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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욕장 잡아먹은 발전소-LNG, 횟집 폐업보상은 왜 안 되나?

"어로행위 어려워지고 설상가상 주민이주까지 휴업보상만" 억울한 삼척 호산리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2.06 13:54:43

[프라임경제] 파도가 올 때마다 자글거리는 작은 자갈이 이채롭던 호산해수욕장. 강원도 삼척시 호산리에 위치했던 이 곳은 월천해수욕장과 더불어 강원도 최남단 해수욕장으로 알려져 여름마다 외지 손님을 맞았다. 경치가 좋은 대신 평소 유동인구나 인프라가 대단한 곳은 아니었기 때문에 여름 한철 손님은 음식이나 민박 등을 위해 인근 호산항을 찾고는 했다.

아기자기하던 호산은 이제 그야말로 상전벽해 상황을 겪고 있다. 삼척 시내 못지않은 부산함이 동네를 감돈다. 다만 이런 어수선함에 활기나 번영을 연결 짓기는 어렵다. 바다를 매립해 다양한 거대 시설이 추진된 때문. 호산항 남쪽에 LNG기지(100만㎡의 부지매립과 총연장 1.8㎞ 방파제, 12만7000t급 LNG선박 접안설비 등)와 항구 북쪽에 삼천발전본부 화력발전소(육상 약 160만㎡, 해상 약 100만㎡)가 들어서는 등 호젓함을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호산항에서 바라본 풍경. 각종 시설물로 호젓한 분뤼기가 사라졌다. ⓒ 프라임경제

 

조금 벗어난 이야기지만,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옛 동양시멘트 부지에 포스파워 화력발전소 건립 계획도 추진 중이다. 가히 동네 자체가 에너지 중심지가 된 셈. 약 100가구가 물고기를 잡고 제주 출신 해녀들이 잠업을 하던 동네 생계는 본질적으로 변화할 수밖에 없다.

◆횟집 주인 "손님 자체가 없어지는데 왜 휴업"

이런 국책사업(공익사업)을 추진하는 경우 기존 토지나 건물 소유자에 대한 수용 보상은 법으로 처리해 주게 돼 있다. 이 시스템에는 해당 지역에서 생활하는 원주민이 입는 '간접 손실'도 포함한다. 과거 '공공용지의 취득 및 손실 보상에 관한 특례법'과 '토지수용법'으로 처리하던 것을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마련, 일원화시켰다. 원활하고 일목요연한 처리와 법체계 정비를 위한 손질이라 기본 정신이나 구조는 과거와 거의 같다.

간접 손실에 관해서는 영업의 휴업손실보상과 폐업손실보상이 있다. 호산항 인근 횟집 등 운영자들이 발전소 등 건립 추진 여파로 사실상 운영을 할 수 없다며 폐업보상을 바라고 있지만, 사실상 휴업보상만 받고 손을 털어야 할 상황이다.

호산리 바닷가 동네 모습. 동네 횟집들이 보이지만, 머지 않은 때 문을 닫고 내륙으로 떠나야 한다. ⓒ 프라임경제

화력발전소를 짓는 주체인 한국남부발전도 이 문제를 모르지 않는다. 다만 그간 이의(항의)를 하는 주민 측과 오간 대화 내용을 기초로 이해하면, 임의로 처리할 수는 없다는 게 기본 입장이다. 폐업보상을 요청하는 횟집들의 사안에 대한 기자의 질문에, 한국남부발전 삼척발전본부 관계자는 법적(공익사업보상법)으로 영업실적을 제출하면 조건에 따라 일정 기준치가 안 되면 최소보장선을 지급하고 그 이상의 경우 실적액에 따라 보상한다는 답변을 내놨다.  

이런 입장에도 일리가 있다. 기본적으로는 휴업보상이 주류, 사실상 거의 100%를 이룬다. 경기 지역에 개업 중인 한 행정사는 "공익사업 보상에서 휴업보상이 100%라고 보면 된다. 우리나라에서 폐업보상을 인정해 준 예가 없다. 도축장 등 그야말로 특이한 경우"라고 설명했다.

이 행정사의 설명처럼, 공익사업보상법과 구 시행규칙상 영업이 불가능해지는 경우 등 규정에 해당한다고 이의신청을 해도, 이의구제나 행정소송에서 처리된 예가 극히 드물다. 대부분의 시설은 새롭게 이전 운영, 영업을 하면 된다고 한다. '양계장 판례'라고 해서 폐업보상을 요구했던 원고가 패소한 유명 사례의 논리가 보상 실무를 지배하는 것.

하지만 일부 예외가 있기는 하다. 도축장은 다른 곳으로 갈 경우 혐오시설 반발로 새 입주지를 구하기 어렵다. 배후지라고 해서 영업관련지(공급지도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한다)가 사라지는 경우 사실상 폐업 효과를 인정한다. 도정장(정미소)나 양어장 등이 그 예다. 공익사업으로 물길이 끊어져 배후지 중에 공급 문제로 전환된 경우 양어장의 폐업보상을 해 주는 게 맞다는 유권해석(1999년 8월, 토관 58342-987)이 존재한다.

