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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평창 D데이…공기에 저항할 자유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2.09 10:02:21

[프라임경제] 일본에는 '항공기죄(抗空氣罪)'라는 말이 있다. 대세에 거스른 죄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2차 대전에서 진 뒤 전직 장교가 '공기의 연구'라는 책을 쓴 적도 있다.

일정한 분위기에 휩쓸려 단체로 잘못된 판단을 내리는 경우는 항공기죄 말고도 또 있다. '집단사고'라는 개념인데, 똑똑한 사람들이 모여있는 집단이 어떤 현상을 겪은 후 이상한 사고 체계에 빠져서 결국 오류 수정을 못한 채 틀린 결론으로 흐르는 경우다.

행정학 교과서에서는 케네디 행정부의 피그만 사건을 전형적인 예로 든다. 우리가 똑똑하다는 맹신, 잘못된 정보와 가치 판단 등에 취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얘기한다.

그런데 이 항공기죄는 잘못인 걸 알면서도 틀린 결론으로 흘러간다는 점에서 집단지성과도 다르다고 한다. 덜 취한 사람이 누군가는 있는데, 그들이 전체 분위기에 이끌려 제동을 걸지 못하는 무형의 힘이 작용한다는 것이다.

항공기죄가 집단지성보다 무서운 이유는 사후 반성에서 엉뚱한 면죄부를 주는 논리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알고는 있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어서 처절한 자기 반성 대신 '유감스럽다'다는 식으로 갈 여지가 있는 것.

자신은 잘못된 결정을 내린 수많은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다는 책임 축소로 가거나, 자칫 외부인으로서 말하는 '유체이탈 화법'이 될 수 있다고 하면 지나친 비판일까?

이번에 평창동계올림픽은 북한이 핵과 미사일 몽니를 부리는 와중에 깜짝 대화 창구로 활용되면서 세계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무겁게 전쟁 가능성에 짓눌린 것보다 대화 가능성을 열어보자는 노력 자체에는 문제가 없다.

대결과 긴장은 잠시 잊고, 이제 점차 희미해지는 '민족 공동체라는 인식'을 되새기는 자체도 소중하다. 그런 것이 올림픽정신과 스포츠정신일 테니까 말이다.

다만 '평양올림픽'이라는 비판은 분명 지나친 것이지만 모든 걱정과 우려를 불온시하고 금기시하는 것을 지젇하지 않을 수 없다. 자원봉사자 처우가 대체 왜 이러냐는 지적부터, 단일팀 구성에 대한 2030의 강렬한 불만 등 문제가 적지 않다.

한때 문재인 대통령 지지율이 60%선을 밑돈 것은 현재의 문제를 방증한다. 국제 사회의 대북 제재 방침에도 하다 못해 만경봉호에 기름을 줄지, 티켓값을 누가 대행하는 게 옳은지에 대해 지적이 나오는 자체를 일부 문제 언론이나 보수 진영의 헛소리로 치부하는 건 문제다. 

북한의 선수와 응원단, 고위급 인사들이 올림픽을 이유로 남측을 찾는 건 감격스러운 장면이다. 다만 누군가는 대북 제재라는 서슬퍼런 와중에 북한이 배와 항공기를 통해 보란 듯 남측을 드나드는 상황을 '대외적으로 과시하는 저의가  찜찜하다'는 소리를 할 자유는 보장해야 한다.

동계올림픽 하나 치르고 백두혈통과 우리 고위층이 대화를 잠시 하는 게 어떻게든 도움은 될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만으로 남북 대화 자체가 드라마틱하게 전개되고, 분단 상황이 일거에 정리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데우스 엑스 마키나(초자연적 힘으로 극의 긴박한 국면을 없애고, 이를 결말로 이끄는 극적인 요소)를 김일성 일가의 호의에 기대하는 것보다는, 당장 듣기 싫어도 비판의 자유를 허용하면서 이를 잘 응용하는 게 장기적인 도움이 되지 않을까?

통일과 한반도 평화 문제에서 우리 사정이 녹록지 않다는 자체를 외면하고서는 문제 해결 자체가 어렵다. 정부 시책이나 북한의 제스처 하나하나에 박수 갈채를 보내는 것이 갖는 긍정적 에너지도 중요하지만, 냉정에 냉정을 기하겠다는 일부 투덜거림 자체를 입막음하는 건 옳지 않다.

독일 통일 주역은 동독을 따뜻하게 끌어안은 '신동방정책'이었지만, 동독 지도부에게 대단히 부담을 주고 대화 채널로 끌어낸 또 다른 힘이 있다. 서독 연방 정부 기관인 범죄기록보관소 직원들이 '우리가 공산당의 국민 억압 범죄를 다 적고 있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동독에 보내고 압박한 조연의 힘이다.

오늘, 평창에서 개막식이 열린다. 평창의 공기가 지나치게 무겁지 않으면 좋겠다는 게 가장 큰 국민적 열망이겠지만, 공기가 특정 목소리에 선별적으로 부당한 압력을 행사하는 '평창 항공기죄'는 등장하지 않았으면 한다. 공기에 저항할 자유가 전혀 없다면, 군국주의나 주체사상보다 우월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로서의 체면이 말이 아니다. 평창이 아니라 평양올림픽이라는 비판에 할 말도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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