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농, 60년 역사와 '불편한 진실'

2018-01-30 16: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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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업해부] 동오그룹 ① 태동과 성장

[프라임경제] 2017년은 ㈜경농(002100)의 창립 60주년과 동시에 창업주 이장표 사장과 이병만 회장, 이용진 대표로 이어진 3세 경영이 사실상 본격화한 기념비적인 해다. 

▲서울 서초동에 위치한 동오그룹 사옥 전경. ⓒ 프라임경제

지난해 7월 이병만 회장은 아들 이용진 동오시드 대표에게 경농주식 155만7337주를 증여해 동오그룹 전체의 지배권을 넘겨줬다. 또 경농 이사회는 정관을 변경해 대표이사가 아니어도 주주총회의 의장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실질적인 지배권 강화 작업을 마무리한 셈이다. 

그런데 이번 동오그룹의 승계를 두고 앞서 논란이 됐던 하림의 상속과정과 닮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형적인 재벌의 상속형태가 중소기업에서도 만연한다는 지적으로 이어진다. 

더욱이 농민을 대상으로 성장한 기업의 상속이기에 질타의 수위는 높다. 이런 배경엔 60년 경농의 성장 이면의 정권과 결탁한 소위 '흑역사'가 있었다.

◆'중석불(重石弗)사건' 반사이익

수명연장에 눈이 먼 정권과 불로소득에 넋이 나간 기업가들이 손잡는 경우는 현대사를 관통하는 핵심 가운데 하나다. 해방 직후 한국전쟁시기 정부의 주도하에 설립된 기업들은 대부분 적산(敵産)을 불하(拂下)받아 성장해 정치자금을 지원하고 정권과 결탁하는 형태의 성장을 거듭했다. 

이승만 정부는 1952년 6월 중석(텅스텐)을 외국에 팔아 벌어들인 달러를 민간 기업체에 불하해 밀가루와 비료를 수입하게 하고, 이를 농민에게 비싼 값으로 팔아 피해를 입힌 대한민국 최초의 정경유착, 이른바 '중석불(重石弗)사건'을 일으켰다.

중석불사건은 동오그룹 설립의 계기가 됐다. 이승만 정부는 미군정의 눈치와 자급자족이라는 취지를 더해 적산불하를 통한 민간 비료공장 설립을 지원했다. 그중 하나가 동오그룹의 한 축인 조비(001550)의 전신 조선비료공업이다. 

조비 측의 자료에 따르면 1955년 설립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러나 당시 보도와 사료를 보면 광복 이전부터 인천에서 운영되던 조선비료공업의 적산을 이름까지 물려받아 1947년부터 사료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전쟁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한국전쟁의 피난길에 부산에 정착했던 이장표 동오그룹 창업주는 조선비료공업을 재건했다. 이어 1957년 경농의 전신인 경북농약공사를 설립했다. 

또 이 창업주는 부산의 기계공장을 불하받아 대왕제분을 설립 사료사업을 재개했다. 공교롭게도 사업분야가 식량안보와 관련한 이승만 정부의 역점사업에 집중됐음을 알 수 있다. 

▲故 이장표 창업주 ⓒ ㈜조비


이장표 창업주의 사업이 성과를 보이기 시작한 시점은 1961년 박정희가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이후부터다. 조선비료는 1963년 부산공장을 준공한다. 이어 1964년 경북농약은 대구로 본사를 이전해 국내 최초의 입제공장을 준공했다. 

사업 확장의 기반은 정부의 경제발전5개년 계획은 비료와 농약에 대해 면세혜택을 제공하면서 마련됐다. 또 사업에 필요한 자금은 밀가루 폭리를 통해 챙겼다. 당시 밀가루와 설탕, 시멘트 업자들이 폭리를 취해 서민경제를 어지럽힌 이른바 '삼분폭리사태'에서 원맥을 공급받던 19개 업체 가운데 하나인 대왕제분도 큰 수익을 얻었다. 

이와 관련해 대왕제분에서 근무했던 최병순 과우학원 이사장은 "당시 모든 제분업체와 마찬가지로 대왕제분도 혼란을 틈타 수익을 많이 냈었다"라고 에둘러 설명했다.

◆박정희 유신정부와 코드 맞추기

창업과정이 정부 정책의 흐름을 타고 이어졌다면 1960년대 중기부터 이장표 창업주는 중앙정치와의 연결을 통해 사업을 부흥시켰다. 

우선 1969년 중앙 정계에서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던 공화당의 김성곤 전 의원과 백남억 의원 등 경북출신 거물들이 모여서 설립한 경북개발주식회사에 이장표 창업주의 사촌동생 이장균 경북농약 사장을 이사로 참여시킨다.

