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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동의간음죄 법안으로 '탈레반 초심' 회복한 천정배

'뺄셈정치' 음험 털고, 소신파 이미지 회복 '제2정치인생' 꽃피나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4.05 11:33:34

[프라임경제] 2006년 3월은 천정배 의원의 인생 전반으로 범위를 넓혀 잡더라도 유례를 찾기 어려운 보기드문 치욕의 시국이었다. 참여정부의 법무부장관으로 입각해 있던 그는 교도관 비리에 직면했다.

검찰은 물론 출입국, 교정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법질서수호 책임자인 법무부장관으로서는 교도관 문제에 책임을 지는 게 당연하지만, '여성 재소자 성추행 자살'이라는 사건의 충격은 참여정부의 도덕적 국정 운영 방침에도 공직사회 뿌리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탄식을 낳았다.

재야 변호사 출신이라 힘있는 조직문화에 익숙한 법무부 및 그 산하기구 공무원들의 장악력에 한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 역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법무부는 천 당시 장관 명의로 사과했다.

"전두환에게 고개 숙이며 판사 임명장을 받을 수 없어서" 사법연수원 수료 후 바로 개업 변호사로 나섰던 천 의원에게는 체면이 어느 모로 보나 서지 않는 일이었다.

하지만 공무원 분류심사 점수를 잘 주겠다며 여성들을 성추행하고, 문제가 생기면 가석방이 늦어질 수 있다고 협박한 저질 범죄에 대한 그의 뒷처리는 명징했다. 감시단을 급히 조직하고 신고방법을 교육하는 등의 대책도 발표했다.

그래서 이 사건은 치욕적 기억인 동시에, 일단 욕을 먹으면 확실히 고치고, 한 번 마음에 품으면 오랜 시간 밀어붙이는 천 의원의 대표적 에피소드 중 하나다. 이번 이야기도 이 이야기로 대표되는 그런 그의 속성에서 시작한다.

◆법조인 메리트 살린 송곳 법안, '여성 인권 보호 외곬' 결실

'비동의간음죄' 신설을 천 의원이 추진한다. 그가 지금 몸담고 있는 민주평화당은 당세가 약해 6월 지방선거가 임박한 상황에서도 지방자치단체장 배출이 요원하다는 평을 듣는다.

하지만 조배숙 대표가 개헌 정국 등 현안에서 각종 목소리를 내면서 국회 내 무게추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천 의원 역시 이런 행보에 시의적절한 엄호사격을 해줬다는 평가가 이 '형법 일부개정안'에 쏟아진다.

'비동의간음죄'는 폭행이나 협박이 없어도 상대방이 동의하지 않은 채 성관계를 맺을 경우 처벌할 수 있다는 의미다. 현재는 피해자의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정도의 폭행 및 협박을 강간 상황의 조건으로 본다.

천정배 의원이 새삼 눈길을 끌고 있다. 사진은 2015년 재보선에 출정하던 모습. ⓒ 뉴스1

이에 따라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되지 않는 특이한 형태의 강간인 비동의간음을 신설, 현행법상 형사처벌 대상이 아는 교활하고 악랄한 형식의 성적 착취에 대해 처벌할 길을 열자는 의견이 그 전부터 여성계 등에서 있어왔다.

물론 현재의 폭행 특히 협박의 해석 기준을 개별 사건에서 낮춰 해석하는 식으로 법원이 처리하면 족하다는 해석론도 만만찮다. 자칫 강간과 화간의 경계선이 지나치게 무너지는 불명료성의 부작용이 크게 사회를 덮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드라마 제작사 간부의 연기자 지망생 성폭행 사건이 단순 비동의 간음 개념이라 검찰이 불기소 처분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사례가 보고되는 등,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도 유효하다.

단순히 사회적으로 '미투 열풍'이 분 것에 편승한 법안 제출이 아니라, 여성 인권에 대한 깊이있는 검토와 축적이 이번에 터져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형법 일부 개정안 제출 소식은 눈길을 끈다.  

다시 2006년 3월 교도관 성추행 파장 무렵으로 돌아가 보자. 그 직후인 2006년 4월, 천 의원(당시 법무부장관)은 김한길 당시 열린우리당 원내대표와 회동하고 '혼혈인 처우 개선 및 인권 보호대책'에 합의했다.

당시까지는 부모가 자식으로 인정하는 경우에만 주어지던 혼혈인 자녀에 대한 국적 취득이 앞으로는 부모가 자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경우에까지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는 아이디어였다. 또 이들의 양육을 위해 외국인 아버지나 어머니에게도 국적이나 영주권을 주는 방안도 적극 추진키로 대책안에는 적시돼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 남성이 외국인 여성을 현지에서 가볍게 만나다 버리고 도망치는 경우, 아버지 국적 및 인적 사항만 확인되면 그 버려진 아이는 우리 국적을 얻고, 이 아이의 한국 방문시 양육 명목으로 버려진 여성 역시 영주권 등을 얻어 들어올 수 있게 된다는 파격적 구상인 것.

여성 특히 결혼이민자 및 혼인빙자간음 피해 외국인 여성에 대한 따뜻한 배려 정신을 법무부가 보인 대단히 선구적인 움직임이었다.

금년 3월 초 "'미투''위드유' 등은 계속돼야 한다"고 그가 제언한 것을 어느 정치인의 시의성 발언 정도로 볼 수 없는 이유는 이런 맥락 때문이다.

