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의 M&M] "사람이야 말로 중요한 거라고"

2017-12-30 12:00:05

- Chumbawamba - Tubthumping


[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민요 '아리랑'도 다양한 지역특색은 물론, 한국 근세와 근대의 민족사, 사회상까지 반영하고 있죠.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usic & MacGuffin(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어떤 집단이든 발전을 위한 채찍은 언제든 필요합니다. 그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면 말이죠. 그렇지만 그 다그침이 편협한 체제를 유지하기 위함. 혹은 일말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라면 그것은 독려가 아닌 강압억압으로밖에 비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채찍질은 대의와 대립하기 마련인데요. 이 때문에 부당한 요구는 구성원 간의 분열을 부르기도 합니다. 체제를 지키려다 사람을 잃는 일까지 벌어질 수도 있다는 얘기죠. 

하지만 여기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채찍질을 당하는 사람들의 자세도 정당하고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대의를 말할 수 있기 때문이죠. 터무니없이 자신들의 권리만 요구하면서 대의에 편승하려한다면 그들의 목소리는 부당과 타협한 자들과의 투쟁이 아니라 그저 떼쓰기에 지나지 않을 뿐입니다. 

열여덟 번째 「M&M」에서 쏟아낼 곡은 영국 아나코 펑크(Anarcho-Punk) 록 밴드 첨바왐바(Chumbawamba)의 강렬한 투쟁가, 텁썸핑(Tubthumping)입니다.

1982년 결성된 첨바왐바는 팝, 펑크 록 밴드이지만 괴짜 사회 운동가로 더 많이 알려졌습니다. 이들의 노래는 주로 평화주의, 계급투쟁, 페미니즘 등 진보적 성향의 소재로 만들어지고 항상 약자의 편(1985년 데뷔 앨범 'Revolution'을 발표하면서 '우리의 음악이 단지 즐거움을 주고 행동을 고무시키지 못한다면 우리의 음악은 실패한 것'이라고 말하기도)에서 불려졌기 때문이죠. 

▲영국 록 밴드 첨바왐바(Chumbawamba)는 노동자들의 편에 선 노래다. 팝, 댄스 보다 괴짜 사회 운동가들로 알려졌다. ⓒ 구글 이미지 캡처


노래 소재뿐만 아니라 이들은 음반 판매 수익을 반파시즘 운동과 환경 운동, 평화주의 운동, 여성주의 운동은 물론 권력과 부를 지닌 세력을 반대하는 단체를 지원에 사용한 것으로도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일례로 2002년 미국의 거대 기업 제너럴 모터스(GM)가 첨바왐바의 노래를 사용하는 대가로 7만파운드(약 1억4000만원)를 지불했는데, 이들은 GM에 반대하는 운동에만 사용한다는 조건을 걸어 반세계화 단체에 이 금액을 전액 기부해버리는 쇼킹한 일을 벌입니다. 결과적으로 GM은 자신들을 반대하는 단체에 7만달러를 기부한 바보가 돼버렸죠. 

이런 과감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밴드가 1997년 만들어 가장 큰 히트곡(캐나다, 이탈리아, 오스트레일리아 차트 1위, UK차트 2위, 빌보드 Hot 100에 피크 6위를 기록)으로 남은 작품이 있습니다. 제목은 텁썸핑(Tubthumping·열변), 바로 이번 회에서 소개해드릴 곡이죠. 

이 곡은 귀에 익숙한 멜로디 전, 탄광 노동자의 투쟁을 다룬 한 영화(Brassed off : 80년대 대처리즘 이후 사양길로 접어든 90년대의 탄광촌 폐쇄로 처하는 환경을 영국 그림리(Grimley) 탄광촌 일대에서 생활하는 한 밴드의 삶으로 보여주는 영화) 대사로 시작합니다. 

사실 난 음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그럴까? 바보 같은 소리야. 사람이야말로 중요한 거라고… 

이 내레이션은 "제 뒤에 있는 저 단원들은 이 트로피가 저한테 세상 무엇보다 더 소중하다고 생각할 겁니다. 사실은 저는 음악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도 하찮은 게 아닐까요? 음악은 사람의 소중함에 비할 바가 못 됩니다"라는 작 중 주인공이 탄광촌 밴드 경연에서 우승한 후 전한 소감을 짧게 옮겨놓은 것이죠.  

사실 이 곡은 영국 노동당 정부 탄압에 맞선 리버풀 항만 노동자들을 격려하기 위해 만든 노래인데요. 이 노래가 만들어지기 2년 전인 1995년 9월 영국 리버풀 항만이 30년 넘게 일한 500여명의 노동자들을 하루아침에 해고시킨 일이 계기가 됐죠. 

해고 이유는 '시위 중 출근 거부'였는데요. 좀 더 구체적인 이유는 1980년대 말 도입된 컨테이너 기술로 노동력의 수요가 줄어들면서 당시 마가렛 대처 정부는 고용주들의 압력을 받게 되고 노동자들의 고용을 보장하던 '국제항만노동계획안'을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이 결정에 항만 노동자들은 사실상 관리자에게 발탁돼야 간신히 일할 수 있었던 1967년 이전의 일용직 노동자 신세로 전락하게된 것이죠. 

