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의 M&M] 누군가에게는 잊지 못할 슬픔이겠지만

2018-03-30 18:14:16

- Regina Spektor - The Visit

[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민요 '아리랑'도 다양한 지역특색은 물론, 한국 근세와 근대의 민족사, 사회상까지 반영하고 있죠.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usic & MacGuffin(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수많은 범죄행각을 벌이고 십수년간 도망치던 범죄자가 오랜 추적 끝에 체포됐다고요? 묵혔던 체증이 내려가는 쾌감을 느끼지 못하셨나요? 저는 마음의 평안까지 찾았습니다. 

뻔뻔하게 수도 없이 부인하던 혐의가 진실로 드러나고, 처벌까지 받을 상황에 놓였다고요? 이게 무슨 냄새죠? 누가 이 근처에서 깨를 볶고 있나 봅니다. 

그 범죄자를 옹호하는 사람들이 예측하지 못한 상황에 눈물까지 흘리면서 반발심과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고요? 잠깐만요, 고소한 냄새가 코를 찌르는데요? 찬장에 둔 참기름 병이 깨졌나 확인해 봐야겠습니다.

스물한 번째 「M&M」에서 매우 주관적으로 비아냥거릴 노래는 미국 싱어송라이터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의 더 비지트(The Visit)입니다. 

1980년 2월 러시아(당시 소련) 모스크바에서 태어난 레지나 스펙터는 사진작가이자 바이올리니스트였던 아버지와 모스크바 음대의 피아노 교수였던 어머니 슬하에서 6살 때부터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9살 때부터는 자작곡도 써내려갔죠. 

▲싱어송라이터 레지나 스펙터(Regina Spektor) ⓒ 구글 이미지 캡처


이런 배경 때문일까요. 그녀의 노래를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한편의 서정적인 시라고 할 수 있는데요. 실제로 그녀의 노래를 듣고 있으면 마치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클래식 연주를 한 곡 듣는 것처럼 힐링하는 느낌을 받습니다. 어떤 곡은 박카스 CF 음악으로 사용될 만큼 회복력이 굉장하죠 레지나 스펙터의 장르는 팝과 록인데도 말이죠. 

혹자는 사랑스러우면서도 가슴 저리게 하는 목소리, 엉뚱하지만 진지한 멜로디, 종잡을 수 없지만 결코 난잡하거나 거칠지 않은 음악이라고 표현합니다. 

1998년 데뷔해 세 편의 자작 앨범으로 뉴욕 인디 음악계에서 소련에 페레스트로이카 바람이 불었던 1990년(10살 무렵) 레지나 스펙터는 미국에 정착한다 큰 인기를 얻은 레지나 스펙터는 2004년 한 레코드 사(사이어 레코즈)와 계약한 이후 대중적으로도 이름을 알리기 시작합니다. 

이후 매 앨범 마다 최고의 곡이라고 찬사를 받은 레지나 스펙터는 가장 최근인 지난 2016년 일곱 번째 앨범을 공개하며 음악력을 쌓았는데요. 오늘 소개해 드릴 노래는 이 일곱 번째 앨범에 수록된 'The Visit'입니다. 

네가 머물러줘서 난 너무 기뻐. 참, 네게 들려주려던 이야기가 있었는데. 지금은 잊어버렸지만, 다른 어떤 날, 다른 방법으로 들려줄게. (…) 우리를 가두는 저 벽들과 철창들 너머의 모든 것들은 변하지. 내일이 먼 과거가 될 때까지 끊임없이. 네가 잠시 들러줘서 너무나 기뻐. 왜 왔는지는 묻지 않을게. 그냥 널 보는 것만으로도 좋으니까. 넌 가끔 날 한숨짓게 만들지만, 결국 넌 항상 날 미소 짓게 만들기 때문이야. 