극히 어려운 폐업보상 사례에 이 동네 횟집은 과연 해당된다고 볼 수 있을까?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해수욕장이 폐쇄돼 사라지고, 북쪽 발전소 건립으로 어업 활동도 사실상 곤란해지므로 판로나 공급처가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그 전까지는 대단했는데 해수욕장 손님이 사라지지 않았느냐"는 게 주민의 하소연이다. 이 논리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하나 더 있다. 바로 호산항의 '무역항 지정'이다.

항만법 등 법규정에 따르면 무역항으로 지정되면 교통안전 문제 등으로 근처 바다에서 어로 작업을 할 수 없다. 사실상 관광으로 찾은 손님을 받고 동네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거나 팔아 돈을 마련하던 시대는 끝났다고 봐야 한다. 일명 '조망권'을 주장하는 것조차 사치라는 얘기다.

새롭게 발전소, 기지 등이 들어서면서 새 수요가 창출됐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이런 반론은 휴업보상과 폐업보상을 구분하는 공방전에서는 으레 등장하고, 또 사실 휴업보상만 해 주면 된다는 측의 '전가의 보도'와도 같은 보강 자료다. 다리가 놓여 나룻배 수요가 사라지는 경우에도 보상요청에서 패소한 케이스가 있다.

하지만 배후지가 2/3 이상 사라지는 경우를 상정한 법 규정 자체가 적용되는 경우와, 사실상의 효과로 이용자가 사라지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폐업보상 대상에서 제외하자는 판례 태도를 그냥 편하게 뒤섞어 이야기하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 우선 새로 들어선 시설의 인구가 과거 어항과 해수욕장 등으로 운영되던 시절보다 확연히 적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다.

요샛말로 '경제 공동체'…기지와 발전소 문제점 같이 풀어야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주민 이주가 결정되는 등 사정변경 역시 이뤄졌다는 추가 정황이 있는 것. 1997년 1월에 삼척시와 원덕읍 호산4리이주대책위원회, 한국남부발전 삼척발전본부, 한국가스공사 삼척기지건설사무소는 협약을 맺고 호산4리 주민 약 70가구의 이주 대책 지원에 합의했다.

해수욕장 수요는 물론, 어항 폐쇄 효과 등으로 고객 배후지가 우선적으로 사라지고(1차 배후지 상실 효과), 나중에 다시 주민 이주 문제로 배후지가 다시 사라졌다(2차 배후지 상실 효과)는 게 오히려 합당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과거에 휴업보상으로 결정한 게 설사 옳다고 해도, 이제 다시 주민들마저 대거 빠져나가는 상황이 추가됐으므로 수정 처리를 하는 게 합당하지 않냐는 지적이 가능한 대목이다.

한 법무사는 "공익사업 시 보상 처리를 위해서는 사업자의 재결이 있어야 하고 이것이 없다면 이의신청을 할 수 없다는 게 판례"라고 전제하면서도 "제대로 재결 행위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재결 촉구 신청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한편, 사정이 변경된 데 따른 수정 재결이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한 실무 종사자는 "일단 재결이 있고 그에 따라 처리 합의가 이뤄지면 계약이나 마찬가지다. 그걸 뒤집을 수는 없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다른 전문가는 "법이나 특별법에 따라 재결이나 이의 기간을 보면 될 것인데, 사실상 사업이 아직 진행 중인 경우에는 증액 처리가 가능하다고 하는 것으로 안다"고 답했다.

호산항의 경우 어업권이나 나잠업(해녀업) 손실에 대한 불만과 갈등도 아직 완전히 꺼지지 않은 터이고, 이 문제의 2라운드 격으로 관련 간접 보상 요구도 대두된 것이 사실이다. 더욱이 사업이 대형으로 여럿 결합해 있어 그 피해를 모두 주민들이 감수하기에는 가혹한 감이 크다.

무엇보다 이주 보상 협의 등에서 보면 기지와 발전소 측이 공동체 내지 협의체로 한 덩어리라고 할 수 있다. 요새 유행하는 표현으로 가스공사와 남부발전이 경제공동체인 셈인데, 이들이 호산항을 둘러싼 여러 사업에서 하나의 단일 피해 효과를 내며 움직인다고 판단하는 주민들의 생각이 상식적이라고 받아들인다면, 지금 사정에서는 휴업보상 판단에서 양보해 폐업보상으로 증액 처리를 도모하는 게 옳지 않냐는 주장이 전혀 무리는 아닌 셈이다.  

남부발전의 삼척화력본부 건은 금년 중에 준공검사절차를 마치게 된다. 대략 봄까지는 아직 사업 중인 셈인데, 마지막으로 이 문제를 처리하는 것이 가능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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