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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시민에 'ㅁㅊㅅㄲ'라는 한국당의 섬뜩한 속내

김종석 욕설문자 개인일탈? 2기 혁신위 '신보수주의 원칙'에 숨은 뜻

이수영 기자 | lsy@newsprime.co.kr | 2018.01.03 10:08:46

[프라임경제] 이른바 '전안법 개정안' 통과 지연을 두고 소상공인 단체를 포함해 일반 소비자들까지 우려와 분통이 들끓었던 지난달 28일 오후, 독자로부터 이메일 한 통을 받았다.

본인을 '전안법에 반대하는 국민'이라고 소개한 A씨는 "국회 본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문자를 돌려 압박을 가했다"고 고백(?)했다.

당시는 제천 참사 이후 재조명된 소방 관련 법안을 비롯해 민생법안 30여건이 본회의 의결만을 기다리던 터였다. 이날 아침 여당 우원식 원내대표는 민생법안 통과를 위한 원포인트 본회의를 제안했지만 자유한국당은 청와대와 여당을 향해 개헌 추진 중단을 요구하며 사실상 거절했다.

국민의당 역시 이들에 동조하면서 연내 본회의 개최는 불투명해지자 당장 새해부터 핸드메이드 제품을 취급하는 상당수 소상공인들이 막대한 인증비 부담을 지거나 범법자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번져나갔다.

그래서 A씨는 직접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문자메시지로 본회의 참여를 독려할 맘을 먹었고 의원들에게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세 통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모두 본회의 출석과 전안법 개정안 통과를 주문하는 내용이었다. '소상공인 죽이는 전안법'이라는 다소 격한 표현만 빼면 비속어 없이 완곡한 경어체를 사용한 것이 눈에 띈다.

마지막 문자를 보낸 직후, A씨는 한 의원에게서 온 답장을 보고 순간 눈을 의심했다. 'ㅁㅊㅅㄲ'라는 자음 넉자가 선명하게 찍혀 있었는데, 초성 은어가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읽히는 명백한 욕설이었다. A씨가 직접 해당 전화번호를 카카오톡에 등록해 프로필 사진을 확인하자 현역 의원의 얼굴과 선거 당시 홍보 현수막이 떴다.

본회의 참여를 독려하는 유권자에게 '미친XX'라고 답한 이는 바로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이자 한국당 비례대표인 김종석 의원이다. 야권의 대표적인 경제통인 그는 홍준표 대표의 경제 과외교사이며 최근에는 당의 지방선거 기획위원으로 위촉되는 등 유력한 친홍계 인사로 분류된다.

사실상 제1야당의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브레인'과 유권자에게 보낸 초라한 답장을 어떻게 연결해 상상할지 난감한 이유다.

시민들의 문자보내기 운동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과 문재인 정부 초기 인사청문회를 거치면서 국회에 대한 직접적인 압박수단으로 주목받았다. 물론 여야의 호불호는 극명하다. 여권과 진보성향 야당은 '문자행동'이라며 옹호하는 반면, 한국당으로 대변되는 야권에서는 '문자폭탄' 또는 '문자테러'라고 규정해 날을 세워왔다.

그 중 드물게 노이즈 마케팅 일환으로 여기는 의원들도 없지 않지만 이번 경우처럼 노골적인 적대감을 드러내는 경우는 드문 일이다.

당연히 문제의 답신을 김 의원 본인이 아닌 보좌관 등 제3자가 보냈을 수도 있다. 이를 확인하고자 김 의원 본인과 의원실에 문의했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김 의원 몫의 휴대전화는 의원실 내선전화로 연결돼 있었고 12월 임시국회가 마무리됐지만 김 의원은 '마라톤 회의' 중으로 연락이 닿지 않았다. 의원회관에 직접 찾아가려 했지만 일정상 만나기 어렵다며 의원실 관계자가 만류했고 김 의원은 2일 밤 늦게서야 "취재에 응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는 짤막한 말만 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의 핵심은 욕설을 보낸 당사자가 김 의원 본인이며, 이를 개인의 인내심 부족이나 사회적 지위에 비해 저열한 일탈로 빚어진 소동 정도로 치부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필자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를 설명하려면 같은 날 자유한국당 2기 혁신위원회 출범식을 복기할 필요가 있다.

자유한국당은 이날 1기 혁신위 종료 및 2기 혁신위 출범을 선포하며 1기 류석춘 위원장과 김용태 신임 위원장이 합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것이 이른바 '신보수주의 가치'와 이를 견지할 '보수의 4대 원칙'이다.

이 가운데 대한민국의 탄생을 1941년 임시정부 수립이 아닌 1948년으로 규정한 '건국절 논란'은 차치하고 주목할 대목이 하나 있다. 자유한국당은 두 번째 원칙으로 '대의제 민주주의 함양'을 제시했다.

헌법 제1장 제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명제는 탄핵 정국을 거치면서 상당수 시민들에게 각인돼 있다. 한국당은 국민주권의 원리가 대의제 민주주의, 즉 선출된 국회를 통해 실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당한 얘기지만 방점은 다음에 찍혀 있다. 대의제 민주주의를 두고 '광장 민주주의와 같은 직접 민주주의의 위험을 막고, 다수의 억지와 폭압에 따른 개인 자유의 침해를 방지하는 (중략) 가장 확실한 제도적 장치임을 확신한다'고 정의한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는 광장의 촛불로 밝혀진 직접 민주주의에 의해 몰락했고, 새 정부의 출범 역시 광장을 통해 힘을 얻었다. 즉 한국당이 주장한 '보수의 원칙'에 따라 박근혜 전 대통령은 위험한 직접 민주주의의 희생자이고, 70%에 육박하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다수의 억지'로 볼 수 있다.

아울러 홍준표 대표는 1일 신년인사회에서 지금을 '괴벨스가 창궐하는 여론조작의 시대'라는 발언까지 했다.

일련의 논리와 당 대표의 공개적 언행으로 미뤄, 김종석 의원이 선량한 시민을 향해 터트린 '미친XX'라는 욕설은 가볍게 넘기기 어렵다. 김 의원의 대응과 맞닿아 있는 제1야당의 현실인식과 역사적 관점이 지극히 정교하고 일관적이기 때문이다.

결국 최악의 가정을 해본다. 국회에서 버금가는 의석을 차지한 주류정당의 총구가 어쩌면 시민들을 겨누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것. 당연히 기우이길 바라며 그래야만 하는 상상임에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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