 업황 악화로 대내외 환경이 불확실한 와중에 중동을 중심으로 속속 일감을 따내 능력이 출중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내년 사우디아라비아 등지에서 발주될 선박 관련 우선협상권을 따낸 것도 정 부사장의 성과로 인정받고 있다.

다만 정 부사장이 초고속 승진을 거듭하는 동안 벌어진 경영악화의 책임과 후폭풍은 고스란히 평범한 임직원들의 몫으로 돌아갔다는 점에서 책임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현대중공업에서 희망퇴직 등 인력감축을 통해 약 300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협력업체와 분사 인력을 더하면 배 이상의 가장이 직장을 잃었다는 전언도 나왔다. 

극단적인 감원에 힘입어 현대중공업은 어느 정도 위기를 벗어난 모습이다. 그러나 지난 8월 프랑스 선사 CMA-CGM이 발주한 2만2000TEU급 초대형 컨테이너선 수주전에서 중국에 밀린 것은 일종의 경고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초대형 컨테이너선은 가장 대표적인 고부가가치 선종으로 꼽힌다. 기술력이 중요한 만큼 지금까지 우리나라 조선사의 독무대나 다름없던 영역이었고 당시 현대중공업도 "조만간 수주 소식을 전할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내비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수주실패라는 최악의 결과를 두고 업계에서는 일방적인 인력 구조조정 과정이 가져온 예견된 참사였다는 분석이 적지 않았다. 그동안 국내 조선업체들은 중국과 싱가포르 등 신흥 조선업체들의 기술 수준을 국내보다 한참 아래로 봤었지만 국내 고급 기술자들이 속속 업계에서 이탈하면서 경쟁업체에 좋은 일만 시켰다는 얘기다. 

현대중공업은 일감 부족을 이유로 울산조선소 내 2개 도크를 폐쇄했고 지난 7월부터는 군산조선소까지 가동을 멈췄다. 싼 인건비에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기술력까지 노린 해외 신흥 조선사들과 치열한 경쟁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 일사천리 2인자 위치에 오른 정기선 부사장의 어깨는 한층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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