당시 주주 22명이 설립한 경북개발주식회사의 자본금은 10억원 이상이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목표로 한 자본금 규모는 30억원에 달했다. 축산물 가공공장설립을 목표로 한 경북개발은 지역 내 최대 규모의 민간합동기업 설립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이는 미국 롬앤하스(Rohm&Haas)와 합작한 한미유기화학공업을 설립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유신이 선포됐던 1972년은 박정희 정부가 이전까지 도입한 누적 외채의 상환 문제로 외국 기업의 자본투입이 어려웠다. 이 창업주에게 스스로의 정치력이 요구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이장표 창업주 본인이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고 이 창업주의 형 이영표씨가 경주·월성 지역구에서 제 9대 국회의원에 당선되자 상황은 달라졌다. 당시 두 형제의 출마 이력서에는 경북농약, 조선비료, 대왕제분의 대표이사로 동일하게 명시돼 있다. 그해 한미유기화학이 설립됐다. 

이후 이장표 창업주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승계 작업에 집중했다. 건강악화가 원인이었다. 장남 이병일 조비 회장을 부사장으로 승진시켜 경영수업의 속도를 냈다. 동시에 아들들에게 상속을 진행했다.

한편으로는 정권 실세와의 연결도 이어갔다. 이 창업주가 영입한 인물은 부산시장과 경북도지사, 대한석탄공사 총재를 역임한 김덕엽 사장이다. 김 사장은 조선비료 사장으로 근무하는 동안 뇌물사건과 관련해 수 차례 구설수에 휘말렸다.

그러나 실무는 탁월했다. 1976년 취임한 김 사장은 취임과 동시에 조선비료와 경북농약의 상장을 추진했다. 1976년과 1977년 조선비료와 경북농약은 규모에 비해 일찍 주식시장에 상장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이 창업주는 끝내 경북농약의 상장은 보지 못한 채로 숨졌다. 

▲1976년 조선비료공업주식회사 임시 주주총회. ⓒ 조비


30년을 이끌어온 이 창업주의 부재는 위기를 초래했다. 1981년 정부는 '과보호 경쟁저해 법률' 재편작업에 돌입했다. 이는 비료산업 합리화 조치로 이어졌다. 면세혜택은 사라졌고 비료생산량 축소 조치가 뒤따랐다.

◆담합·횡령·세금포탈·해외도피 그리고 부도

이후 정부 규제의 대상이 된 비료산업은 사양길을 걷게 됐다. 김 사장이 조비의 회장으로 추대됐으나 나아진 것은 없었다. 이병일 조비 회장이 물려받은 조선비료는 1987년 정부의 비료산업 유통체제 개선안에 따라 농협에 더욱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후 조비로 사명을 변경하고 조비전자에 출자하며 사업 다각화를 노려봤으나 그마저도 실패로 돌아갔다.

이어 우루과이라운드(UR)와 한미자유무역협정(FTA) 등 비료지원 중단요구에 따른 비료사용 축소 탓에 이전의 사세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렸다. 최근 공시자료에 따르면 매년 경농의 보증으로 수백억의 대출을 융통해야 하는 실정이다.

반면 경북농업은 1982년 사명을 경농으로 변경한 뒤 한미유기화학을 자회사인 동오화학에 합병시킨다. 이는 연구개발의 단점을 극복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특히 농협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유통경로를 확보하는 등 지역중심 사업에서 벗어나 안정적인 매출을 구조화했다. 

다만 이 과정에서 '그라목손 보급회'라는 농업기업 카르텔에 가담하며 1999년부터 2009년까지 담합을 통해 타 기업의 신규진입을 제한해왔다. 이 카르텔은 1994년 이전부터 짬짜미를 통해 조달청 입찰을 통제했다.

이와 관련해 당시 경농을 비롯한 그라목손 보급회 가담 업체들은 "농협중앙회의 시장 장악에 대응한 것"이라는 주장을 내놓았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이에 대해 '적극적인 시장분할 행위'라며 각각 수십억원대에 이르는 과징금을 부과했다.

또한 경농의 성장이 과도한 접대비 지출의 결과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경농은 매년 수십억대의 접대비를 사용하고 있다. 특히 2006년부터 2015년 까지 경농은 연 평균 23억 3568만원의 접대비를 지출했다. 

2016년에도 경농은 17억원의 접대비를 썼다. 같은 기간 조비가 지출한 접대비의 8배에 달한다. 반면 팜한농과 농협케미컬 등 동종업계 타 기업의 최근 3년간 사업보고서를 참고하면 이들은 접대비가 발생하지 않았다. 

한편 대왕제분을 넘겨받은 이장표 창업주의 동생 이윤표씨와 아들 이병도씨는 1979년 부산지역의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됐다. 그러나 정권은 바뀌었고, 불법에서 비호해줄 세력은 이미 사라졌다. 

이병도 사장은 일본에서 자동화 국수생산 설비를 들여와 태화국수를 설립했다. 제분업체의 국수사업진출은 선점하고 있던 국내 국수업계의 반감을 샀다. 경북 지역의 국수업계는 대왕제분의 밀가루 사용을 거부했다. 

판로를 잃어버린 대왕제분은 경영난에 직면했다. 이후 보도를 보면 이병도 사장은 대왕제분 부도 직전 위장이혼을 통해 재산을 빼돌리고 일본으로 도주했다. 당시 부도에 따른 빚 100억원 외에도 소맥 6000톤 부정유출, 관세포탈, 1억원대 밀수 등의 범죄행위로 수배를 받았다.


강경식 기자 kks@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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