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해부] 한국투자금융지주 ① 태동과 성장…동원 버리고 한국, 결과는 성공적

2018-03-22 11:32:53

- 김남구 부회장, 성공적 M&A로 증권사 중심 금융지주로 성장

[프라임경제] 국내 최초 증권사 중심 구조를 확립한 한국투자금융지주(071050, 이하 한국금융지주)가 성공적인 수익 다변화와 자회사 성장에 힘입어 꾸준한 성장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지난해 모든 사업 부문에서 업계 최상위 실적을 달성하며 금융지주사의 입지를 탄탄히 다지고 있다는 평가다. 

한국금융지주는 자회사로 △한국투자증권 △한국투자파트너스 △한국투자저축은행 △한국투자캐피탈 △KIARA Advisors △이큐파트너스 △한국카카오은행 등을 두고 있다.

대부분의 금융지주사들이 은행을 중심으로 이뤄졌으나 한국금융지주는 한국투자증권을 위시한 9개 자회사와 21개 손자회사, 9개 증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동원' 버리고 얻은 '한국'

한국금융지주의 성장을 알아보려면 두 개의 기업을 살펴봐야 한다. 동원증권의 전신인 한신증권과 한국투자신탁이다.

1968년 12월 설립된 한신증권은 1982년 동원그룹에 71억2000만원에 인수된 이후 사명도 동원증권으로 변경됐다.

2003년에는 동원증권·투신운용·저축은행·창투·캐피털 등을 묶어 은행이 아닌 증권사 중심의 국내 첫 금융지주회사로 거듭났다. 이후 동원금융지주를 증시에 상장한 뒤 2004년 동원그룹과 계열분리를 마무리했다.

1974년 설립된 한국투자신탁은 2000년 6월 증권사 전환을 마쳐 한국투자신탁증권으로 상호를 변경했다. 이후 2003년 6월에는 한국투자증권으로 이름을 한번 더 바꿔 달았다.

동원증권과 한국투자증권은 2005년 합병하며 몸집을 키웠다. 동원증권은 한국투자증권 인수로 7~8위권 중형사에서 업계 4위로 뛰어 올랐다. 

합병 후 '동원' 식구였던 동원증권이 택한 이름은 한국투자증권이었다. 동원금융지주도 한국투자금융지주로 이름을 변경했다. 자존심을 지키기 보다 브랜드 파워를 먼저 생각한 어찌 보면 자본시장에서 응당한 조치였다.

한국투자증권의 전신인 한국투자신탁증권은 1980년대 당시 3대 투신사 중 하나로 꼽힐 만큼 시장 영향력이 컸다.

해외진출 때도 '동원' 보다 '한국'이라는 이름이 유리할 것이라는 경영진의 판단도 현재 '한국투자금융지주' 탄생에 한몫한 것으로 알려졌다.

◆'고래 먹은 새우' 승부사 오너 2세

한국금융지주의 지분 20.2%를 보유한 김남구 부회장은 기업 성장의 1등 공신으로 꼽힌다. 과거 '느리지만 안정적인' 스타일의 동원증권은 김남구 부회장이 키를 쥐면서 빠르게 변화했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남구 부회장은 고려대 경영학과와 일본 게이오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동업산업을 거쳐 1991년 동원증권에 입사했다.

▲김남구 한국투자금융지주 부회장. ⓒ 한국투자증권

특히 김재철 회장은 김남구 부회장이 대학 졸업 무렵 '회장 아들' 신분을 속이고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6개월 동안 생활하도록 하는 등 후계자 교육을 억세게 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북태평양행 명태잡이 원양어선에서 하루 18시간 넘도록 중노동을 했다는 전언도 들린다.

김 부회장은 1991년 동원증권 대리로 첫 입사하며 금융권에 발을 들였다. 1995년 이사대우로 승진하기 전까지 지점영업, 자산관리, 기획 등의 업무를 맡았다. 2000년 동원증권 부사장, 2003년 동원금융지주 대표에 올랐다.

특히 2004년 칼라일, 우리금융지주와 한국투자증권 인수를 놓고 경쟁해 승리한 것은 동원증권 성장세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시 업계에서는 덩치가 작은 동원증권의 한국투자증권 인수를 두고 '새우가 고래를 먹었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였다.

합병 후 곧장 구조조정에 나서지는 않았지만 노조가 회사 합병과 관련해 고용보장 등을 요구하며 파업에 돌입하는 등 5개월간 노사협상이 진행되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 2007년에는 47세였던 유상호 사장을 한국투자증권 CEO 자리에 앉혔다. 당시 최연소 CEO로 유명세를 탄 유 사장은 현재 11년째 연임에 성공해 '최장수 CEO'가 됐다. 김 회장은 2002년 옛 메리츠증권과 스카우트 전쟁을 벌인 끝에 유 사장을 동원증권으로 데려왔다.