화자가 있는 곳으로 누군가 찾아왔나봅니다. 화자는 기분이 좋지만, 방문자는 그곳을 벽으로 둘러쌓인 새장처럼 느끼고 있죠. 하지만 화자는 눈치도 없이 방문자에게 와줘서 기쁘다고 너스레를 떨고 있네요. 

방문자는 그곳이 싫지만 오래 머물러야 하는 상황인 것 같은데요. 화자는 그에게 해줄 얘기가 있지만, 급하지 않다는 듯 언젠간 말해줄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거라고 말합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이 먼 과거가 되더라도 말이죠. 

때론 궁금해. 왜 멀리 떨어져 울리는 천둥소리가 항상 널 두렵게 하는지 (…) 네가 와줘서 너무 기뻐. 여러해가 지난 걸 알아. 너를 보니 기쁘다. 눈물 흘릴 필요는 없어. 시간의 가장 친한 친구는 두려움이야. 시간은 두려운 순간을 통해 우리에게 자신을 찾을 수 있도록 해주니까. 시간은 항상 우리에게 상기시켜주지 그게(두려운 순간) 몸과 마음으로 느끼는 우리의 유일한 시간이라고.

이제 방문자는 눈물까지 흘립니다. 그런 그에게 끊임없이 기쁘다며 말하는 화자의 속삭임은 이제는 조롱으로 들리기도 하죠.

방문자가 지금 이 처지가 될 것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면서 비아냥거리던 화자는 조언까지 던집니다. 화자는 방문자에게 요란하지만, 닿지도 않을 큰 소리에 두려워 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면서도 두려움은 자아를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정말 애매하지만, 유추해보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할 천둥소리가 아닌 지금 눈앞에 놓인 이 상황을 두려워하라는 얘기 같습니다. 내일이 과거가 될 만큼 끊이지 않는 시간동안 말입니다. 한마디로 반성하라는 말이죠. 다음 소절까지 살펴보겠습니다. 

(…) 나는 감긴 눈 이면에서. 그리고 마음속 어딘가에서 과거를 보고 있어. 지나간 모든 순간을 되뇌면서. 내가 다시 시작할 때까지 그 기억을 유지하려고. 라라랄라랄라라…
 
이제야 화자가 비통해하는 방문자를 보고 기뻐하는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화자도 방문자와 같은 처지에 놓여있었네요. 하지만 울고 있는 방문자와 다른 점은 그는 이미 이 현실을 극복하고 이 상황을 받아들인 것 같은 모습입니다.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네요. 

그리고 화자는 시간이 선물한 두려움을 지난 잘못들을 되뇌는 반성의 시간으로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벽과 철창 안에서 말이죠. 


자신은 비통한 상황에 처했지만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 또 한명의 방문자가 있습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인데요. 

110억원대의 뇌물 수수와 다스 비자금 등 350억원대의 횡령 혐의를 받고 있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3일 자정께 서울 동부구치소에 수감됐습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네 번째 전직 대통령의 구속이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씁쓸함이 아닌 기쁨과 환호였죠. 

▲청년들의 활기찬 모습과 MB 구속 결정 속보가 절묘하게 겹쳤다. ⓒ 울산 MBC 방송 영상 캡처


지금껏 범죄 혐의에 대해 계속 의혹만 제기됐던 이 전 대통령이 구속되자 이 전 대통령의 구속을 촉구했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축제 분위기가 조성된 것인데요. 자택 앞을 지키던 시민들은 나팔과 구호를 외치면서 노래를 불렀고, SNS에는 #정의 구현 #사필 귀정 #10년 묵은 체증이 내려간다 등 반응들이 범람했습니다. 

정치권에서도 비슷한 반응이 이어졌는데요. 법원이 22일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자 정치권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딱 한 곳만 빼고 말이죠. 자유한국당은 '정치보복'을 주장하며 문재인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특히 이 전 대통령 수감을 배웅하기 위해 논현동 자택 앞까지 찾은 장제원 자유한국당 의원은 이날 자신의 SNS를 통해 "눈물이 자꾸 흐릅니다. 지금 이 순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글을 게재하기도 했습니다. 

