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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늪 김해신공항①] 소음, '공항 짓고 물어주면' 그만? 아예 못 짓는 '예방시대' 활짝

오사카공항 통해 반성한 日, 도모노우라 사건으로 결실…韓도 '개연성''환경권' 등 조심스러운 성장

서경수·임혜현 기자 | sks@·tea@newsprime.co.kr | 2018.12.27 23:12:19
[프라임경제] 동남권관문공항 문제가 다시 갈등 요소로 부각되고 있다. 당초 후보지로 거론되던 가덕도와 밀양 등을 제외하고, 기존 김해공항 시설을 일부 증설해 김해신공항으로 삼는 것으로 가닥을 잡은 바 있다. 하지만 김해신공항 결정 당시 기초조사자료가 잘못됐다는 논란이 꾸준히 제기됐다. 아울러 2018년 들어 김해신공항 타당성을 둘러싸고 중앙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간 잡음이 계속 증폭되고 있다. 본지는 2018년 여름 '동남권신공항 재점검' 시리즈(①~ ⑤)에 이어 이번에는 특히 김해를 둘러싼 각종 분쟁 가능성을 짚기로 한다.

이미 김해신공항 추진 과정에서는 V자와 11자 활주로 중 어느 것이 옳은지의 논쟁, A380 등 관문공항으로서 중장거리 노선에 필요한 초대형기 이착륙 가능 여부 논란 등 많은 이슈가 제기돼 왔다.

그런데 근래 가장 뜨거운 이슈로 소음이 부각되고 있다. 사실 소음은 공항 이슈에선 가장 기본적인 문제에 해당하는데, 새삼 부각된다는 자체가 문제의 심각성을 방증한다. '소음의 총량'과 '피해 범위에서 일부 범위(지역) 누락' 등이 불거진 것.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부울경 동남권 관문공항 검증단장)은 17일 "당초 국토부와 부울경 단체장(검증단)과의 합의기준이 3800만명 여객처리와 항공기 운항횟수 연간 29만9000회가 가능한 공항시설과 운항능력 확보였는데, 국토부 보고서에는 2925만명의 여객처리와 연간 18만9000회의 운항횟수로 기준 자체를 낮게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소음의 절대적 물리량을 줄여잡았다는 지적이다.

사상과 북구 주민권익 무시, 공항 소음은 '보상 문제일 뿐'?

부산광역시도 소음 관련 축소 가능성에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부산시는 국토부의 초안보고서에 '사상 및 북구 지역 소음 피해가 미반영'되는 등 심각한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했다. 부산시는 이같은 문제점이 해소될 때까지 주민설명회 개최를 중지할 것을 국토부에 공식 요구, 결국 이 절차가 연기됐다.

공항이 건설되는 경우 소음은 피할 수 없는 과제라는 인식이 강하다. 아울러 이 같은 공항 소음 논란은 기본적으로는 당국의 건설과 운영에 힘을 실어주는 것으로 정리하는 게 국제적 관례이기도 하다. 

파란 범위까지 소음 피해권에 들어간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 하지만 이 범위가 더 넓게 그려져야 옳다고 부산시는 보고 있다. 사상과 북구 지역의 누락 문제다. ⓒ 부산광역시


보상과 이주 기준을 1947년 국제민간항공기구(ICAO)가 내놓은 바 있는데, 이는 기본적으로 공항 주변의 소음 보상 요구 등에 합리적인 '제한선'을 긋는 데 목적이 있다. 공항 주변 소음 및 굉음에 대한 기본틀이라고 할 수 있는 1952년 로마협약도 단순 통과에 대한 피해에 일단 수인(감수) 필요성을 제시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영국 민항법(Civil Aviation Act)처럼 항공기와 공항 소음 관계에서 소송 제기 가능성을 강하게 제한하는 개별법을 만드는 경우도 있다.

영국 민항법에서는 항공사와 공항운영자가 비합리적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경우 외에는, 제76조와 제77조의 면책조항 때문에 대부분 패소 처리가 이뤄지도록 구조화돼 있다. 이런 면책 조항들을 놓고 논쟁도 없지 않았다. 공항과 항공사업 운영자에게 지나친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지적과 유럽인권협약상 보장된 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된 것. 하지만 이 같은 내용의 1990년 소송은 결국 패소로 끝나 민항법 시스템의 기본적 유효성은 인정되고 있다.

