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쉽게 만드는 것'만이 UX는 아니다

2018-03-16 17:50:42

[프라임경제] "가장 신경 쓰고 있는 부분은 모바일뱅킹 사용자 경험(UX) 혁신이다. 모바일뱅킹은 고객이 은행 창구를 방문했을 때와는 다르게 직접 업무를 처리해야 하지만 마치 은행 직원이 옆에서 도와주는 것처럼 쉽고 간편하게 프로세스를 만드는 게 핵심이다."

얼마 전 모 은행의 임원이 모바일뱅킹을 개편한 후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은행에서 처리하는 업무는 낯설기도 하고 절차가 자주 바뀌기 때문에 담당 직원이 옆에서 도와주면 수월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다. 은행에서 VVIP들을 위한 공간을 운영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모바일 디바이스를 통한 UX는 최소의 비용으로 모든 사용자에게 VVIP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UX라는 키워드로 검색해 볼 수 있는 기사는 대부분 기존보다 사용하기 쉽고 편하게 만들어졌다는 표현이다. 이러한 접근 방법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른 경쟁자와 차별화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독특한 사용자 경험으로 열혈한 팬층을 거느리는 막걸리 이야기를 통해 UX의 다른 측면을 살펴보자. 막걸리는 흔히들 저렴한 술이라고 생각한다. 한 병 가격은 소주와 비슷하지만 보통 700mL 기준이기 때문에 용량 대비 가격이 저렴하다. 

마트에서는 1000~1500원 정도의 가격대가 형성됐는데, 가끔 숫자를 잘못 읽는 막걸리들이 있다. 1000원이 아니라 1만2000원짜리 막걸리다. 그중 대표적인 막걸리가 '복순도가(福順都家)'라는 막걸리다.

복순도가는 울산의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고 있다. 양조장 이름도 술을 빚으시는 박복순님의 이름에서 따왔다. 뭔가 역사적인 스토리가 담긴 명인의 술도 아니라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떤 점이 저런 가격 차이를 가져왔을까. 

다른 막걸리와 가장 큰 차이는 수제 방식으로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대량으로 공장에서 생산되는 막걸리와는 차이가 있다. 모든 작업이 손으로 직접 이뤄지기 때문에 그만큼 인건비의 비중이 크다. 

또 하나의 차이는 재료와 숙성 기간이다. 1만원대 이상의 막걸리들은 대부분 지역 내 품질 좋은 재료를 사용하고 100일 이상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 그 기간의 보관, 관리 비용이나 기회비용 등이 제품 가격에 포함되는 것이다. 

복순도가의 경우 기존의 양조장과는 다르게 전통적인 발효 방법을 최적화한 형태의 건축물로 유명한 공간이다. 양조장 장남이 건축을 공부하고 와서 '발효건축'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내면서 그 결과를 양조장 건물로 담아냈다.

여기까지만 얘기하더라도 비싸 보이는 막걸리에 대한 충분한 변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복순도가는 한 가지 더 매력적인 요소를 가졌다. '막걸리계의 돔페리뇽'이라는 별명이다. 

일반적인 막걸리도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탄산을 가져 개봉할 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넘친다. 하지만 복순도가는 마치 샴페인처럼 강한 탄산을 가진 것이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흥미로우나 이 술을 처음 만난 이들에게는 불쾌한 경험이 될 수 있다. 

병목에 표시된 라벨에 '여실 때 천연 탄산에 주의하세요'라는 문구가 있지만, 일반적인 사용자는 주의 문구에 그다지 신경 쓰지 않는다. 막걸리를 먹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병을 살짝 흔들어 개봉하려고 한다. 이때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탄산이 폭발하면서 온 사방에 그 흔적을 남긴다. 

여기까지 보면 이 술은 사용자 경험이라는 관점에서 제대로 만들어지지 못한 제품이다. 그러나 의외로 이런 불쾌한 경험을 가진 사용자를 찾기는 쉽지 않다. 이 술을 처음 접하는 경로가 마트에 가서 직접 구매하기보다 전통주 전문점에서 처음 접하거나 지인을 통해 선물을 받기 때문이다.

전통주 전문점에서 복순도가 제품을 주문할 경우, 가게 점원은 먼저 이 술을 만나본 경험이 있는지 물어본다. 이어 그들은 술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면서 직접 술을 개봉한다. 

흔들지 않은 상태에서 병뚜껑을 살짝 비틀어주면 내부에서 폭발적으로 탄산이 올라오면서 투명했던 막걸리가 뽀얗게 변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 모습에 모두 감탄을 토한다. 그리고 마치 아이를 달래듯 정교하게 뚜껑을 열어가면서 얘기를 이어간다. 

이런 서비스를 경험한 사용자는 이제 복순도가라는 브랜드의 열혈팬이 되기도 하며 술자리에서 이 술을 주문하고 자신이 직접 나서 이야기를 풀기도 한다.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는 바로 사용하기 어려운 불편함이지만 어느 정도 경험이 쌓인 이들에게는 한없이 매력적인 요소다. 

UX라는 표현을 수면위로 떠오르게 만든 애플의 아이폰 역시 처음 사용자에게는 불편한 요소가 많았다. 하지만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경험이 쌓이자 애플의 열혈 신도들은 기하급수 늘어났다. 스티브 잡스 전 애플 CEO가 남긴 말은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의미를 담았다.

"Design is not just what it looks like and feels like. Design is how it works.(디자인은 어떻게 보이고 느껴지냐의 문제만은 아닙니다. 디자인은 어떻게 기능하냐의 문제입니다)."

모든 제품이 낯선 업무를 도와주는 방식의 UX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소프트웨어 개발 도구의 경우 처음 사용할 때 불편함과 낯선 환경을 제공한다. 제품을 설치하고 환경을 설정하는 것이 간단하지는 않다. 

다만 기본적인 설정을 마친 뒤 개발 도구 없이 개발하는 것에 비해 훨씬 높은 생산성을 얻을 수 있으며 어느 정도 익숙해진다면 열혈 사용자가 되고 만다.

UX라는 키워드는 편함, 쉬움, 익숙함 같은 키워드와 가깝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제품을 사용하면서 얻을 수 있는 만족감을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불편하지만 더 큰 만족을 얻을 수 있다. 

이준하 투비소프트 연구개발본부 매뉴얼팀장


이준하 투비소프트 연구개발본부 매뉴얼팀장 press@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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