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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또다른 평양냉면, 평광옥을 살려주세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5.05 11:31:14

[프라임경제] 북한과의 정상회담이 지난달 말 순조롭게 치러진 가운데 한반도 평화 무드가 높아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소품으로 등장한 평양냉면에 대한 관심이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북측 요리사가 몸소 제분기를 판문점에 가져와 즉석에서 면을 뽑고 국물을 말아 준비했다는 점 외에도 평양의 대표 음식이라는 점에서 스토리텔링 효과가 극대화된 것.

이 평양냉면 뉴스를 접한 많은 이들이 평양냉면을 맛볼 수 있는 전문식당을 수소문하고 방문하는 통에 인파가 평소 몇 배 북적이는 현상도 빚어졌다.

이런 가운데 또다른 평양냉면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다. 대북 화해 기조가 주류인 시점에 불편한 소식이지만, 자유 민주주의 기본질서를 부정하는 광풍과 평양냉면의 점접 문제라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인천광역시에 평광옥이라는 가게가 있다. 평양냉면 외에도 북한 음식을 몇 가지 하는 음식점이다. 그런데 이 곳 주인은 탈북자인데, 그가 보수 색채를 드러내고 특히 북한을 현재 지배하고 있는 속칭 '백두혈통' 독재정권에 비우호적이라 해 마녀사냥 대상이 됐다. 일부에서는 이 곳 주인이 세월호 유가족 단식을 조롱하는 일명 '일베 폭식투쟁'에 관련이 있다는 식의 비판을 가하기도 한다.

결국 불매운동 대상으로 떠올랐고, 이 정도까지는 그렇다 칠 수도 있으나 노란 페인트로 세월호 추모 마크를 그려넣고 인신공격 비난성 대자보를 붙이는 사례가 나오는 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아니, 북한 김정은이 가져온 평양냉면에 대한 남측 일반인들의 호기심과 호평이 사그라들지 않고 계속 다른 이야깃거리를 낳으며 회자되는 것처럼 또다른 평양냉면 평광옥에 대한 증오 역시 증폭일로인 것 같다.

같은 평양냉면이고, 북에 모든 걸 두고 온 이가 먹고 살자고 하는 가게인데 이렇게 박하고 모질게 구는 이유를 알 수 없다. 일각에서는 이런 정신세계로 사람 먹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느냐는 논리를 대는 모양인데, 꼴랑 냉면 한 그릇 팔아줘 놓고서 '아, 먹고 보니 그런 새X가 하는 가게였다니, 참 후회된다'는 식의 글을 올리는 그 정신세계가 오히려 대한민국에 걸맞지 않는다. 

그런 음식 품평을 가장한 비난성 글을 올리는 이들의 심리기저에는 1만원가량 하는 냉면 하나 팔아주면 그 주인장의 정신을 전인격적으로 지배하는 훈수도 가능하다는 건방진 태도가 깔려 있다. 그건 1948년 제헌 헌법 이래 현행 헌법이 줄곧 명시하고 있는 자유 민주주의에도 반하는 것으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적 패악이다.

그야말로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체제의 주구인 주사파들의 후예'나 펼칠 수 있는 궤변으로, 반대정파에 대한 비판의 자유를 이미 한참 전에 넘어서서 진정으로 위험한 수준까지 나가버린 경우다. 세월호 정신이 어떻고 하며 추모하는 사람들이 할 언사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도 없다.

남의 집 아이들의 불행을 4년 넘게 추모하면서, 누군가에게는 그렇게 잔인하고 냉정하게 말의 칼질을 할 수 있는가? 백보 양보해서 설사 정말로 어떤 탈북자가 도에 지나친 언행을 했다 손치더라도, 어떻게 그렇게 모질게 해악을 가할 수 있는가? 

정말로 세월호 비극에 추모의 정 한 자락을 빌려줄 수 있는 심성고운 인천 소시민이라면, 평광옥 때리기에 동참할 게 아니라 평광옥을 살려달라는 비명에 오히려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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