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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처칠 발뒤꿈치도 못 따르는…SK의 망상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5.11 15:15:44

[프라임경제] 한때 그런 지라시(정보지)가 돌았다. 정세균 당시 의원이 기자들에게 자기를 SK(과거 대선주자급 인물들은 JP니, YS니 하고 이니셜로 불렸다)라고 불러주면 좋겠다는 암시를 자꾸 해서 즐겁던 자리가 대단히 뜨악해졌었다는…이걸 놓고 그래도 그가 거물인데 설마 그렇게 유치하게 굴었겠냐며 마타도어로 비판한 이들이 있었고, 그럴 수도 있지 않겠냐는 견해도 있었다.

아무튼 '진위 여부는 몰라도, 그럴 수 있는 사람 정도로 보는' 의견이 정치적 감각면에서는 맞았던 것 같다. 2016년 그는 실제로 '대권병 논란'을 빚었으니 말이다.

지금은 국회의장이 됐다. 그런 정 의장의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여권과 야당들이 드루킹 의혹 특별검사 임명 문제를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이고 있고, 그 여파로 국회가 공회전하면서 추경안 처리와 지방선거 출마 국회의원들의 사직서 처리 문제 등까지 함께 묶인 상황이다. 

이런 터에 정 의장은 그렇잖아도 빠듯한 14일까지의 협상 시안을 해외 일정이 있으니 8일까지 해달라고 요구해 협상 가능성 위축을 초래했다. 
 
정 의장의 행보에 의회 외교가 정부간 공식 외교 대비 중요성이 떨어지지 않는다며 이해해야 한다는 견해도 나온다. 하지만 의회 외교 라인도 그 나라 정치가 제대로 움직이는 걸 전제로 타국 의회와 접촉을 하고 기여를 모색하는 것이다. 집이 홍수로 떠내려 갈 상황에 선약은 꼭 지켜야 한다거나 외교적 결례 문제가 있다는 고담준론을 펴는 것도 문제다.

이번 일을 놓고, 정 의장의 정치적 감이 떨어진 게 아니냐는 걱정이 나오며 다른 한편에서는 독선과 독단으로 의장 권위만 세우려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나오는 등, 해석이 엇갈린다. 하지만 정 의장은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래 오랜시간 여의도 정치를 체험한 인물이다.

선거전에도 강하다. DJ 특보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 15∼18대까지는 전라북도에서 내리 4선, 19대 총선부터는 서울 종로구로 지역구를 옮기며 거물로 명실상부 체급을 더 올렸다. 19대에선 보수의 명장 홍사덕씨를 근소한 차이로 이겨 5선 깃발을 들었고, 그 다음에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을 따돌리며 6선 고지에 올랐다. 그래서 그냥 독선과 아집을 부린 것 아니냐는 해석에 더 무게가 실린다.

그렇게 선약은 중요한 것이라며 꼭 이런 엄중한 시기임에도 외유를 가고 싶었을까? 일각에서는 영국 정치 사례를 꼽으며 외부 일정과 국내 정치의 조화 문제를 말한다. 제2차 세계 대전의 뒷처리를 위해 연합국이 머리를 맞댔던 1945년 7월17일~8월2일 포츠담 회담(연합국 수뇌회담)과 윈스컨 처칠 영국 수상의 일이다. 이 회동의 결론은 트루먼(미국)과 애틀리(영국), 스탈린(소련)이 냈다.

애틀리 대신 원래 처칠이 독일 포츠담에 도착, 일정 소화를 했었다. 그는 총선 조짐이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담대히 독일까지 날아가 외교 현안을 처리했다. 또한 중간에 총선 패배 소식을 듣자 급거 귀국하면서 후임자를 잘 활용했다.

당색은 다르나 말이 잘 통하고 이전에 여러 번 손발을 맞춘 경험도 있는 애틀리(그는 후임 수상으로, 우리가 1950년 북한의 침공을 당한 상황에서 영국군을 UN군 일원으로 파병하는 결정을 해준 인물이기도 하다)는 영국의 이익을 철두철미하게 보호하고자 했다. 

처칠의 강력한 일정 소화 의지와 그럼에도 또 유사시에는 초개와 같이 귀국을 결행하며 자신을 대신할 애틀리에게 모든 걸 맡기는 태도를 SK는 배우지 못하고 단지 의장 외교, 국회 외교의 중요성이나 외교 결례의 표면에만 치중하는 게 아닐까? 일하는 국회, 제대로 된 의장을 갖지 못했다는 생각에 유권자들만 뼈저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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