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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25시] '여측이심' 떠올릴 기업은행의 대규모 정규직 전환

 

이윤형 기자 | lyh@newsprime.co.kr | 2018.01.19 15:04:58
[프라임경제] 올해 초 IBK기업은행 노사가 대규모 무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하는 파격적인 합의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무슨 일 때문인지 기업은행 안팎에서는 이번 합의에 대해 '차별 없는 일터를 위한 혁신적 행보'라는 찬사 대신 '무책임하고 역차별 적인 결정'이라는 비판 섞인 불만의 목소리가 터지고 있습니다. 

지난 2일 기업은행 노사는 2018년 시무식에서 창구텔러, 사무지원, 전화상담 등 업무를 수행하는 3300명 무기 계약직의 정규직 전환을 상반기 내 완료하겠다는 내용을 담은 '준정규직 처우개선을 위한 노사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는데요. 

여기에는 앞서 나열한 직군에 더 이상 무기 계약직 형태의 채용을 중단하겠다는 내용도 담겼습니다. 앞으로 기업은행은 직군과 관계없이 정규직 형태로만 채용하겠다는 얘깁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환 방식이 새로운 직급 신설이 아니라 기존 인사체계의 정규직으로 편입시킨다는 점인데요. 별도 선발 등의 절차 없이 경력도 존중돼 그야말로 신분 전환 개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말로만 혹은 무늬만 전환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죠.

이밖에도 기업은행은 현재 문재인정부에서 추진 중인 기간제·파견용역에 대한 정규직화 노력도 TF를 구성해 협의 중이라는 내용도 포함했습니다. 

이렇듯 이번 합의 내용을 보면 노동자들의 처우를 대폭 개선한 파격적 결정이지만, 비판의 목소리는 오히려 내부에서 새나오고 있다는데요. 그 이유를 알아보면 살짝 미간이 찌푸려집니다. 

먼저 현재 기업은행 정규직 지원들은 이번 합의가 역차별이라고 불만을 터트립니다. 무기 계약직을 정규직으로 일괄 전환할 경우 기존 직원들과 형평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그들의 주장입니다. 

여기에는 '누구는 피나는 노력으로 어렵게 입행해 이 자리에 있는데 누군가는 노사 합의만으로 거저 따낼 판'이라는 낯 뜨거운 '보상심리'가 주를 이루는데요. 전환을 하더라도 확실한 선을 그어 명확히 구분을 해야 한다는 것이죠. 

이는 이번 합의로 계약직과 정규직 간 있었던 장벽을 해소시키는 기업은행 노사의 취지를 정면 부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 같은 보상심리는 이번 합의 전에 이미 정규직으로 전환된 집단에서도 발생하고 있다는데요. 그들은 이미 정규직 전환됐음에도 이번 대상자들은 자신들보다 더 쉬운 방법으로 전환될 것이라는 것을 아니꼽게 보는 것입니다. 이들도 전에는 정규직 전환이 간절했을 텐데 말이죠. 

이와 함께 전환에 따른 경쟁자 확대로 책임자(4급)가 되는 기회의 문이 좁아지는 것 또한 기존 전환자 역차별이란 목소리를 내는 상황입니다. 

외부에서도 이번 결정에 대한 우려가 나오는데요. 대규모 정규직 전환에 따른 은행의 인건비 부담 확대될 것이라는 외부 의견은 물론 신입사원 채용규모도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취업준비생들의 목소리입니다. 

이에 기업은행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신입사원 채용 규모는 219명으로 지난해 290명보다 줄어든 수준이지만, 이번 정규직 전환 결정에 영향을 받은 것은 아니다"라고 응대했습니다. 

인건비 부담 확대에 대해서는 "대규모 전환에 따라 인건비가 상승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큰 차이가 발생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결정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여기 더해 "승진과 관련한 경쟁확대와 연봉에 대해서는 경력, 호봉수 차등 등으로 차별을 최소화할 계획이며, 이번 결정 이행이 상반기로 예정된 만큼 충분히 조율할 것"이라고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기업은행의 이 같은 결정은 '비정규직 제로' '일자리 체질 개선' 등 문재인정부의 일자리 정책에 영향을 받아 '차별 없는 현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2016년 하반기부터 논의된 사항인데요. 

사실 여기에는 IMF 당시 금융권에 불어온 대규모 정리해고와 상당기간 중단된 공채에 금융권 내 부족한 인력을 비정규직 채용하면서 고착화된 저임금노동 확대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도가 내포돼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기업은행 내부에서는 뒷간에 갈 때 마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여측이심(如廁二心)'적인 부끄러운 목소리가 들립니다. 

정부의 정책 기조에 발을 맞췄다고는 하지만, 기업은행의 이번 행보는 차별을 없애기 위한 의식 있는 결정임에 분명합니다. 다만 내부 갈등을 잠식시키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할 뿐일 텐데요.
 
결정 시행 기간이 남은 만큼 내부에서부터 성숙한 사회 분위기를 먼저 조성하는 추가적인 노력도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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