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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철두철미와 박근혜, 탄저병 논란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7.12.27 16:02:44

[프라임경제] 강원도 강릉은 평창동계올림픽 개막 시기가 다가오면서 한층 더 부각되고 있지만, 동계올림픽 효과를 보기 전부터 이미 초당두부나 단오제, 오죽헌 등으로 잘 알려진 고장이었습니다. 특히 오죽헌은 조선의 여류화가 신사임당과 대학자 율곡 이이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공간으로 이름높습니다.

사진은 오죽헌의 부속 건물 중 하나인 어제각의 사진인데요. 이 어제각 안에는 이이가 사용하던 벼루 등을 보관하고 있습니다. 임금의 명으로 지었다고 해서 御(어거할 어, 다스릴 어)자를 넣은 것입니다. 건물주(집안) 입장에서는 대단히 영예로운 것이죠. 

ⓒ 프라임경제

제일 밖에 걸린 현판은 글자가 나란히 한 줄로 돼 있지만, 안의 현판은 어 자를 확연히 위로 높게 적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과거 예법상 임금을 나타내는 글자라고 해서 그렇게 한 것인데요.

이건 우리의 풍습만이 아니라, 중국에서도 발견되는 문제입니다. 한문 작품을 배워본 분들은 기억하시겠지만, 뜻만 좋으면 되는 게 아니라 운율과 글자 사용 등 다양한 제약을 모두 맞추면서 솜씨를 뽐내야 합니다. 과거 시험지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임금(천자)을 나타내는 표현을 어떻게 쓰느냐, 나라의 소속인 건물이나 하천 등의 표시를 어떻게 할 것이냐 등 다양하고 복잡한 강제사항이 많았다고 합니다. 어떤 글자는 세로쓰기로 글을 지을 때 한 칸 앞으로 두드러지게 튀어나오게 적는 등으로 서로 약속이 돼 있었던 것이죠.

이 모든 걸 맞춰서 허점 하나 없이 글을 지은 것을 '철두철미'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철두철미하다는 건 중국에서 과거 답안을 쓰는 팔고문 기법에 능통한 경지에 비길 정도라는 뜻이고, 대단히 꼼꼼한 경우를 가리키는 칭찬이었던 셈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에는 국가원수인 대통령 혹은 전직 대통령을 대단히 높이는 경향이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렇게 하지 않고 부를 때도 '대통령님' 정도로 경칭하고 신문기사 등 객관적으로 표현할 때는 '문재인 대통령은''이명박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씁니다. 심한 경우 '일부러 낮잡아' 적은 게 아닌지 싶을 정도의 표기도 발견됩니다.

ⓒ 프라임경제

사진은 금일 아침 모 유력신문사에서 '박근혜, 이재용 전 부회장 재판 증언도 거부'라고 전광판 뉴스를 띄운 사례인데요. '박근혜' '이재용'을 모두 경칭이나 직함 없이 지칭한 게 아니라, 한쪽만 낮춘 듯해 눈길이 갔습니다. 옛날 감각으로는 혹시 글자 수 제약 때문이라면 '박근혜 전 대통령''박근혜 여사''박근혜씨'로 쓰고 후자의 인물을 '이재용'으로 쓸 망정, 반대로 저렇게 하지는 않았겠지요. 탄핵을 당한 데다 여러모로 무책임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어서 호칭에서도 디스카운트된 게 아닌가 싶지만, 권위주의 파괴의 일환이라는 점으로도 의미 부여를 할 수 있겠습니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불거졌던 '탄저병 백신 논란'도 같은 맥락으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청와대가 탄저병 백신을 수입해 (예방 목적으로) 주사를 맞았다는 의혹이 제기됐는데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24일 보도자료에서 청와대 고위 관계자들이 탄저병 백신을 수입해 주사를 맞았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 해명의 요체는 이렇습니다. 북한의 병원균 공격시 사후 치료용으로 비축한 것이고 아주 많은 양은 아니어도 일반국민용도 포함한 구매였는데, '자기들끼리만 살겠다고 먼저 맞았다'는 식으로 구도가 형성돼 안타깝다는 것이었죠. 여기에서 주목할 부분은, 아무리 국정을 책임지는 대통령 자리에 있는 사람이라도 불공평하게 어떤 걸 하는 것은 용납하지 못하겠다는 국민 정서가 대두될 정도로 특권 타파 의식이 높아졌다는 점일 겁니다.

철두철미의 시대는 가고, 바야흐로 박근혜라며 이름을 막 부르고 주사 문제 하나에도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이들이 늘어나는 시대입니다. 대통령도 이런 상황이건만, 별 것 아닌 자리나 지위, 재산 등으로 속칭 갑질하는 이들은 왜 그렇게 많을까요? 어제각 짓던 시절의 사고방식으로 현대를 사는 사람들이 사라지는 2018년이 되길 기원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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