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北核 수싸움…변주·변칙도 마다않는 '21C 박규수들'

2018-05-10 09:14:38

- 중국과 북한, 일본 자국 셈법 치열하고 미국식 실용주의 눈길…러시아는 한국 예의주시

[프라임경제] 조선 후기 역사에서 결국 자주적인 개항과 서양 문물 도입은 실패했지만, 그 와중에도 개혁파의 싹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개혁파의 스승 중 하나로 꼽히는 인물 중 하나가 흥선대원군 시기의 관료인 박규수다. 박규수는 서양과 접촉하는 문제에 열린 자세를 갖고 있었던 인물이나, 평양유수로 근무하던 때 미국 선박인 제너럴셔먼호가 평양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약탈 행위를 벌이자 단호히 대처해 배를 불태워 버리기도 했다. 그 뒤 평안감사 등을 역임했다. 그의 길을 개혁과 보수, 문호 개방과 쇄국 등을 능수능란하게 오가며 '국익'을 추구한 공직자의 전범으로 꼽힌다.  

북한이 핵을 손에 쥐고 글로벌 장사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미국의 고삐 죄기가 대단히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거침없는 언사와 밀어붙이기 정책이 세계 각국을 불편하게 하는 건 사실이나, 그런 가식없이 상대방을 흔드는 게 이번 핵전쟁 위기 국면에서는 제대로 역할 발휘를 해내고 있다는 것. 미국이 가장 중요하고 일본이나 중국 등 주변국이 제각기 셈법으로 강온 전략을 오가면서 상대방의 수를 읽고 내 수는 감추는 '블러핑'을 하고 있다. 여기서 각국의 21세기판 박규수들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마이크 폼페이오 신임 미국 국무부 장관의 역할은 트럼프식 국제정치 모델의 가장 중요한 이정표 중 하나로 봐도 손색이 없다는 평이 나온다.

그는 김정은 체제의 중국 카드 활용하기로 북·미 정상회담 추진 국면에서의 미국 우위 상황이 흔들릴 위기가 발생하자  몸소 북한으로 날아갔다. 정보기관장을 역임하고 외교 당국자로 변신한 실용주의 미국 정치를 대변하는 그다운 가벼운 이동 전략이었다. 실제로 그의 역할에 일정한 당근을 줄 필요를 느꼈는지, 그는 귀국길에 북한에 억류돼 있던 미국인 3명을 함께 데리고 오는 성과를 냈다.

폼페이오의 '은 위원장' 발언은 실수 아닌 고도의 전략?

한편 그런 그의 '인질 석방' 뉴스에 이제 묻혔지만 대단히 의미심장한 이슈가 하나 있었다. 그가 평양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북한 지도자를 '은 위원장'으로 지칭한 것.

그의 이 같은 발언에 성과 이름을 구분하지 못 한 때문이라는 해석이 나왔고, 북한에 대한 기본 정보와 이해가 부족하다는 우려도 일부 외신에서는 나온 바 있다. 하지만 정보기관 수장으로 특히 트럼프 행정부의 글로벌 전략 전반 맥락을 꿰고 있는 그가 현안 중 현안인 북한 이슈를 제대로 못 챙겼다는 해석이나 단순 실수로 보는 견해는 2% 부족한 감이 있다. 실제로 외교가에서 상대방의 의중을 떠보기 위해 말실수를 하거나, 별로 가고 싶지 않거나 전에는 가려 했지만 갑자기 본국 방침으로 가지 말아야 할 때(기분나쁘다는 점을 간접 전달할 때) 의전상 꺼내는 카드가 칭병(감기 등이 갑자기 왔다는 것)이다.

