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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지구 구하셨다"는 文, 미세먼지는요?

환경지표 개선 성과 거뒀지만 국민 체감문제 갈 길 멀어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4.11 17:30:45

[프라임경제] "지구를 구해줘 고맙습니다"라는 표현 듣는다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드세요?

정치나 국제정치, 사회 같은 것에 관심있는 분들은 핵 전쟁 같은 걸 막은 평화의 사도(피스메이커)를 생각할 수 있고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냉전시대라서 지구를 구한다면 소련 같은 악의 사도로부터 구하는 걸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한편, 산업부 기자들은 '북극곰을 구해주고 미세먼지도 잡아주는 정도는 돼야' 지구를 구한 게 아니냐고 생각하기도 한답니다(모 보일러 광고를 생각하시는 듯 합니다, 하하하).

알기르다스 바카스라는 사진작가가 있는데요. 영국 잡지 '모노클'이 문재인 대통령과 인터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당시 사진을 찍은 인연으로 이번에 문 대통령에게 선물을 했다고 합니다. 그 사진 액자 뒤에는 펜으로 "위대한 정치적 행보에 감사하다. 또 지구를 지켜주고 구해줘 고맙다"고 메모도 했다고 합니다.

이 내용은 청와대의 공식 영상라이브(페이스북) 계정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송정화 청와대 행정관은 영상에서 "이 선물은 문 대통령에게 전달될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잠깐 곁가지로 빠지자면, 이 선물이 국고에 환수돼야 한다고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공직자윤리법에 고가의 선물에 대한 규정이 있다고 해서 많이 알려진 바 있습니다. 

그 법 제15조에는 '외국 정부 등으로부터 받은 선물'이 고가품인 경우를 기준으로 만들었건 것인데요. 송 행정관이 이렇게 얘기할 수 있었던 것은, 이 선물의 경우 고가도 아니고 그렇다고 정부 등이 아닌 순수 민간인이 준 것이기 때문으로 해석됩니다.

흔히 말하는 김영란법 룰(3-5-10)에서 보더라도 저 정도는 되겠네 감이 오시지요?

문재인 대통령에게 지구를 구해 감사하다는 메모가 적힌 사진 액자가 선물됐다. ⓒ 청와대

자, 다시 지구를 구한 이야기로 돌아가 볼까요? 저 글 속의 내용은 북한 핵 문제 등 한반도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걸 가리킨 게 맞습니다. 당시 이 잡지는 여러가지로 우리 정치와 개혁 등에 대해 질문을 던져 국내 언론에서도 관심을 갖고 일부 소개를 하기도 했죠.

그런데 핵 위기에서 지구를 구한 문 대통령의 위대함(뭐, 이달 27일 회담이 정말 잘 될 거라고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우리는 다 그렇게 믿고 있잖아요?) 말고 지구 환경을 구하는 걸 기대한다는 요청도 적지 않습니다. "지구는 고사하고 일단 한국부터 구해 줘"라는 볼멘 소리인 셈인데요.

물론 문 대통령이 집권하고 나서 환경이 좋아졌다는 조사 지표도 있기는 합니다.

지난 1월에 나온 스위스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올해치 자료 즉 '2018 환경성과지수(EPI)' 종합 순위를 보죠. 여기서 한국은 평가 대상 180개 나라 가운데 60위에 해당합니다. 2016년(지금은 탄핵으로 물러나신 그 분의 시대) 80위였던 데서 20단계나 상승한 셈입니다. 미세먼지를 포함한 환경보건 부문의 대기질 순위는 173위에서 119위로 54단계나 뛰어올랐다고 합니다.

여기서 고개를 갸웃거리는 분들 계실 겁니다. 이런 순위 향상은 실제 환경성과보다 평가기준 변경이 크게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는 뒷얘기가 나오네요.

환경성과지수는 미국 예일대 환경법·정책센터와 컬럼비아대 국제지구과학정보센터가 각 나라의 대기 질, 기후변화나 위생부터 생물다양성 등 환경보건과 생태계 지속성 관련 분야 실태와 개선 노력을 엄청나게 다양하게 모아서 매깁니다. 점수와 순위를 매기고, 2년마다 세계경제포럼 개막에 맞춰 발표됩니다.

세계 환경 지표를 매긴 EPI 점수에서 2016년 대비 올해 우리나라가 크게 순위가 올랐다. 하지만 미세먼지 문제 등을 반영 못 한다는 지적도 있다. ⓒ 다보스 포럼

그런데 우리나라는 대체 어찌 된 걸까요? 특히나 우리나라 대기질이 하위권인데도 대기오염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이 같은 순위 상승이 이뤄졌다고 합니다. 

이런 다소 모순돼 보이는 조각들이 함께 퍼즐을 만들고 있는 사정은 이렇습니다. 두 분야의 평가 기준이 달랐기 때문인 거죠. 대기질 평가는 미세먼지와 가정의 고체연료 사용에 의한 인체 피해에 초점을 맞춘 반면, 대기오염 평가는 이산화황과 질소산화물에 의한 생태계 영향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러므로, 2016년 1월 환경성과지수 발표로 한국은 최악의 대기오염 국가로 부각됐지만 다시 이것이 개선된 것처럼 집계되고 전체 순위에서도 상승 효과를 내게 된 겁니다. 세계를 통틀어서도 최하위권이었던 한국의 공기질 순위가 2년 만에 54단계나 치솟은 '뭔가 웃픈 상황' 혹은 '믿기 어려운 성적표'인 것이죠.

우리가 딱 느끼기에도 이건 현실과 동떨어진 환경 성적표인데요. 환경과학원 등이 3월 내놓은 분석에 따르면, 근래 미세먼지는 최악의 수치를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미세먼지 영향 및 원인 중 최대 69%는 외국에서 온다고 하죠. 즉 미세먼지는 대부분 중국에서 시작했지만 국내 유입 후 대기정체가 더해지면서 농도가 증가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문 대통령에게 세상(세계)은 모르겠고, 숨 좀 쉬게 한국 좀 구해 달라고 요청하는 건 좀 어려워 보입니다. 문 대통령은 노력 중이지만, 중국이 외교정책적으로 막무가내인 성향이 크거든요.

북한 위기를 힘써 해결해 지구를 구해 고맙다는 찬사를 들은 문 대통령, 이번에는 특히 지구 환경을 구해 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습니다. 북한과의 씨름에서도 애써 노력한 성과가 나오기 시작한 만큼, 더 덩치 큰 중국과의 대결도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거라 기대해 봅니다. 겉으로만 좋은 성적표 말고 또다른 힘센 원인을 때려눕히러 고심해야 하는 것, 슈퍼히어로의 삶이란 그런 어려운 일만 닥치는 것일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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