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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윤건영' 조합 의의는? 핑퐁외교 벤치마킹 효과 촉각

청와대 관계자 의제 조율 등 일단 부인…상대방 운신 폭 넓혀주고 윤활유 역할은 확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4.02 08:14:49

[프라임경제] 우리 측 연예인들의 평양 공연이 예상 이상으로 성공적 결과를 내고 있다. 예술단과 태권도 시범단은 1일부터 3일까지 단독 일정 및 북한과의 합동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3일 늦게 남쪽으로 출발하게 된다.

이런 가운데 1일 예술단 공연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깜짝 등장해 눈길을 끌었다. 김 위원장 외에도 북측 고위인사가 많이 모습을 나타냈고 김 위원장은 도종환 문화체육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내가 레드벨벳(우리 측에서 참석한 걸그룹)을 보러 올지 관심들이 많았는데" 등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우리 측 연예인들을 격려하고 "이 여세를 몰아서 가을에는 서울에서 공연을 하자"고 제언했다. 또 "평양 시민들에게 이런 선물을 줘 고맙다. 김정일 위원장에게 전하겠다"고도 거듭 사의를 표했다.

김정일 후광 업고 직접 공연 챙긴 김정은 '이보다 좋을 수 없다'

김 위원장의 언급 내용 중 '김정일 발언' 진의는 아직 파악되지 않는다. 다만 유훈 정치 필요성에서 아직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 수 있는 발언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또 북한은 중국과의 교섭 상황 등에서 핵 해제 문제를 언급하면서 평화 기조에 대한 선대의 유훈 정치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도 알려져 이번 발언도 비슷한 맥락의 레토릭으로 볼 수 있다.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역사적 회담을 일궈낸 선대의 후광을 이번 공연을 계기로 다시금 강조한 것이라는 의의도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1일 우리 연예인들의 평양 공연에 직접 참관, 도종환 우리 측 문체부 장관과 조우했다. ⓒ 뉴스1

김 위원장은 당초 3일 북측과 우리의 합동 공연에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곤란을 느껴 부득이 1일 공연에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참석을 안 할 수는 없으니 스케쥴을 조정해서라도 접촉을 하기로 결정, 결행한 것. 그래서 1일 공연은 당일 시간 수정이 여러 번 가해지는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김정일 유훈 문제와 최고위층의 일정 변경 등을 종합하면, 북측은 이번 평양 공연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고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공연장 관람을 윤활유 격으로 적극 활용한 셈이다. 자신들의 정치 중심지를 찾아준 손님들을 보러 왔다는 측면, 연예인들의 공연을 좋아한다는 이야기를 강조하면서도, 정치적이고 국제관계적인 상황에서 의미있는 키워드를 던질 수 있는 것이고 이를 실제로 모두 행한 것이다.

이처럼 특별한 효과를 얻어낸 것은 물론 기저에 깔린 북한과 미국, 우리 사이의 대화 국면이 가장 크게 작용한다. 다만, 현재 중국에 북측이 접촉하면서 미국 주도 상황에 대한 견제구가 들어가는 등 상호간에 여러 물밑 수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마냥 순풍에 돛을 단 듯 하다고 즐길 국면은 아니라는 것.

이런 터에 공연과 체육을 활용한 기류 탐지 가능성을 열어둔 것이 대단히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원래 외교적으로 중요 변곡점이 되는 세기의 이벤트는 어느 날 뚝딱 성사되지 않는다. 또한 숨막히는 외교 교섭과 줄다리기만으로 완성되지도 않는다. 예를 들어, 중국통 외교관 출신인 제임스 릴리(이후 주한 미국 대사 역임)은 자서전 '아시아 비망록'에 냉전 시대 중국과 깜짝 대화를 성공시킨 과정을 상세히 밝힌 바 있다.

냉전이 한창이던 1960년대 먼저 미국에 화해 제스처를 보낸 건 중국이었다. 중국은 같은 공산주의 국가이면서도 영토 분쟁과 공산권 내 위상을 둘러싼 충돌 등으로 소련과 틈이 벌어진 형국이었다. 이를 재빨리 감지한 리처드 닉슨 당시 대선 후보는 연설과 기고를 통해 대중 외교 강화 필요성을 수시로 강조, 서로 교감을 확인했다.

