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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남은 것 없는 평창? 국가이성 확립이 과제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2.19 10:33:43

[프라임경제] '평창 외교'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북한은 핵과 미사일을 도구삼아 국제 사회의 관심을 끌기 위해 노력했지만 글로벌 제재 등 역효과만 거뒀고 그 후폭풍으로 한반도 주변 긴장이 고조됐다.

우리 측도 북한도 이 같은 긴장 상황이 달갑지 않고 해결을 위한 노력도 없지 않다.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방문, 문재인 대통령을 접견하는 등 남·북간 화해 기류가 조성된 것은 평창 동계올림픽이 빚은 성과다. 

하지만 이런 성과물이 바로 남·북 정상회담 추진으로 이어지거나, 그것을 통해 문제가 모두 해결될 지는 미지수다.

미국은 대북 제재 국면에서 우리 정부가 벗어나는 것에 우려가 큰 것으로 보인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방한 당시 북측 인사와의 접촉 거부로 냉랭한 기류가 조성됐고, 급기야 철강 제재 목록에 우리를 중국 등과 나란히 올려놓으면서 국제정치 질서에 거슬리는 경우 경제 현안에서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전통적 우방국들이 제재 대상에서 빠진 상황에서 이런 차별에 합리적 이유는 별로 없어 보이고, 그런 불합리성의 크기만큼이나 미국과 우리가 쉽게 대화를 통한 해결 물꼬를 틀 가능성은 요원해 보인다.

평창 해빙 기류를 일거에 얼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미국의 힘은 막강하다.

문제는 태평양 건너 미국이 냉전 시절 대비 한결 거칠고 이기적이기만 한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는 상황에서, 바로 옆 중국도 이기주의로 점철된 경제와 국제정치 질서 구축의 꿈을 계속 꾸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몽'에 편승하겠다고 선언하든, '한반도 운전자론'을 제창하든, 미국과 대화와 우호협력 확인 작업을 하든 어느 것 하나 쉽게 풀리거나 부작용 혹은 후폭풍 없이 구사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운신 폭은 좁다. 문재인 정부의 잘못으로 어려운 방정식을 받아든 것은 분명 아니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저질러 놨다'는 것만으로 모든 것에 면죄부가 주어질 것도 아니다.  

'이번 평창 외교로 여러 국가의 정상급 인사와 스포츠 외교를 소재로 다양한 구제 협력 관계 구축과 강화 성과를 올렸다'고 결산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그렇게 요약되기에는 미국과 북한이 서로 내뿜은 언사로 초래된 풍파가 크다. 이리저리 빼고 더하기를 해 정산을 하면 0로 수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게 다일까? 우리가 아무리 선의로, 민족 의식으로 접근해도 과거부터 한결같이 이어져온 우방 정서를 기반으로 대해도 안 풀리는 일이 있고 그런 불확실성이 더 크다는 것을 배운다면 그 자체는 앞날을 향한 소중한 성과일 수 있다. 

프랑스의 절대 왕정 전성기 에너지를 비축한 명재상으로 리슐리외 추기경을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천주교 성직자이면서도 30년 전쟁이라는 글로벌 외교 각축전에서 스페인을 견제하고자 개신교 국가들과의 동맹 구축 카드를 꺼낸 그 리슐리외 추기경이다. 

이 인물을 기점으로 프랑스는 국가는 거창한(때에 따라서는 허상인) 도덕(혹은 명분)에 따라 움직이기 보다는 국익만을 추구한다는 '국가이성(raison d’etat)'이라는 개념을 확립해 강국으로 군림했다. 평창 줄다리기에서 우리가 눈뜰 국가이성이 무엇일지, 그것을 통해 어떻게 줄타기를 할지 이번 철강 제재 파문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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