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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行 파트롱 나설 中-CVID 원하는 美 '고래싸움'

한국 역할 축소 바라는 백악관 내 기류 '한반도운전자론'에 마이너스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5.12 15:08:37

[프라임경제] '알고는 있었는데, 뒤집지는 못 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둘러싼 청와대의 정보인지 능력은 어느 정도일까? 이는 단순한 정보력의 문제가 아니라 미국과 우리의 동맹관계가 어느 정도 굳건하게 작동하고 있는가를 반영하는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아울러 중요한 정보를 미리 준다는 점은 한반도 문제의 특수성을 반영하면 좀 더 다른 이야기를 파생한다. 받은 정보를 가지고 과연 이에 대한 수정 의지를 어느 정도 발휘하고 또 그게 실제로 반영, 관철되도록 하는가의 외교력 문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11일 오후 청와대 관계자는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북측과 미국이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마주앉기로 결정됐다는 사실을 일주일 전 미국 백악관으로부터 통보받았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달 4일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만나러 워싱턴에 갔을 때 북·미 정상회담을 6월12일경 싱가포르에서 개최하기로 했다는 것을 처음으로 통보받았다"고 설명했으며, 같은 날 다른 관계자는 이번 싱가포르행에 대해 "아무래도 이렇게 되면 남·북·미 정상회담을 연이어 열기는 어려울 수도 있겠다"는 연쇄 효과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에 우리 고위 관계자를 불러 북·미 정상회담 장소를 통보했다는 것으로 한 줄 요약이 가능하지만, 이후에도 백악관 내부에서 큰 진통이 계속되면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한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발표할 때까지 적지 않은 곡절을 겪었다는 것이다.

정 실장이 미국에서 이 같은 소식을 들었을 때 적잖이 당혹스러웠을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이 상황에는 그래도 막판에 뒤집기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걸려 있었음직 하다. 

싱가포르 대신 판문점이 유력한 대안으로 떠오른 상황이었기 때문. 판문점 카드는 지난 달 27일 남북 정상회담 직후부터 부각됐다. 청와대의 이야기에 따르면, 남·북 정상회담 다음 날 이뤄진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전화 통화에서 싱가포르 외에 판문점과 인천 송도도 새로운 선택지로 거론됐다는 것.

실제로 문 대통령은 이런 트럼프 대통령의 생각이 먼저 전달되자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이라고 생각했을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도보다리 밀담'에서 이미 북측에 남측과의 정상회담에 이어 진행될 미국과의 회견 역시 판문점에서 하도록 제안하고 그 필요성과 효과를 설명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물론 백악관 내부의 신중론은 싱가포르 혹은 스위스를 바란 것으로 보이며, 대체적인 글로벌 외교 패턴상 이 같은 상황에서는 제3국으로 정해지는 게 통례다. 

다만 우리 측은 막판까지도 '마지막 냉전지대' 판문점만이 가진 드라마틱한 효과가 트럼프 대통령을 움직여 줄 기대를 걸 수 있었다. 특히 미국인 인질 3명 석방이라는 북측의 통 큰 카드 처리가 발표되면서, 청와대에서는 쾌재를 불렀을 것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인질 협상 등 성과를 안고 돌아온 미국 측의 입장 정리는 우리 기대와 다소 달랐다.

이번에 평양에 다녀온, 북한에 억류됐던 미국인 3명 석방 선물을 받고 돌아온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부 장관은 방북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제재 완화와 경제 보상, 체제 보장 등을 총망라한 '포괄적 보상 패키지'를 제시한 것으로 외신은 분석한다.

이때부터 미국은 남·북 회담에 이어 북한과 자신까지 판문점에서 만날 경우에 대한 드라미틱 효과 수혜주가 과연 어느 쪽인지 계산에 계산을 다시 했을 것이라는 것. 

굉장히 큰 카드를 내밀면서 얻어낼 성과가 시원찮으면 이번 겨울로 잡힌 중간선거에서 트럼프 행정부는 치명타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현재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를 원했지만 북측은 이에 부정적인 기류였다.

따라서 미국은 CVID에 응할 경우 받을 수 있는 강력한 '당근'을 제시했다는 것. 트럼프 대통령의 구두 메시지를 중앙 정보당국 수장 출신으로 외교 사령탑에 기용된 폼페이오 장관이 들고 간 점은 이 상황을 잘 압축해 보여준다. 

