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칠도 아닌데…' 정세균 책임론

2018-05-10 18:15:25

[프라임경제] 정세균 국회의장의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추가경정예산 국회'여야 할 시기지만 '드루킹 사건'으로 촉발된 인사청탁 의혹에 대한 야당의 특검 수용 요구에 발목이 잡혀 끝없는 대치가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로서는 정 의장으로서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는 회의론이 우세하다. 마치 문재인 정부의 탄생 자체를 댓글 공작의 결과로 몰고 가는 듯한 야당의 공세 속에서, 여당과의 합의를 조율하는 것이 쉽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정 의장이 섣불리 국회 정상화 데드라인을 정한 게 일을 키웠다는 지적도 만만찮다. 그가 일갈한 일명 '8일 합의 시한'은 불발됐다. 특검법안과 추경예산안 처리 시점 등을 놓고 여와 야는 줄다리기만 계속했다.
 
원내내표 회동→원내 수석부대표 조율→원내대표 후속 협상으로 이어진 게 8일의 12시간 가까이 걸린 공회전 상황. 협상이 될 듯 말듯, 반전의 분위기만 내다 결국 실제 열매 없이 끝나자 허탈함이 국회는 물론 정치권 전반을 휘감고 있다. 

이 과정에서 21일에 특검과 추경을 동시에 처리하는 방안이 절충점으로 제시되기도 했고, 14일에 특검·추경·지방선거 출마 의원직 사퇴를 동시에 처리하는 패키지 합의안이 논의되는 등 마지막 비상구가 없지 않았다는 후문.

하지만 민주당 내부에서 시기 문제를 꼽으며 난색을 표한 게 한국당을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물리적으로 14일까지 추경안을 심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식의 여권 기류에 야권으로서도 아쉬운 것은 정부와 여당일 텐데 이건 너무하다는 반발심리가 확산됐다.

이 와중에 정 의장은 선약을 깼다. 예정된 해외 순방을 전격 취소하며 그는 그날 밤 자신의 페이스북에 소회를 남겼는데, 이는 정치권의 각성과 대국민 봉사정신 초심 회복을 촉구한 것으로 읽힌다.

당초 정 의장은 9일부터 8박 9일 일정으로 캐나다와 멕시코 순방을 예정했었다. 대개 공화국에서는 국가원수 외에도 국회의장이 대단히 높은 예우 위상을 차지한다. 따라서 외교적으로도 국회 외교가 대단히 대접받는다.

아울러 미리 예정을 잡은 해외 순방을 급히 취소하는 것은 해당국에 큰 문제가 있다는 징후로 인식될 수도 있고, 외교적 결례로 비칠 수 있어 가급적 지양한다는 것.

▲김동연 부총리(왼쪽)와 대화 중인 정세균 국회의장. ⓒ 뉴스1

이에 따라 정 의장은 외교적 결례보다 파행된 국회 정상화를 위해 고뇌에 찬 결단을 내렸다는 찬사 섞인 평가도 일부에서는 나온다.

하지만 4월에 이어 5월 국회까지 파행을 겪으면서 미리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해 일정 변경이나 취소 가능성을 소프트랜딩했으면 될 것을 미리 선을 긋는 등 호들갑스럽게 강행하려다 스스로 주저앉은 것이라는 짠 평가도 나온다. 결국 국회 내부 및 외부의 쓴소리에 접은 것 아니냐는 지적이 강하게 대두된다는 얘기다.

과연 그의 SNS 글처럼("국회를 정상화하기 위해 마지막까지 모든 노력을 다했지만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순간") 노력과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둔 조율을 해냈는지 스스로 되물어볼 때라는 지적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해외 일정을 포기한 정 의장은 최소한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국회의원들의 사직 문제는 매듭지어야겠다고 긴박히 움직였다. 이 처리를 제때 해줘야 이번 6월13일 지방선거일에 국회의원 재보선을 함께 치를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해, 의장 직권으로라도 본회의를 열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그러나 '여소야대' 국면의 다당제 체제를 알면 이런 움직임을 좀 더 빨리, 아니면 적어도 8일 데드라인 운운할 게 아니라 진지하고 긴 호흡으로 애초부터 이거라도 하자고 원포인트 매달리기를 시도했어야 옳았다는 만시지탄론이 나온다. 직권으로 상정하는 것도 일부 교섭단체의 반대를 일정 시간 공을 들여 모마하지 않으면 좌절될 수밖에 없다. 국회법 85조에 따라 각 교섭단체 대표와 합의 없이는 직권 본회의 부의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재보선 길이라도 터 주자는 정 의장의 아이디어를 각 당이 고깝게 보는 걸 면키 어렵다.

자한당은 정 의장이 의원들의 사직서 직권 부의 및 처리 뜻을 밝힌 데 대해 크게 반발했다. 직권 상정이 되면 더욱 극단적인 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대처라서, SK식 정치에 대한 반감마저 감지된다.

윤재옥 자한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10일 천막농성장 앞에서 "직권상정해선 안 된다"고 일갈했다. 그는 "국회 전체가 정상화되고 있지 않은데 의장이 이 상황을 타개하고 풀 생각을 갖고 국회를 운영해야지, (직권을 사용하면) 오히려 이 파행을 더 심각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고 짚었다. 

심지어 "의장도 임기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평생 의회민주주의자로서 살아온 의장이 그런 오점을 남겨선 안 된다"는 소리까지 윤 수석부대표는 했다. 대단히 강력한 규탄인 셈이다.

바른미래당 역시 SK식 행보에 오히려 반대 격화 패턴을 보이고 있다. 김동철 바미당 원내대표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만약 정 의장이 밀어붙이기 상정을 한다면) 의회민주주의에는 관심이 없고 마지막에 (자기 출신 정당인) 민주당에 보은하겠다는 것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고 날을 세웠다.

애초에 진정성 없는 정치인으로 떨어질 상황만큼은 피할 수 있었던 것인데, 괜히 무리하게 8일 데드라인을 제시하는 바람에 진퇴양난에 빠진 셈이다.

일각에서는 영국 정치 사례를 꼽으며 그의 무리수 외유 꿈에 대해 비판하기도 한다. 2차 대전 종전 처리를 두고 연합국이 머리를 맞댔던 1945년 7월17일~8월2일 포츠담 회담(연합국 수뇌회담)에서 답은 트루먼(미국)과 애틀리(영국), 스탈린(소련)이 냈다.

애틀리 대신 원래 처칠이 독일 포츠담에 도착, 일정 소화를 했었다. 그는 총선 결과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담대히 외교 현안을 처리했으며, 중간에 총선 패배 소식을 듣자 급거 귀국하며 후임자를 내세워 영국 이익을 철두철미하게 보호하고자 했다. 

처칠의 강력한 일정 소화 의지와 그럼에도 또 유사시에는 초개와 같이 귀국을 결행하며 자신을 대신할 애틀리에게 모든 걸 맡기는 태도를 SK는 배우지 못하고 단지 의장 외교, 국회 외교의 중요성이나 외교 결례의 표면에만 치중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임혜현 기자 tea@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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