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린트
  • 메일
  • 스크랩
  • 글자크기
  • 크게
  • 작게

[기자수첩] '자유' 빠진 교과서? '친위 쿠데타' 간보는 靑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5.03 17:00:02

[프라임경제] 지난 정권에서 국정 교과서 문제가 시끄럽더니,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후에도 교과서 집필이 재차 문제가 되고 있다.

중·고교생들을 가르칠 용도로 2020년부터 사용될 역사 교과서의 집필 기준 시안을 두고 논쟁이 붙었다. 대한민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이 사라진다고 해서 보수파에서 반발하고 있다. 특히 6·25 전쟁과 관련해 '남침' 표현을 사용하던 것을 빼려고도 했지만 간신히 유지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다.

당분간 교과서 표현 문제를 놓고 이념 논쟁이 뜨겁게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이유다.

좋다.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 표현은 국제연합(UN)이 1948년 12월 한국의 독립 문제와 관련한 결의문 제195호에 사용한 표현으로, 해석을 둘러싸고 진보·보수 진영 간 논쟁이 이어져 왔다는 점을 모르지 않는다. 

물론, 이 문언의 해석상 '남한만이 아니라' 한반도의 합법정부라는 점을 UN이 인정한 것이라고 기자는 믿는다. 다만, 현실적으로 우리가 한반도 전역을 장악하지 못한 지 이미 오래이고, 앞으로 북한과 평화 체제 정착을 위해 협의를 하다 보면 종전 협정 체결로 나가야 될 텐데 그 경우를 대비해 표현을 빼는 문제를 검토는 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1982년 중화민국(대만) 헌법은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는 남경을 수도로 하는 중화민국 정부다"라고 비감하게 선언하는 걸 보고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를 생각해 보면 쉬울 것 같다. 같은 분단 국가인 우리가 봐도 대만이 이때 '규범적 헌법 규정을 이야기한 데 불과하다'고 밖에는 해석이 안 되지 않나?

다만 문제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라는 표현에 수술을 단행한다고 교육부는 결국 정한 모양이다. '자유'를 뺀 '민주주의'로 수정하고,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이라는 표현 관례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꾸려는 모양이다.

이건 개별 연구과정 참여자를 마녀사냥할 일은 아니다. 학술적으로 고심했을 노고가 우선 눈에 밟히고, 연구의 자유가 있는데 미주알고주알 갑론을박 장에 끌어내 조리돌림을 하는 건 문제가 있다. 그렇다고 관리자 책임이나 사용자 책임을 물어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책임질 것이냐? 그럴 일도 아니고, 그 위에 교육부가 책임질 일도 아니다.

최종 책임은 이념적 이슈를 놓고 자꾸 틈나는 대로 '간보기'를 한다는 느낌을 자주 주는 문재인 대통령에게 있다. 문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에 왜 저렇듯 강력히 저항하는 이들이 상당수 존재할까? 국회가 결국 사전 단계인 국민투표법 위헌 상태 수정을 외면하는 방식으로 청와대발 개헌안에 저항할까?

수많은 좋은 내용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를 깨는 방식으로 개헌이 이뤄질 것이라는 의구심을 그가 샀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아무 문제 없는 걸 보수 언론에서 지레 의혹을 제기하면서 문 대통령 발목잡기를 했을 뿐 아니냐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청와대가 각종 안보 논란을 빚거나 혹은 빚는 자를 방치하거나 어중간한 방식으로 수습하는 정도에서 간보기를 한 것들을 겹쳐 보면, 결국 이념적으로 애매모호한 것들을 한 번 찔러본다는 식의 프레임에서 이번 평가원 논란도 이해해 볼 수 있다.

주한 미군 철수 불가피설을 주장한 일명 대통령 특보, 문정인 전 연세대 교수를 보라. 그리고 그에 대처한 청와대의 태도, 그걸 받아들이는 언론들의 시각을 보라.

문 대통령이 직접 진화에 나섰다고 하지만, 주한 미군 항구적 주둔 입장 천명 같은 최강의 수는 결코 꺼내지 않는다. 이게 지금 '그거랑 그거는 다른 문제' 정도의 표현으로 무마될 일이라 보는가? 그래서 일부 지방지는 문 대통령 측 인사들이 여론 떠보기를 하려 한 게 아니냐고 의심한다. 실제로 긴 길이의 분석 기사를 오늘 아침자 지면에 부러 싣기도 한 신문사도 있다. 

사정이 이렇고 보면 눈 딱 감고 보수 진영과 대리전을 한 차례 해 보고 싶은 그래서 잘 보이고픈 줄서기 유혹을 관계 당국에서 못 느끼는 게 오히려 비정상 아닐까?

청와대발 개헌안에서조차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 표현이 그대로 유지된 상황에서 교육부가 나서서 이념 편향성 논란을 일으킨다는 것은 결국 문 대통령의 복심을 읽어내는 주변 거물들, 관련 기구들의 생존 감각이 작동한 탓이다.

실제로 '저 분 속뜻은 자유 빠진 민주주의 나라를 바란다'는 게 맞지 않겠으나, 그런 생각을 아랫것들이 품게 하는 것은 정말 문제이고 아랫것들을 잡도리 못한 최고 책임자의 책임이다. 그런 이들을 그냥 내버려 두고 매번 '어허, 혼선은 좀 빚지 말아라, 그렇다고 뭐 그만 둘 건 없고'라고 하면 언제 이들이 과잉충성을 저지를지 모른다.

다른 예를 하나 들어보자. 지금도 헌법 개정안 사실상 좌초를 우회책으로 돌파하는 문제에 대해 딱 부러지게 선을 긋지 못하는 혹은 그런 방편을 대단히 관심있게 들여다 보는 것으로 해석되는 청와대 직원들이 있다. 

역사에서는 그런 이들이 일으키는 난장판을 '친위 쿠데타'로 표현한다. 아니, 문재인 청와대처럼 간보기 하는 표현 쓰지 않겠다. 그런 짓을 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건 법률적 표현으로 '내란'이다. 

정보망을 돌리든, 밀고제를 하든 그런 이상한 일 하려는 이들이 있다면 잘 계도하고 실제로 일 일으키거든 매섭게 질책하라. 청와대 게시판에 온갖 잡다한 청원 받아들이고 공들여 직원들 SNS 라이브 내보내 답도 주면서, 그런 일은 왜 못 하는가?

헌법 수호의 최종 책임자는 대통령이다.  


  • 이 기사를 공유해보세요  
  •  
  •  
  •    
맨 위로

ⓒ 프라임경제(http://www.newsprime.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