이번 발언 실수 역시 의도된 실수일 확률이 100%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특히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의 핵 문제 협상 줄타기 전략을 이전에 과격하게 몰아세운 바 있다. 일명 '이스라엘 텔아비브 발언'에서 그는 "북한 비핵화는 말이 아닌 행동으로 확인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왼쪽)이 북한 문제에 대한 강경 발언을 하자 이스라엘 관계자가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다. ⓒ AFP 뉴스1

그런 그가 중국과 밀월 관계를 다시 강조하는 북측에 직접 날아가면서도 불편하거나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를 일부러 흘린 셈이라는 풀이다. G2 국가의 글로벌 운영 전략에서 동북아 문제는 한 축에 불과하다는 점을 북한에 주지시키려는 제스처라는 것. 실제로 폼페이오 장관은 귀국길에 인질 석방 선물에 기분이 좋았는지 "하루 일정으로 지금 계획 중이지만 더 논의할 것이 있으면 이틀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당일 회담에서 1박2일 회담까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것인데, 상당한 실세 그것도 유연성을 겸비한 판단조력자가 아니면 하기 힘든 발언이다.

이번 핵 관련 상황에서 가장 주목받은 인물은 역시 유연함의 상징인 평양 김정은이다. 김정은 체제는 북한 관영언론을 통해 연이어 위험한 발언을 쏟아냈다. 핵 개발에서 미국 위협, 글로벌 전쟁 임박 위기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남과 밀월 무드를 조성하는 빠르고 현란한 스텝 이동이 김정은 및 그 주변 핵심 참모들의 작품들이다.

고모부를 전횡 등 혐의로 고사포 총살이라는 끔찍한 방법으로 제거하고, 대담한 해외 작전으로 배다른 형을 제거하는 등 국제적으로 악명을 날렸을 망정, 북한 김정은 체제가 이성을 잃고 갈짓자 걸음을 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선군 사상으로 머리가 굳은 이전 세대의 참모들과 격이 다른 김정은과 참모들이 확고부동하게 세력 구축을 하고 있다는 징후라는 뜻.

'순망치한' 중국에 일본 안간힘, 러도 한몫

그런 북한도 지난 4월27일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이후 미국 반응이 의외로 시큰둥하고 계속 압력만 가해오자 불안했던 모양이다. 조선중앙통신 등 관영 매체를 동원, 미국과의 회담 불발 가능성이나 대화 기조 자체를 원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다는 강경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한편, 북한은 최고위 인사의 중국 방문을 급히 결행하기도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다정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다롄 해변 대화'를 급히 연출하는 데 성공한 것. 전쟁 불사로 방향을 잡은 건 아니나, 얼마든 중국과 밀월을 이어갈 여지가 있으며, 이 경우 중국을 견제해 동북아에서 이익을 챙기려는 미국 글로벌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간접적으로 전달한 것이다.

이런 북측의 대화 제스처를 받아들인 중국의 실용주의 강조 역시 주목할 만 하다. 자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나려 하거나 이를 이용만 하려는 북측에 대해 시진핑 체제가 강성 일변도로 대처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런 방향 대신 위에서 언급한 미국 견제를 위해 북한을 이용하는 것을 택했다. 중국식 역내 질서 구축에 북한이 아직은 필요하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는 것.

일본은 납치자 귀국 문제가 시급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각종 논란에 이어 이번에는 부인 스캔들까지 겹쳐 정치적으로 곤혹스러운 지경에 몰려 있다. 미국이 이번에 자기 시민 3명을 석방시켜낸 것을 보면서 아베 총리는 일본도 할 수 있다는 긍정적 기류 감지와, 이 경우 북한이 일본 배려만 하지 않으면 곤란하다는 최악의 가능성에 동시에 노출되고 있다. 이런 미묘한 상황에 대한 대처는 이미 한·중·일 정상회담을 치르면서 3국 협력과 우호 관계 강조 카드를 깔아놓은 것으로 처리하면 된다는 풀이다.

러시아 역시 핵 문제에서 다소 벗어난 것으로 보이나, 상당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무심한 듯 보이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측은 우리 쪽에 문 대통령의 6월 국빈 방문 문제 타진을 통해 손을 내민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명분에 휘둘리거나 압살당하기 보다는, 실용적으로 그때그때 명분을 만들어 가면서 국익 추구에 여념이 없이 서로 구밀복검하는 박규수의 후예들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임혜현 기자 tea@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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