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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한반도 운전자론, '뮌헨협정 부메랑' 맞지 않으려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3.07 08:52:59

[프라임경제] 세계 제1의 강국, 그리고 3대가 연이어 권력을 물려받을 뿐더러 핵까지 가진 독재국가 그런 둘 사이의 줄타기란 쉬운 일은 아닐 것이다. 6일 저녁,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은 다소 상기된 모습으로 대북 특별사절단의 성과를 발표했다.

비핵화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의사 확인을 한 점에서 소기의 목적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대화 중에 추가 핵실험을 하지 않겠다고도 했고, 우리에게 핵이나 재래식 무기를 쓰지 않겠다는 확약도 했다. 4월에 남북 정상회담을 하자는 합의도 이뤄냈다.

솔직히 좀 놀라울 정도로 열심히 일하고 성과물을 만들어 온 그 수고로움과 애탔을 시간에 감사를 전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북측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다. 자신들의 체제안전만 보장해 주면 비핵화 문제를 놓고 미국과 대화할 생각임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물론 현재 국제 사회의 제재를 풀고, 체제안전을 보장받으려면 우리보다는 미국과 최종 대화를 하기는 해야 한다고 이해할 수도 있다.

우리로서는 어려운 상대를 놓고 '대하기 마냥 편한(적나라하게 적자면 만만한)' 우방은 아닌 강대국 친구를 옆에 둔 상황에서 적절한 혹은 그 이상 성과를 얻은 건 사실이다. 이는 일명 '한반도 운전자론'이 얻어낸 피땀어린 성과다. 자부해도 좋을 만한 일이다.

다만 앞으로 조건 문제 때문에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물론 일본 등 주변국 모두를 설득하는 추가 숙제가 남았다. 우리가 주연 역할을 꼭 할 수 있을지도 확언하기 어렵다. 요점은, 한반도 운전자론을 갖고 가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만, 이를 슬기롭게 구사하는 것과 마냥 이를 고집하는 것은 분명 다를 수 있다는 냉엄한 현실에 우리가 서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물론 우리가 이번에 이 같은 성과를 얻어낸 것은 분명 미국에 모든 것을 맡기고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에 비할 바 아닌, 훌륭한 성과였다. 다만 이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우리가 걸머졌을 불안감과 각종 손해가 쓰라릴 것이라는 점만은 못해도, 앞으로 그보다는 작은 또다른 쓰라림을 맛볼 수는 분명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에만 집착하거나, 혹은 우리 외교의 우선 순위를 매기는 데서 혹시나 실책을 하면 결과도 크게 쓰라릴 것이라는 점을 지나쳐서는 안 될 것이다.

자칫 이번 대화나 비핵화 단초 그 자체에 너무 매몰돼 지금껏 우리가 미국이나 중국 등 주변과의 외교로 누려온 지위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된다면 그건 큰 문제일 것이다. 기우일 수 있겠으나, 잘못된 정책이나 외교 구사로 강대국으로부터 팽당하는 약소국 친구의 예는 고금을 통해 적지 않다.

일례로 1938년 9월 영국은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의 수데텐 지방을 점령하는 대신 추가 침략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뮌헨협정을 허용했다. 이때 체임벌린 당시 영국 수상은 히틀러와 독일이 더 이상의 침략과 도발을 하지 않을 것으로 믿거나 혹은 뭔가 조금쯤 속아주는 기분으로 서명했을 것이다.

유감스럽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심리 상태는 대단히 안정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것 같다. 자칫 이번 남북간 대화와 합의 성과가 우리에게 부메랑이 될 여지는 거기에 있다. 특히, 한반도 운전자론을 잘못 사용해 이것이 백악관이 잘못된 판단이나 우리에 대한 불만으로 연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모두 우리가 '이용'해야 할 상대지만 미국의 중요성은 그 중에서도 막중하다. 미국에 더도 없을 친구가 북핵 해결 단초를 여는 것과 신뢰성이 뭔가 부족한 나라가 자기들과 민족이 같은 문제적 존재(김정은 체제)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조건이 붙은 협상안을 들고온 것은 다르다. 

이제 북한의 질주를 잠시 막은 실력을 전통의 우방 미국과의 신뢰감을 굳건히 강화하는 데 기울일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뮌헨협정 못지 않은 배신으로 한국을 대충 포기하고 미국의 안전만을 극대화하는 이상한 최종 결과를 택하지 말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게 6일의 엄청난 중간 성적표 앞에서 건배를 들고 난 뒤 꼭 챙겨 먹어야 할 쓴 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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