정치보복성 조사를 그만두자던 분이 MB가 결국 수감되자 '결코 잊지 않겠다'라니요. 재보복을 암시한 말인가요? 황당한 노릇입니다. 

앞서 장제원 의원은 지난해 11월 자신의 SNS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는 수사 상황에 대해 '부관참시'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장제원 의원은 "박근혜 정부는 이미 쑥대밭이 되어 그 중심이 대통령이 구속되어 있다"며 "무엇을 더 수사하고 무엇을 더 죽이려는 건지 참 집요하고 잔인하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부관참시를 목도할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는데요.

그러면서 "죄명은 정권을 뺏긴 죄, 권력을 잃은 죄이겠죠"라며 "피비린내가 진동한다. 얼마나 더 많은 피를 봐야 이 피의 숙청이 끝나겠냐"며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왜 이러는 걸까요. 누가 보면 현재 정부와 검찰이 무고한 전직 대통령을 철창에 어거지로 밀어 넣는 걸로 알겠습니다. 

▲지난 22일 오후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서울 논현동 자택 앞에서 장제원 의원이 눈물을 훔치고 있다. ⓒ 뉴스1


이 전 대통령은 비리 종합백화점이라 불릴 만큼 많은 혐의를 갖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 21개죠. 그리고 수사는 더 확대될 전망입니다. 

구속영장 발부 전날 정부 고위 인사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죠. "밝혀진 것만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요. 실제로 4대강이나 자원외교 같은 굵직한 사건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도 않은 상황입니다. 정치보복이 아니더라도 그 분은 감방에 가야한다는 말입니다. 

헌정 사상 네 번째로 전직 대통령을 구치소로 보내는 것에 대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느끼는 게 당연하겠지만, 버저비터를 성공시킨 것처럼 환호가 터져 나오는 것은 명백한 혐의에도 MB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집단들 때문일 것입니다. 

장제원 의원은 한국당 수석대변인 자격으로 발표한 논평에서 "참담하다"며 "(문재인 정권이) 의도적으로 피의사실을 유포하여 여론을 장악한 후, 가장 모욕적인 방법으로 구속시켰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장 의원은 "훗날 역사가 문재인 정권과 그들의 검찰을 어떻게 평가할 지 지켜보겠다"며 "이명박 전 대통령을 끝으로 다시는 정치보복이 반복되지 않길 바란다"고 밝혔습니다. 

무슨 의도인지 모르겠지만, MB를 맹목적으로 옹호하는 의견이 나올수록 세간의 반응은 고소하다고 답합니다. 

더불어민주당 손혜원 의원은 지난 23일 MB 곁을 지킨 장제원 의원을 겨냥해 "의리 있는 이 모습 국민들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는데요. 손 의원은 이날 "끝까지 이명박 전 대통령 곁을 지킨 장제원 의원님. 의리 있는 이 모습 국민들도 잊지 않을 것"이라면서 "끝내 변치 않으시리라 믿는다"고 비꼬았죠. 

정의당도 MB 구속이 '정치 보복'이라며 반발하는 '친이계'에 대해 볼썽사납다고 비판했습니다. 

김동균 정의당 부대변인은 "(친이계의 이같은 반발은) 어떻게든 정권을 잡으면 무자비하게 보복을 하겠다는 말"이라며 "이는 집권기 동안 얼마나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는 데만 급급했는지 뚜렷하게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지적했습니다. 

비리로 얼룩진 전직 대통령들 때문에 대한민국이 부패공화국이란 오명을 받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들이 안타까움과 씁쓸함을 접어두고 조롱과 환호를 건네는 심리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누군가에겐 눈물이 흐를 만큼 잊지 못할 슬픔이겠지만요. 



이윤형 기자 lyh@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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