현재 미국 외교안보 전략의 실용적 패턴을 잘 보여주는 일련의 인사변동도 사실 거칠게 요약하면 모두 북핵의 원만한 해결과 그 이후의 미국 패권주의 존속을 위한 것이기 때문.

따라서 판문점을 다시 회담 장소로 연달아 택하는 것이 '문재인 부각 효과 주, 트럼프 조명 효과 부'로 판단될 여지가 1%라도 있는 한 미국의 주류 정책 리더들의 생각은 판문점 대신 다른 곳으로 기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번에 미국이 제시할 보상안은 덩어리가 굉장히 커서, 트럼프 행정부가 독자적으로 떠안을 수 없다는 전망은 그래서 나온다. 미국은 물론 한·중·일에 유럽연합(EU)까지 역할을 분담해 맡는 형태가 될 것이라는 최대 시나리오도 논의된다.

이런 심각하고도 매력적인 제안이 암중모색되는 상황에서 흥미로운 것은 중국과 북한의 태도다.

북한 조선중앙TV는 10일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대안을 가지고 정상회담에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는 데 대해 (우리는) 높이 평가한다. 만족하는 합의를 봤다"고 보도해 적잖이 긍정적인 신호를 대외적으로 표한 것으로 읽힌다.

그런데 북한은 이렇게 미국의 태도에 만족하고 그대로 흘러가게 두지는 않는다. 중국 카드를 지속적으로 만지는 것.
 
판문점 카드가 미국 내에서 막판 무산된 것은 북·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이 주목받는 것에 부담을 느낀 백악관 참모들의 반대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의 생각과 구상만으로 흐르지 않는 것이고, 미국 내에서도 '한반도 운전자론의 도움은 받겠지만, 그것이 부각되는 독무대를 굳이 만들어줄 필요는 못 느끼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는 뜻이다.

과거 한국을 주적으로 삼고 한국 견제에만 치중하던 북한 같으면 이런 상황 자체에 대단한 흥미를 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핵과 ICBM을 갖고 글로벌 광역 도발을 하며 대화 장사를 하고 있는 북한은 이제 이 정도로는 크게 관심을 느끼지 않는다.

최근 김 위원장이 다롄행을 급히 단행, 시진핑 중국 주석을 해변에서 만나 환담한 것은 중국과 미국간 경쟁 구도에서 향후 열릴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중국이 케어해 달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자리였다고 볼 수 있다. 

물론 표면적으로 중국 해군의 전략자산인 항모 진수식에 즈음해 북·중 군사동맹을 강조한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이는 뒤집어 보면, 중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북·중이 함께 평양의 핵 무장 해제와 그 거래에 공동 대응해 미국을 쥐락펴락할 수 있다는 뜻으로도 연결될 수 있다. 

이 점에 귀를 쫑끗 세우고 있는 게 바로 일본이다. 중국은 자체적인 힘의 거대함으로 이미 '중국 패싱'을 면할 수 있으나, 한반도 문제에서 근래 일본은 '일본 패싱' 우려를 하고 있는 수동적 상황이기 때문. 

일본 마이니치신문은 11일 미국 워싱턴발 기사를 통해 미국 외교 관계자 사이에서 제3국 정상의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음을 보도했다. 이 신문 기사에서 말하는 제3국 정상의 등장 가능성은 '시진핑 주석이 북한의 후견인 자격으로 미국과의 회담 자리에 삼자 대면하는 구도'를 의미한다.

실제로 중국 외교 당국 역시 시 주석 등의 싱가포르행 가능성에 대해 크게 직접적 부정을 하지 않고 있는 것. 중국은 자국 이익에 따라서이긴 하나 철저히 북한을 챙기는데, 미국은 한반도 운전자론과 이제 약간 거리를 두면서 아시아 전체 경영 구도에서의 북한 핵 해결을 저울질하고 있다. 

새우들이 일궈낸 평화의 노래 무대에 다시금 고래들이 주인공으로 움직이고 있다. 슬픈 노래가 되지 않을지, 여러 각도에서 문재인 정부의 고군분투가 꾸준히 계속될지 그리고 그 노력들이 핵 관련 이슈와 평화 정착 전략 구사가 얻어낼 결과물에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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