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통일부의 임종석 반까이

2018-04-18 08:52:34

[프라임경제] 언론계에서 쓰는 일본어 중에 '반까이'라는 말이 있다. 낙종(중요한 기사를 놓친) 상황에 다른 언론사보다 후속 기사를 충실히 잘 취재해 만회한다는 의미인데, 혹은 남이 선점한 이슈 대신 다른 이슈를 잡아 국면 전환이 될 정도로 잘 쓴 기사를 내놓는 그런 경우도 포함한다.

좋은 말은 아니고 일제 잔재이기도 하지만, 만회라는 한 단어로 포섭되지 않는 미묘함이 있어 아직 완전히 순화가 되지 않고 있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우라까이' 표현을 사용해 조선일보의 연구소 논란 기사에 대해 불쾌함을 표시한 것도 그 단어가 단순히 짜깁기, 재탕 이상의 부적절한 기사 생산이라는 의미까지 담을 수 있는 뉘앙스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통일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널리 양해를 구하면서 반까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자 한다. 지금 반까이가 필요하나 그 길이 마땅찮은 문제가 통일부에게는 있다.

문제는 여러가지가 있겠다. 북한이 핵과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동시에 부각시키면서 한반도의 지정학적 리스크에서 글로벌 차원의 위기 고조로 문제를 키웠다는 게 우선 통일부 영역에서 국제정치까지 버무려진 상황이 조성됐다. 그러던 중 너무 급작스럽게 태도 변화를 우리 측에 타진해 왔고, 이를 문재인 정부는 기대 이상으로 잘 잡아내고 운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다만 정부 차원에서 이를 미국과 중국 등 주변 강대국까지 아우르고 협력을 구하는 해법을 찾다 보니 청와대가 중심이 되는 구도가 만들어져 다른 부처가 힘이 부족한 혹은 존재감이 희미해진 상황이 연출됐다고 할 수 있다.

임종석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의 부각은 이런 문제 상황에 화룡점정 격이다. 그는 주지하다시피 현직 청와대 비서실장이다. 청와대 중심론의 상징인 셈이다. 여기에 더해 그는 학생운동을 극렬하게 했던 경력이 있다. 정치권에서 다양한 일을 두루 겪으며 구력이 상당하다고 해야 옳지만, 아직도 그를 잘 생긴 학생 지도자 즉 반독재 정치투쟁의 선봉장으로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그런 점을 다소 악용한달까? 일각에서는 그에게 여전히 반미와 친북 논란을 제기하고 미숙한 통일론자이지 제대로 된 정치인은 아니라는 식의 이미지 왜곡을 시도하는 것도 같다. 하지만 기존의 제도권 정치 경력에 더해 청와대에 들어와 두루 경험과 조율을 하는 모습을 볼 때, 그런 덧칠은 과도하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문제는 바로 이 지점이다. 청와대가 부각돼 북한과의 대화를 풀어나가는 것도 모자라 그 안에 근무하는 비서실장마저도 멋진 회담 준비위원장으로 뛰고 있다. 큰 그림에서는 문제가 없지만 일을 끌고 나가야 하는 게 원래 자기 자리라 여기는 통일부에게는 곤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옆 방송국에서 '국민작가'급 작가가 경쟁작을 쓰는데, 심지어 또다른 경쟁사에서는 아이돌을 전면에 부각시킨 트랜디 드라마로 틈새 시장이나마 자기가 다 먹겠다고 하는 울고 싶은 상황이랄까? 

이런 고충 아닌 고충은 외교부 역시 마찬가지인 것으로 안다. 다만 북한과의 핵 문제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 정의용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주전으로 뛰는 일명 '외교부 패싱' 현상은 이 통일부 소외 우려와 약간 다른 측면이 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처음 발탁될 때부터 자질이 충분하냐는 의구심에 시달린 바 있다. 더욱이 딸 국적 문제 등으로 외교 총책임자의 기본이 안 돼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 바 있다.

강씨 개인의 문제가 워낙 막중해서 외교부에 문제를 몰고 들어온 것 중 하나가 한반도 핵 해법 국면에서의 외교부 패싱이라고 해석한다면, 단지 자존심이 약간 상할 뿐이지 부서 자체의 역량 논란 등 존재 기반의 위기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통일부는 다르다. 통일부는 주무 중앙부처로 이 같은 패싱 자체가 할 일이 없어지는 문제로 직결된다.

외교부는 북한과의 대화 추진, 혹시 남과 북, 여기에 미국까지 더해 만나는 3자 정상회담 추진이 급물살을 타는 상황에서 다소 그 역할을 청와대 안보실이나 국가정보원에 넘겨준다 해도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 여유가 있다. 

즉, 아프리카부터 오세아니아, 유럽 등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우리 재외국민 보호나 각종 사고와 정책 변화 등의 해석, 이를 통한 우리 국익의 수호와 창출 등에 매진하면 된다. 속칭 반까이할 기회가 얼마든 있는 것. 그러나 통일부는 다르다.

설사 이번 일이 성공하고 북측과 우리 사이의 정상회담이 상례화되고 통일부가 다시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그 모든 일들의 운전을 맡는다 해도, 한 차례 흔들린 위상은 다시 회복할 수 없을지 모른다. 문제는 이렇듯 심각하다.

그래서 '임종석 신드롬'은 통일부에게 위험하다. 물론 그가 통일부 죽이기를 꾀하며 지금 상황에서 열성으로 뛰고 있는 건 분명 아니다. 그럴 뿐더러, 그런 가능성을 느낀다면 통일부 패싱 기우에 누구보다도 가슴 아파할 것으로도 예상할 수 있다. 

빌리 브란트 전 독일 총리의 비서실장이었던 에곤 바 박사의 발언을 인용할 정도로, 그는 이제 국제 정세에서의 미국의 역할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 임 위원장이 에곤 바 회고록을 17일 오후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인용한 점은, 그런 미국이 우리의 대화 시도를 용인하고 더욱이 대단히 긍정적으로 도와주는 데 감사를 느끼고 있음을 에둘러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책적으로 의미가 크다는 외에도 인격적 성숙과 식견의 풍성해짐을 드러낸 것이라서 눈길도 간다. 그런 한층 괄목상대한 임 위원장, 이제 준비위가 해체되면 실장으로 돌아갈 그 인물을 통일부 반까이 문제와 어떻게 접목시켜야 할까?

차라리 실세를 통일부에 보내는 정도로라도, 그 역할 모델 자체에 힘을 실어줘 그 소속 공직자들의 자긍심을 고양해 줄 의사가 정권 최고위층에는 없는 것일까? 지금 이렇게 일처리를 하다 아무 후속 조치 없이 통일부에 일상적 업무를 다시 전담하라고 하는 것은 정말 잔인한 일일 것이다. 그건 사람이 먼저인 세상을 중시해온 문재인 정부 기조와 정면 배치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정동영-고 김근태 두 거물 정치인이 서로 통일부 장관을 하겠다고 자기 PR을 했던 일을 회상해 본다면 임종석 통일부 이동도 불가능하지는 않다. 반미 우려의 떼도 밀어낸 그의 상황을 감안하면 장관 청문회 공세도 어렵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건 그저 꿈이겠지만, 어떤 식으로든 통일부에 반까이 기회를 좀 줘야 한다는 점은 알라달라.


임혜현 기자 tea@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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