실제로 닉슨이 대통령에 당선, 백악관에 입성하자 양국 관계는 급물살을 탔다. 그러나 관계 정상화를 위한 접촉은 헨리 키신저 당시 안보특별보좌관 중심으로 대단히 비밀리에 처리됐다. 이렇게 키신저가 저우언라이 당시 중국 총리 등 고위층과 만나 내용을 협의, 결국 미국 현직 대통령의 공산 중국 방문이 공식 발표됐다. 

하지만 그 직전 마지막으로 중요하게 이용된 게 미국 탁구팀이다. 키신저와 저우언라이는 양국 교류의 상징적 사절로 미국 탁구팀의 중국 방문에 합의했다.

스포츠 이벤트를 통해 민주자본주의와 사회공산주의 진영간 교류에 대한 양국 내부 여론 더 나아가서는 세계 여론의 추이를 살펴보는 승부수를 띄워 본 것이다. '핑퐁(탁구)외교'라는 별칭으로 불린 이 외교전은 결국 냉전 분위기를 깨는 데 큰 도움이 됐고, 대만에 밀려난 중화민국 정부의 입지가 대폭 축소되는 등 여러 효과를 일으켰다.

탁구가 정치적 판단을 수행하는 데 동원돼, 매우 평화적이고 적극적 화학반응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북에도 알려진 '원조 글로벌 걸그룹' 뒤에 윤건영 배치 눈길

북한에 간 연예인 중에는 '가왕' 조용필을 비롯, 이선희와 강산에 등 쟁쟁한 이들이 다수 포진해 있다. 다만 조씨의 경우 과거 평양 공연 당시 관중석 반응이 대단히 조용했던 적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는 등 양측 정서가 좀 다르다는 평이 있다. 최진희는 '사랑의 미로'가 북측에서도 대단한 인기를 끄는 등 의미가 크지만, 현재의 문화 교류 가능성 등을 총체적으로 아우르는 상징으로 부각되기에는 원로 이미지가 강하다.

위에서 이미 언급된 레드벨벳은 걸그룹이 자유로운 남측 문화를 알린다는 점에서 이번 평양 공연의 파격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나, 무게감에서 전체적인 상황 콘셉트를 모두 좌우하는 정도는 아니라는 해석도 추가로 붙는다.

서현은 소녀시대 활동을 통해 걸그룹 등 우리 문화가 글로벌 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견인한 '한류 1세대 아이콘'으로 꼽힌다. 북측에서도 서현에 대한 선호도와 신뢰도가 매우 높다. 지난 번 남측에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현송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등을 보냈을 때, 서현은 현 단장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등 깜짝 이벤트를 선보였다. 북측 요청으로 갑작스럽게 동원됐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빠르게 상황에 적응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이번 행사에도 사회자로 지명된 데 큰 원인이 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는 MBC '쇼! 음악중심' 등에서 MC로 활약한 경험이 탄탄한 자산으로 형성된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이런 서현과 여러 한국 대표급 가수들, 청년층에 해당하는 윤도현 등의 열정을 가미해 북측에 문화 교류 정수를 보인 셈.

평양 공연에서 사회를 맡은 우리 측 연예인 서현. ⓒ 뉴스1

윤건영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이 이번 공연단과 함께 방북한 것을 받쳐주는 '바람막이로 서현 등의 활약이 대단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윤 실장 방북 동행은 도 장관이 참석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고위 인사가 불필요하게 방북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일부 받은 바 있다. 하지만 윤 실장의 의미는 대단히 크다. 그는 지난 번 대북특별사절단 일원으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따라 평양에 갔던 경험이 있다. 윤 실장이 이달 27일로 예정된 남북 정상회담 의제와 형식 등에 대해 큰 틀에서 자연스럽게 얘기할 가능성이 그래서 점쳐졌고, 실제로 김 위원장이 공연장에 나타나 이런 교섭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이는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할 때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이슈다. 고위급회담에서 정상회담 의제를 조율하는 등 방법을 찾을 수도 있으나, 이것이 원활치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최고위층 즉 김씨 일가의 만기친람형 행정으로 지휘되는 나라라서 고위급이라 해도 이런 문제 해결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공식적인 접근보다 문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파악하고 있는 윤 실장이 북측에 모종의 '메신저' 역할을 할 수 있다.

2일 청와대 관계자는 윤 실장의 북측 인사 별도 접촉설 등에 대해 "메시지가 따로 있거나 의제를 조율한다거나 이런 건 전혀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서현 효과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셈법에 윤건영 효과가 합쳐지면서 남과 북의 대화 가능성에 긍정적 작용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계속 유효하는 것을 부인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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