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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십자, 로슈진단 '짬짜미' 의혹…670억원대 혈액검사기 입찰

4종 묶음으로 염가할인 논란 피해, 검찰 조사 불가피

강경식 기자 | kks@newsprime.co.kr | 2018.04.23 15:04:49
[프라임경제] 적십자사의 670억 원대의 혈액검사기기 입찰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대한 특혜 의혹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있다. 적십자가 두 발 벗고 나선 정황이 계속해서 나타남에 따라 사정기관의 조사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지난 2월 입찰이 시작되자 기존 병원 공급가보다 낮은 금액을 적어낸 글로벌 진단기업 로슈진단에 '덤핑투찰' 논란이 불거졌다. 

로슈진단이 기존 병원 공급단가가 입찰 평균단가보다 3배 이상 비싼 3000원짜리 에이즈 진단시약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업계는 "부당염매로 경쟁사들을 시장에서 배제한후 시장을 독점하고 이를 통해 이익을 극대화할 가능성이 높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와 관련해 적십자측이 입찰자격을 제한할 때 로슈진단을 고려했다는 정황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 현재 국내의 에이즈 혈액 진단 시장은 성접촉 8~12주 이후에 검사 가능한 '항체진단'과 성접촉 4주차부터 진단 가능한 '항원/항체진단콤보(HIV Ag/Ab)'로 나뉜다. 

그간 적십자가 사용해온 방식은 항체진단시약(anti-HIV)을 통한 진단이다. 또 이번 적십자 입찰에 국내 기업인 피씨엘과 녹십자엠에스, LG화학이 내놓은 에이즈 진단시약도 자체개발한 항체진단시약이다.

반면 국내에 별도의 항체진단시약을 내놓은 적이 없는 로슈진단은 기존 고가에 유통되던 항원/항체진단콤보를 들고 참전했다. 앞의 염가공급 논란은 여기서 출발했다. 1개당 단가로 개산할 경우 적십자 예산으로 매입이 불가능한 가격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적십자 수혈혈액연구원 진단시약 입찰공고 ⓒ 프라임경제


앞서 지난해 적십자 수혈혈액연구원은 콤보시약을 1Test당 2700원에 구매하기도 했다. 고가로 유통된 사실이 있는 상황에서 로슈진단의 투찰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런데 이번 입찰에 적십자가 4종 진단시약을 1Test로 묶자 상황은 달라졌다. 1종당 매겨진 가격은 952원으로 콤보시약 하나 가격의 1/3 수준이지만 1Test당 단가가 3808원으로 구성돼 염가공급 논란을 피해갈 수 있게 된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업계 관계자는 "적십자가 콤보 도입을 위해 로슈진단의 입찰을 고려한 구성을 내놓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지난해 구매한 수혈혈액연구원의 콤보시약은 도입을 위한 준비단계"라고 말했다.

이어 "진단업체들이 에이즈 진단 방식의 표준이 항원/항체 진단으로 바뀔 것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적십자는 로슈진단의 입찰 참가를 위해 따로 입찰 서류 보완과 기기 성능을 시연하는 자리도 마련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또 최근 적십자가 로슈진단의 콤보시약 허가 획득에 맞춰 입찰공고를 냈다는 주장도 나옴에 따라 속된말로 "두발 벗고 나섰다"는 비아냥이 따르는 실정이다.

적십자는 이번 입찰과 관련해 언급을 삼가면서도 골치가 아픈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적십자 관계자는 "외부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것에 대해 잘 알고 있다"며 "합리적 기준에 따라 가장 좋은 조건을 보고 구매하기 위한 경쟁입찰"이라고만 말했다. 

문제는 국내 혈액 유통의 95%를 책임지고 있는 적십자 입찰의 결과에 따라 국내 에이즈 진단에 대한 개념도 달라진다. 일반 병원에서 실시하는 진단 수준이 적십자 진단 수준을 넘어서지 못할 경우 경쟁력을 상실하게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불공정 입찰로 특정 업체를 지원하는 적십자의 배경에 아직 기술력을 갖추지 못한 글로벌 제약회사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최근 건강세상네트워크는 입찰에 참여한 로슈진단의 장비와 시약이 신고와 허가 사항 모두에 법적인 문제가 있어서 검찰에 고발조치 했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냈다. 수사 과정을 통해 시시비비를 가려보기 위함이라는 부연이다.

한편 이전에도 적십자는 굵직한 규모의 경쟁입찰에서 이중제한을 만들어 국내 업체의 참여를 제한하고 특정 글로벌 진단업체의 입찰을 지원한 사실이 있다.

2016년 적십자는 헌혈 받은 혈액에서 에이즈(HIV), C형 간염(HCV), B형 간염(HBV), 백혈병(HTLV) 등 부적격 혈액을 걸러내는 진단장비와 시약 입찰 공고를 내면서 장비와 시약을 모두 납품할 수 있는 회사로 자격을 제한했다.

당시 까다로워진 입찰자격 때문에 당시 5년간 823억원 규모의 혈액관리시스템 입찰에는 글로벌 진단기업인 지멘스와 애보트만 참여했다. 

이전까지 20여년 동안 시약을 납품해온 LG생명과학 녹십자엠에스 동아에스티 등 국내 업체들은 자격 미달로 입찰에 참여조차 못했다. 보건복지부는 당시 "입찰 과정이 불공정하다"며 감사와 경고를 처분한 바 있다. 감사 결과에 따라 당시 혈액관리본부장은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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