성매매방지법의 제정을 성사시킨 조배숙 현 민평당 당대표를 자기 진영으로 삼고초려한 바도 있는데(조 의원은 2016년 초 당시 국민의당에 천 의원 계파로 이동, 이후 민평당까지 인연을 잇고 있다) 그녀의 정치적 뚝심과 여성정치 감수성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는 풀이가 뒤따른다.

◆노무현 띄우고 박범계 발탁, 하지만 탈레반과 뺄셈 정치 논란

인재를 알아보고 끌어들이는 이야기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부분을 빼놓을 수 없다. 법무법인 해마루를 이끌던 천 의원은 천덕꾸러기처럼 안 되는 선거만 우직하게 도전하고 다니던 '노짱'의 정치적 저력과 매력을 알아보고 적극 지지해준 인물이다. 일반 시민팬이 아닌 유명인사급 중에서는 거의 첫손에 꼽히는 친노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의원이 '노무현 청와대'에 들어갈 수 있도록 비서관 자리를 만들어 준 것도 천 의원의 역할이었다는 설도 있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가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를 추진하면서 그는 결사 반대 가닥을 잡아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소신과 원칙의 정치인이므로 때때로 각을 세울 수도 있다는 해석도 있었지만, 지나치게 자기 원칙만 밝혀 전체의 물을 흐리는 건 문제라는 현실론도 다수 쏟아졌다. 상황이 이렇고 보니, 그가 소신껏 지휘 처리했던 '동국대학교 교수 통일전쟁 발언 논란'도 비판 도마에 올랐다.

2005년 7월 당시 동국대 교수이던 K씨는 한 인터넷언론에 "6·25전쟁은 통일전쟁이면서 동시에 내전이었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전쟁은 한 달 이내에 끝났을 것"이라고 기고했다.

검찰은 구속수사 불가피론을 폈지만, 당시 장관으로서 사건지휘권을 발동하는 등 초강수를 둔 천 의원 덕에 검찰이 꺾였다(결국 해당 학자는 2007년 2심에서 징역 2년·집행유예 3년의 형을 선고받는 등 구속 필요성이 없었다는 쪽으로 여론이 귀결됐다는 평이 나온다).

그런 예 하나하나가 다시 재논의되는 등 후폭풍이 일었던 것이고, 지나친 원칙과 소신이 '탈레반(이슬람 원리주의파)' 같다는 평도 이때부터 슬슬 그를 따라붙었다.

천정배 정치의 약점은 뺄셈으로 정치를 한다는 점이다. 측근이던 김영남씨가 비판 회견을 하던 모습. 공교롭게도 지금으로부터 딱 만2년전 이맘때다. ⓒ 뉴스1

그런 그가 음험하다는 평을 듣는 게 정계의 아이러니다. 이해찬 전 총리가 열린우리당 시절 원내대표 경선 과정에서 여러 계파 표를 서로 뺏고 뺏기는 물밑 교섭 와중에 자신은 특정 계파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고(반사적으로 천 의원은 계파 이익 등을 거래한 듯 읽힌다) 쓴 건 작은 사례다.

친문 정치 강화에 반발, 당을 깨고 나온 이들이 대거 옛 국민의당 결성으로 뭉친 상황에서도 그에 대한 비판이 비등한 경우가 적지 않다. 천 의원은 '천정배 신당'을 추진하던 중 안철수 라인과 손잡고 국민의당을 개창했다.

하지만 2016년 그의 정치 가도는 비판 더 정확히 말하면 욕을 먹는 일로 점철됐다. 김영남·김영집·홍인화 등 측근 3인방이 천정배 사단에서 이탈했다. 김영남 당시 광주광역시의원은 "그럴거면 20대 의원 후보직을 사퇴하라"고 비판을 할 정도로 등을 돌렸다.

이들 지역정치 거물들은 천 의원이 옛 새정치연합을 떠나 국민의당 자리잡기를 할 때 모든 걸 내준 사람들이었다. 안산에서 주로 정치 이력을 쌓은(여기서 4선) 뒤 송파 출마 등으로 정치 역량 확인을 했지만 갈 길이 마땅찮았던 천 의원을 지금의 지역구인 광주 서구을에 안착시켜 준 것이 바로 이들.

더욱이 국민의당은 숙의제 후보 선출로 지방선거를 치르겠다고 나섰으나 강렬한 내부 진통으로 "천 대표(당시)가 책임져라"라는 요구가 사방에서 쏟아지는 수모도 당했다.

이 같이 주변 사람들이 떠나고 창당과 당 운영 등에서 매번 매끄럽지 못한 처신을 하면서 '뺄셈식 정치만 한다'는 비판 꼬리표가 붙었다. 지금은 민평당 결성으로 색채가 불명확한 안철수식 정치와 선을 긋고, '호남 정치의 복원'을 외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당을 이끄는 자리에 천 의원이 선뜻 나서지 않는 문제도 이런 뼈저린 상황에 있다며 호사가들의 입길에 아직 오르내리는 상황.

이런 터에 자신의 원래 소신과 국민 필요에만 집중해 이해득실을 가리지 않고 일을 추진한 이번 비동의간음죄 이슈는 그가 '탈레반 초심'으로 돌아오고 있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혼란스러운 정치 시국에 돌아온 반가운 연어 한 마리에 봄철 여의도 설렘이 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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