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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판문점 개최 합의설…테헤란 루즈벨트와 차이점은?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5.01 08:51:52

[프라임경제] 미국 CNN이 북·미 정상회담 개최지 사실상 확정 보도를 내놓은 가운데, 역사적으로 이번 위치 결정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트위터에 판문점 개최 검토를 언급한 데 이어, 4월30일(현지시각) CNN은 대북 문제에 정통한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정상회담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개최하는 것이 어떻겠냐는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에 '역시 판문점이 최고의 장소'라고 뜻을 모았다"고 보도했다.

아울러 CNN은 "한국 정부가 여러가지 이유를 들며 (판문점 문제를 놓고) 김 위원장을 설득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는 지난 27일 남·북 정상회담 당시 도보다리에서 있었던 양측간 밀담 과정에서 제기됐다는 차후 미국과 북한간 정상회담 장소를 제의했다는 암시다. 

30분 넘게 진행된 이 도보다리 의견교류에서는 다양한 이야기가 허심탄회하게 오간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북측과 우리의 경제 협력 추진 등 가능성도 점쳐진다.

다만 우리 측에서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회동이 판문점으로 개최지 확정이 되는 것인지에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1일 아침 한 청와대 관계자는 "CNN 관련 문의가 많이 들어오는데, 확인이 어렵다"고 말했다. 그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미 정상회담 주인공은 아무래도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라고 말한 바 있다. 

한반도 운전자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좋은 현상이나, 우리 측 역할론을 과대 해석하려는 쪽으로 번지는 것을 일정 부분 제어하려는 의중으로 읽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 사이에 다가오는 북한과 미국 사이의 정상회담 장소 문제도 논의됐다는 해석이 유력하다. ⓒ 한국공동사진기자단

한편 이번 회동의 장소 문제가 판문점으로 무게 중심 이동이 이뤄지는 상황에 대한 풀이가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독재 국가로 지도자가 멀리 자리를 비우는 문제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지난 번 김 위원장의 긴급 중국 방문이 세계인의 놀라움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이런 틀을 깬 파격이었기 때문.

다만 중국을 방문, 시진핑 주석과 회동한 뒤 급히 돌아간 것과 그간 일각에서 미국과 북한이 스웨덴이나 스위스 등에서 마주앉을 수 있다고 해석한 점은 차원이 다르다. 몽골이나 싱가포르 등도 타진됐지만 이런 맥락에서 오십보 백보이거나 인프라 걱정 등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따라서 상징성을 살리고 양쪽 입장상 무리가 없는 판문점이 대안이 부각되고, CNN 볻도 역시 진위 여부는 결국 최종적으로 지켜봐야겠으나 그 자체로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검토할 유사 사례가 1943년 이뤄진 카이로 회담과 테헤란 회담의 개최지 문제다. 한국의 운명 즉 독립 논의가 연합국에 의해 언급된 역사적인 사건으로 우리 국민들은 카이로 회동에만 주목하는 경향이 있다. 장제스 중화민국 총통과 프랭클린 루즈벨트 미국 대통령, 윈스턴 처칠 영국 수상은 카이로에서 회담을 갖고 카이로 선언을 채택했다. 장 총통은 이후 중국으로 돌아가 일본과의 전쟁에만 매진하면 됐지만, 루즈벨트와 처칠은 그 다음 숙제를 갖고 있었다. 스탈린 소련 서기장을 만나 카이로 선언 내용을 전달하고 동의를 이끌어 내야 했다.

이들 두 지도자는 테헤란으로 가서 스탈린을 면담, 결국 스탈린의 동의를 얻었다. 루즈벨트의 요청에 따라 스탈린은 독일 항복 후에 대일본 결전에도 참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처럼 미국과 영국이 밀리는 상황이 연출된 것은 테헤란 회담이 이루어지는 시점에서 소련과 미국 등 서방 진영 사이의 균형 관계에 변화가 왔기 때문. 소련은 미국의 무기대여법 등에 따라 간신히 연명하며 독일과 싸우던 약한 나라가 더 이상 아니었다. 유럽 대륙에서 2년 넘게 독일군 주력을 상대하며 발을 묶은 자부심이 컸다. 

애초에 스탈린이 강골로 발언권 행사에 대한 집착이 컸던 데다, 쿠르스크 전투의 승리 이후 전세가 완전히 소련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역전되었기 때문에 미국이나 영국으로서는 비위를 맞춰야 했다. 독일이 항복한 다음에도 일본이 결사 항전을 하고 소련이 이 싸움에서 미·영국군을 도와주지 않는 경우를 막기 위해 테헤란을 회담 장소로 정하는 것을 동의한 것. 

테헤란의 경우 소련 입장에서는 간단히 남쪽으로 날아오면 되지만, 미국과 영국 기준으로는 이동 거리가 긴 '굽히고 들어가는 의미'가 있다.

결국 이번 회동의 장소 문제 역시 힘겨루기 의미가 있다. 예를 들어, 북한과 미국 사이의 회담 추진 초기에 일부 언론이 주목한 대로 괌에 김 위원장이 오는 걸로 결론난다면 대단히 미국 측에 유리한 전개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이런저런 후보지 중에 마땅한 곳이 없고, 그런 상황에서 상징성 챙기기라도 하자는 유연한 사고를 하며 현재 저울질 중인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북측 지역 대신 절대적으로 남측 지역이어야 한다는 선은 요구하는 것으로 청와대 주변에서는 이야기하고 있다. 

하나를 주는 대신 다른 하나를 챙기겠다는 기업가 출신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을 엿볼 수 있는 1일 오전 진행 구도는 그런 맥락에서 대단히 흥미로울 수밖에 없다. 적어도 트럼프 대통령은 2차 대전 말기의 루즈벨트 대통령처럼 애가 타서 움직이는 건 분명 아니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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