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일지라도 변화의 바람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면 2, 3류 기업으로 주저앉기 십상이다. 기업은 끊임없이 '선택'과 '집중'을 요구받는다. 통칭 '흥국금융가족'이라 불리는 태광그룹의 6개 금융계열사도 선택과 집중의 결과물이다. 이번 [기업해부]에서는 태광 보험 계열사인 흥국생명과 흥국화재를 다뤄본다.
태광의 6개 금융계열사 중 가장 맏형은 흥국생명이다. 태광그룹은 흥국생명에 이어 흥국화재를 인수하면서 생명·손해보험사를 모두 소유한 회사로 거듭난다. 이후 이 둘은 태광그룹의 금융계열사의 핵심축을 담당하게 된다.
◆대주주 이 전 회장 7년 부재…흥국생명, 위기 앞에 '땀 뻘뻘'
이호진 전 회장은 태광 보험, 증권, 저축은행 등 금융 계열사를 흥국생명, 흥국증권, 고려저축은행 산하에 각각 흥국화재, 흥국자산운용, 예가람저축은행을 두는 방식으로 흥국금융가족을 거느리고 있다.
지난해 3분기 기준 흥국생명의 대주주는 56.30%의 지분을 소유한 이 전 회장이다. 이 외에도 계열사 및 재단인 대한화섬(10.43%), 일주학술문화재단(4.70%), 한국도서보급(2.91%)와 친인척 이원준씨(14.95%), 이동준·태준씨(각각 3.68%) 이정아·성아씨(각각 1.82%)가 지분을 가졌다.
같은 기간 흥국화재의 대주주는 흥국생명(59.56%)과 제2대 주주는 태광산업(19.63%)이다.
이처럼 이 전 회장은 자신이 직접 소유한 주식 외에도 자신이 대주주인 태광산업, 대한화섬, 한국도서보급을 통해 흥국생명과 화재의 간접 보유 주식도 있을 만큼의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2011년 이 전 회장이 1400억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지난 2012년 경영에서 물러나면서 회장 자리는 7년째 공백이다. 지난해 흥국생명은 대주주인 총수 부재 탓에 자본확충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얘기도 업계에 나돌았다.
흥국생명은 작년 초 지급여력비율(RBC비율)이 145.4%까지 떨어지면서 시중은행으로부터 방카슈랑스 판매를 제한당했다. 대개 이러한 상황에서 모기업과 대주주는 유상증자라는 처방을 내리지만 재판으로 발이 묶인 이 전 회장과 태광에게 기댈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흥국생명은 모기업의 지원 대신 지점 통폐합과 구조조정, 신종자본증권 및 후순위채권 등을 통해 RBC비율을 작년 2분기 162.2%까지 끌어올리는 데 성공하면서 방카슈랑스 판매를 재개했다.
그러나 3분기 흥국생명의 RBC비율은 157.6%까지 떨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모든 보험사가 그렇듯 흥국생명도 2021년 시행되는 국제회계기준(IFRS17)과 신 지급여력제도(K-ICS) 도입에 앞서 자본확충이 필요하다. 이런 위기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총수의 부재는 또다시 문제가 될 여지가 크다.
◆드디어 '지주사 체제' 태광…복잡한 출자구조 정리
지난해 말 태광그룹은 주력 계열사들을 거느린 한국도서보급과 티시스 투자부문, 쇼핑엔티를 합병하기로 발표하고 지주회사 체제를 구축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문재인정부의 지배구조 정비 방침에 따라 지주사 체제 전환을 통한 복잡한 출자구조를 정리한 것인데, 경영 지배력이 한층 높아진다는 특징이 있다.
태광의 실질적인 지주사 역할을 하게 될 한국도서보급의 지분은 이 전 회장과 그의 아들 이현준씨가 92.9% 갖게 된다. 또 한국도서보급은 태광산업과 대한화섬의 지분을 각각 11.2%, 33.5% 보유하게 된다.
이로써 태광그룹의 지배구조는 '이 전 회장-한국도서보급-태광산업·대한화섬으로 수직 계열화된다.
지배구조 개편 당시 태광그룹은 "지배구조 개편이 끝나면 계열사 수는 26개에서 22개로 총수 일가 보유 기업은 7개에서 1개로 줄어든다"며 "계열사 간 내부거래와 일감 몰아주기 논란이 모두 해소된다"고 설명한 바 있다.
다만 태광그룹이 지주사 체제로 전환한다면 금융계열사들을 정리해야 한다. 공정거래법상 일반지주회사가 금융회사를 자회사나 손자회사로 두는 것을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지분율을 살펴봤듯 한국도서보급과 대한화섬은 흥국생명의 지분을 각각 2.91%, 10.43% 가지고 있다. 이 외 금융 계열사인 흥국증권과 고려저축은행의 지분도 마찬가지다.
◆흥국금융가족 정리, 지주사 전환 '키포인트'
지주사 전환 이슈를 해소하려면 태광은 이들 계열사가 보유한 금융 지분을 모두 이 전 회장이 매입하는 방향 또는 시장에 매각하는 방향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 금융 계열사를 파는 방안도 있지만, 태광이 수십년에 걸쳐 '흥국금융가족'을 완성한 만큼 이러한 선택을 할 확률은 낮다.
특히 현재 금융 계열사 중 가장 많은 수익을 내는 흥국생명과 화재를 매각할 확률은 더욱 없어 보인다.
흥국생명의 지난해 3분기 당기순이익은 1245억원으로 전년 3분기보다 61.7% 증가했다. 4분기 실적은 아직 발표하지 않았지만 역대 최대 실적을 예상한다는 게 이 업체의 설명이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에 따라 흥국생명보다 4분기 실적 발표를 일찍한 흥국화재의 작년 당기순이익은 전년보다 175.2% 급증한 867억515만원이었다.
이렇듯 태광은 계열사 매각을 제외한 금융 계열사 해결 방법을 시급하게 마련해야 지주사 전환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이지만 이는 풀기 쉽지 않은 문제다.
만약 이들 계열사가 금융 계열사의 지분을 시장에 내놓을 경우 흥국생명과 고려저축은행의 2대 주주인 이 전 회장의 장조카 이원준씨가 사들여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이씨는 이임용 태광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 이식진 전 태광그룹 부회장의 장남으로 2010년 이 전 회장의 누나와 이복형제들이 상속 관련 소송을 걸었을 때 합류한 인물이다.
2대 주주인 이씨가 시장에 나온 지분을 어느 정도 사들인다면 흥국생명과 화재, 고려저축은행에서 이 전 회장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