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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당신은 '정신과 환자'입니까? '소비자'입니까?

 

[프라임경제] 언젠가부터 우리나라도 우울증에 대해 '마음의 감기'라 표현하며, 살면서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흔한 삶의 문제임을 알리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누군가 몸이 아플 때 흔히 '병원에 가봐라'라고 얘기하며 어느 병원이 좋은 지 추천도 해주곤 하지만 우리의 마음이 아플 때는 어떠한가?

이제는 우울증이 '마음의 감기'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교육이 된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정신과에 가봐라'라고 한다면, 왜 여전히 기분 나쁜 말이 되는 문화에 머물러 있을까. 

작년 한 해 정신건강 서비스 이용자는 160만 명을 넘었다. 또한 4명 중 1명이 정신적인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현실에서 정신건강 문제에 대한 사회적 낙인과 편견은 과연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통과된 사회복지사업법 개정안에는 '정신질환'을 결격사유로 규정한 법령 120여 개가 포함됐다. 이는 사회복지사는 물론이고 국민영양관리, 공중위생관리 등 다양한 직업 영역에서 '정신 장애'의 이유로 애초에 직업 자격조차 가질 수가 없게 됨을 뜻한다. 

정신적 문제에 대한 직업적 차별법이 존재하는 나라는 OECD 국가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며, 그것도 4차 산업혁명을 운운하는 시대인 바로 작년에 이 법이 통과됐다는 사실이 실로 놀랍다. 

이는 정신건강에 대한 우리 사회의 여전히 차별적이고 왜곡된 인식이 이러한 퇴행적 정책을 낳았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인식이 바뀌어야 정책이 바뀔 수 있다. 

'정신 장애'를 말하기 전에 먼저 앞서 발전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어떻게 이뤄져 왔나. 장애인 인식에 대한 변화는 장애인을 표현하는 용어의 변화를 통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오래 전 영어권에서는 장애인을 뜻하는 용어로 '핸디캡트(Handicapped)'라고 표현 됐지만, 90년대 들어서는 그 사람이 환경에 따라 할 수 있게(Abled)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단어인 '디스에이블드(Disabled)'로 장애인을 뜻하는 용어가 바뀌었다.
 
지금은 장애가 아닌 사람으로 먼저 바라보는 '피플 퍼스트 랭귀지'라는 언어 표현 원칙에 따라 "a Person with Disability"로 주로 쓴다. 이는 발달장애인들의 권리옹호 운동에서 나온 "나는 우선 사람으로 알려지기를 원한다"라는 말에서 유래된 것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암 환자의 경우에도 환자의 임파워먼트(힘을 불어넣어주는 것)를 위해 'Cancer Patient'에서 'a person with cancer'으로 표현하며 바꿔나간 바 있다. 

그렇다면 정신질환에 대한 표현은 어떠한가. 장애인이라고 해서 시설에 비장애인과 분리해 버리고, 차별하고 비하하는 문화가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은 '사람'이 우선되는 것이 아닌 '장애'에 초점을 맞춰 표현하고 있는 우리의 언어와도 상관이 있다. 

정신질환자, 정신장애인이라고 불러 우선순위를 정신, 장애, 사람(인)의 순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사람, 장애, 정신의 순서로 바라보는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지 않을까.

'정신과 환자' '조현병 환자'라고 바로 병명 혹은 DSM-5에 따른 진단명으로 부르는 것은 사람은 사라지고 병원에 가는 순간 바로 약자가 되어버리는 구조를 만들어 버린다. 

그러나 진단에 중점을 두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회복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진단은 단지 전문 용어(jargon)의 형태로 전문가들이 빨리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정의하고 이에 따른 조치와 도움을 주기 위해서 한 단어로 정의 한 것이지 어느 순간 이 사람의 인간성과 능력, 여러 가지 인권을 무시할 수 있는 파워로 쓰여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사건이 났을 때 '정신질환자로 추정' 등과 같은 기자들의 자극적인 기사 제목과 드라마나 영화에서 표현되는 정신적 문제에 대한 편견과 왜곡된 인식은 이미 우리들 머릿속에 존재하는 '정신건강 문제' 에 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계속 강화시키고 있다.

물론 지금은 10년 전보다는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우리가 말하는 정신건강 선진국들처럼 편견과 낙인 없이 SSRI 등의 항우울제를 복용하는 것, 혹은 심리상담을 받는 것을 부끄럽지 않게 생각하기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여전히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13년 연속 자살률 1위다. 

이제는 정신과 환자(Patient)에서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Consumer)로 재정의하는 소비자 임파워먼트가 필요하다. 우리 스스로도 문제가 있는 정신 이상자가 아닌 정신건강 서비스를 이용하는 소비자로 생각할 때 우리는 공급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요구하고, 더 높은 서비스의 질을 만들어 내라고 주장할 수 있다. 

진단명으로 규정해버리는 것이 아니라, 더 힘이 있는 하나의 인간으로 차별 및 편견 없이 대하게 될 때 정신건강 서비스 공급자의 문턱도 낮아지고 그 서비스의 질도 높아 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통의 전문가' '아픔의 전문가'인 당사자들이 앞장서는 소비자 중심의(Consumer-centered) 정신건강 사회혁신 운동이 필요한 이유다. 

최용석 멘탈헬스코리아 회장 ⓒ 멘탈헬스코리아

정신적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더 이상 숨어 지내야만 하는 사회적 약자의 포지션이 아닌 적극적인 임파워먼트 집단이 돼야 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그 동안 정부와 공급자들이 해결하지 못했던 대한민국 정신건강 생태계의 복잡한 실타래를 풀어나갈 수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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