◆아픔 컸던 성장통… 사건·사고史

그러나 한국금융지주가 항상 무탈한 길을 걸어온 것은 아니다. 한국투자증권을 인수하며 한 차례 큰 성장을 이뤘지만 곳곳에서 암초를 만나기도 했다.

2002년에는 KTB네트워크 지분을 12%가량 매입하며 KTB네트워크와 갈등을 겪었다. 김 부회장은 벤처투자 확대차원에서 지분을 취득했을 뿐이라고 밝혔으나 이후에도 주식처분 위임장 제출 문제 등으로 당시 권성문 사장 측과 날을 세웠다.

끝도 좋지 않았다. 3년 뒤인 2005년 1월 당시 동원증권은 KTB네트워크 지분 10.75%를 처분했다. 지분 매입 단가는 1만원을 훨씬 넘겼으나 매도 단가는 2700원선으로 손해를 감수했다.

은행업 진출을 목표 삼아 다양한 인수합병(M&A)을 시도했으나 미끄러진 경험도 있다. 2002년에는 서울은행 인수전에 뛰어들었으나 인수협상자로 선정되지 못했다.

이후에는 하나은행 지분을 보유하며 하나은행 인수설에 힘이 실리기도 했지만 한국금융지주는 이후 갖고 있던 하나은행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도하며 인수설에서 멀어졌다.

▲한국투자증권 본사 전경. ⓒ 한국투자증권

최근에는 두 차례 증권사 인수전에서 쓴맛을 봐야 했다. 2015년 KDB대우증권 인수전에 적극 뛰어들었으나 박현주 미래에셋금융그룹 회장이 통 큰 배팅에 나서며 인수에 실패했다. 이후 현대증권 인수전에서는 KB금융지주에 밀렸다.

인수전에서 각 증권사 노조가 한국투자증권으로 매각되는 것을 적극 반대했다는 점도 눈에 띈다. 노조들은 구조조정 위험성과 함께 한국투자증권이 직원들의 희생을 강요한다는 점을 비판했다.

특히 KDB대우증권 노조는 2015년 한국투자증권이 대우증권 인수전에 참여하겠다고 밝히자 즉각 반발하기도 했다. 대형사 간 합병이 이뤄질 경우 대규모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이유였다.

현대증권 노조 또한 2016년 한국투자증권으로 매각을 반대하며 매각 저지 집회를 열었다.

이후 한국투자증권이 '4조원대 자기자본 확충을 위한 방안 중 하나로 하이투자증권 인수, 유상증자 등을 고려 중'이라고 공시하자 하이투자증권 노조도 한국투자증권으로의 인수를 반대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당시 하이투자증권 노조는 성명서를 통해 "반노동·반노동조합 인수후보자에 반대한다"며 "회사 성장을 핑계로 여전히 노동자의 희생만을 강요하는 회사로 정평이 난 회사가 하이투자증권을 인수한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강하게 대응했다.

잊을만 하면 터지는 자회사의 금융사고도 한국금융지주의 골칫거리다. 잇단 금융사고에 2017년 한국투자증권은 전 직원의 신용등급을 조회해 등급이 낮은 직원은 영업점 근무에서 제외시키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오래 지나지 않은 지난 2016년 발생한 한 사건이 이 같은 조치의 발단이 됐다는 진단이 나오기도 한다. 당시 한국투자증권 강서지점에 근무했던 A차장이 약 50억원 가량의 고객돈을 편취한 뒤 잠적해 논란이 된 사건이 있었다.

무엇보다 A씨는 앞서 두 차례 금융사고를 일으켜 징계를 받은 전력이 있어 한국투자증권의 허술한 직원관리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다. 같은 해 10월에는 여수충무영업소 직원이 고객 돈 약 45억원을 본인 개인 계좌로 챙겨 달아났다.

여기 더해 한국금융지주의 작년 9월 분기보고서를 보면 한국투자증권은 지난해 부당한 재산상 이익의 수령 금지 위반, 고객정보 유출 등 3건의 제재를 받았다. 한국투자파트너스는 기업결합신고규정 위반행위 대한 건으로 840만원의 과태료를 납부하기도 했다.

올해도 직원들이 차명계좌 등을 이용한 주식투자를 해 무더기로 징계를 받았다. 지난 1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한국투자증권 직원 11명이 회사 몰래 주식 등을 거래한 사실이 적발돼 제재를 받았다.

소송도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한국투자증권은 초대형 투자은행(IB)으로 지정된 증권사 5곳 중 소송건수가 42건에 달해 가장 많았다. 원고로 제기한 소송은 11건, 피고로서 법정에 서는 소송은 31건이었다.



이지숙 기자 ljs@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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