곡의 배경을 먼저 설명한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곡을 월드컵 주제곡으로 신나고 활기찬 노래로만 인식하고 있기 때문인데요. 가사를 보면 그럴 만도 합니다. 

우린 노래할거야. 우리가 승리할 때.
(…) 어쩌다 쓰러지더라도 난 다시 일어설 거야. 너희는 결코 날 쓰러뜨릴 수 없어. (…)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좋았던 시절의 노래를 부르지.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더 좋았던 시절의 노래를 부르지. (…) 이 밤을 술로 흘려보내세.

그는 위스키를 마시고. 그는 보드카를 마시고. 그는 라거 맥주를 마시고. 그는 사과주도 마시지. 그는 자신이 기억하는 좋았던 시절의 노랠 부르지. (…) 우린 노래할거야. 우리가 승리할 때. 우린 노래할거야.

가사가 다소 직선적이지만 이 곡은 그룹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펑크 사운드보다는 댄스, 팝 쪽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다. 이 때문에 신나는 응원가라고 느끼게 되는 것이죠. 하지만 이 그룹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면 이 신나는 댄스곡 속에 숨은 저항의 메시지와 승리 뒤에 드는 축배의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첨바왐바는 이 노래를 만든 계기에 대한 일말의 마침표도 찍었습니다. 유명해진 노래 덕에 이들은 1998년 브릿 어워즈 공연에 올랐는데요. 

이 자리에서 보컬리스트인 댄버트 노배컨(Danbert Nobacon)은 객석 앞 귀빈석에 자리값만 5000달러(약 500만원) 앉아있던 부수상 존 프리스콧(John Prescott)의 머리에 얼음물을 쏟아부었습니다. '이건 배신자의 몫이야' 라는 말과 함께 말이죠.

댄버트가 부수상에게 얼음물 테러를 벌인 이유는 그는 전직 리버풀 항만노동자였지만, 부수상 자리에 오른 뒤 항만 노동자를 탄압하고 해고하는 데 앞장섰기 때문입니다. 테러 전 공연에서는 텁썸핑의 노래 가사도 '신노동당이 노동자를 팔아넘겼다. 그들이 우리들의 나머지들을 속이는 것처럼'이라고 바꿔부르기도 했다네요.

노래엔 작은 마침표가 찍혔지만, 세상을 바꾼 후 축배를 들자던 그들의 격려는 아직 과제로 남아있습니다. 

연말이지만 수많은 노조들의 민중가요가 길거리의 캐럴만큼 자주 들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모두 각자의 이유가 있겠지만, 결국 투쟁의 이유는 '부당하다' '처우를 개선해달라' 정도로 좁힐 수 있겠죠.

이런 가운데 짚어볼 것은 이런 목소리가 과연 정당하냐는 것입니다. 단순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친기업적 정책 기조에 따라 이른바 '노조파괴 시나리오'의 한 수단으로서 계획적 손해배상소송이 제기돼 노동계를 겨눈 손해배상 청구금액이 1000억원을 돌파했습니다.

박근혜 정권 들어서는 물리적 피해뿐 아니라 모욕죄나 명예훼손 등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도 손해배상소송이 폭넓게 제기됐고, 청구 배상금액도 크게 늘어났죠. 이 결과 노조 쟁의행위를 벌인 민주노총 산하조직 전체 노동조합에 제기된 손해배상 청구액이 1867억원으로 집계됐습니다. 

이는 양대노총 산하 사업장 사례를 취합한 집계인데, 양대 노총에 소속되지 않는 노조나 노동자 개인에 청구된 금액까지 파악하면 실제 금액은 더 거대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기업의 부당한 처우에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리기도 한다. ⓒ 뉴스1


여기서 개인 청구의 문제는 싸움에 지쳐 회사를 그만두고 싶어도 자신이 배상해야 할 금액이 고스란히 동료에게 부담되기 때문에 떠나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상황이 소송금액이 아닌 개인적인 감정이나 책임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쟁의행위에 따른 출근거부, 시위 등으로 사측이 손해 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일개 노동자의 입장에서 좀 더 나은 처우, 나아가서는 부당한 것에 대한 대의의 목소리에 대가로 억 단위의 금액을 책임질 수 없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로요.

일반적인 노동자가 원하는 것은 싸움을 통해 얻는 화려한 부와 명예가 아닙니다. 그저 편안히 지인과 오붓하게 만나 시간을 흘려보낼 수 있는 소박한 삶의 권리일 뿐입니다. 

단, 이런 구도를 악용해서는 안된다는 말입니다. 파업으로 연봉을 2배 이상 올렸음에도 더 올려달라는 것이나, 충분한 근무환경임에도 처우를 개선해달라는 저항은 정의로운 싸움이 아니라는 것이죠.

부당한 것은 부당하다고 말해야하는 용기와 타협을 거부하는 저항정신은 언제든 필요합니다. 그것이 정당하고 합리적이라면 말입니다.

이윤형 기자 lyh@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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