다만 여기에는 전제 조건이 있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비합리적인 소송 진행이 아닐 경우라는 단서가 있는 것. 이는 면책조항들이 합리적이고 합법적으로 건설된 공항의 경우 누릴 수 있는 것이지, 불합리한 공항의 제반 문제를 모두 덮어주는 것은 아니다. 특권화된 영역으로 공항이 존재하는 것을 민항법이 의도하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英·獨 권한 남용 자제, 일본도 오사카공항 사건 통해 깊은 반성 

독일에서도 공항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건설해 큰 법정공방을 치른 예가 있다. 프랑크푸르트공항 사례다.

이 공항을 처음 개장할 당시 당국의 권위적 태도로 지역 주민들과의 큰 충돌이 있었다. 1980년대의 대표적 행정 실패 사례로 회자된다. 결국 15년간의 소송이 벌어져 우리 돈 3000억원대 분쟁으로 기록됐다.

이 같은 교훈을 살려, 같은 공항에 새로 북활주로를 세우는 문제가 1990년대에 이르러 다시 제기됐을 때에는 증설 논의에서 당국이 정반대의 태도를 택했다. 탈권위적 모델로 성공적 민간과 관료간 대화 사례로 정반대 성공 사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국토부가 계속 자료의 부실 제공 논란으로 일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놓고 일단 공항은 건설을 추진하면 거칠 것이 없다는 인식이 관료 사회 특히 중앙부처에 만연해 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실제로 우리와 일본은 공항 관련 분란에 보상액을 조정하면 된다는 식의 기본 태도를 오래 보여 왔다. 공항에 대한 자세한 논의가 그랬고, 공공시설물을 대상으로 민사적 소송이나 가처분 등을 통해 소음을 배제할 수 없다는 민사소송과 행정소송의 엄격한 분리 태도가 존재했다.

실제로 일본 최고재판소는 1981년, 오사카공항과 관련한 소음배제청구소송에서 민사소송의 방식으로 이 같은 청구를 하는 것은 인정할 수 없다는 논리로 기각도 아닌, 각하(소송요건이 갖춰지지 않아 다루지 않는다고 선언하는 것)처리해 버렸다. 

당시만 해도 예방적 금지소송 같은 모델이 일본이나 한국 행정법 영역에는 일정되고 있지 않았고, 개별적인 행정행위에 하나하나 가처분을 구하는 것이 쉽지만도 않아서 이런 판단은 공항 소음을 배제해 달라는 주장은 사실상 행정소송으로도, 민사소송으로도 어느 쪽이든 하지 말라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이는 일본 학자와 법조계에 극심한 충격을 던졌고 반성의 기회를 제공했다. 환경 영역에서는 행정소송과 민사소송이 서로 겹쳐지는 방해배제청구(=유지소송=차지소송)가 있다는 인식이 본격적으로 성장하게 됐는데 이런 고심없이 최고재판소가 형식적 논리로만 흘렀다는 비판이 계속 강해졌다.

특히 2004년에 일본 행정법계의 요구로 행정소송법을 대폭 개정, 예방적 금지소송 등 새로운 형식의 소송을 많이 신설했다.

이에 따라 오사카공항사건처럼 환경 관련 행정소송을 무기력하게 사각지대에 방치하지 않는 길이 마련됐다.

김해신공항 추진 와중에 소음평가 등 자료 전반에 대한 의혹이 일고 있다. 사진은 현재의 김해공항에 항공기가 내리는 모습. ⓒ 뉴스1

이를 가장 잘 수용한 사건이 2009년 도모노우라 자연경관 개발면허 금지소송이다. 히로시마현지사와 후쿠야마시장 등 행정기관들은 교통체증 해소 등의 필요에 따라 해안 일부를 매립하고 약 180m의 다리도 새로 놓는 방안에 합의했다. 과거부터 명승지로 유명했던 지역 환경이 전반적으로 망가지는 상황이 우려됐다.

◆예방적 금지소송 없지만 도모노우라 사례 수용 가능성 충분

이에 지역 주민들은 중대한 손해 가능성을 이유로  예방적 금지소송을 제기했다. 과거의 판례 태도라면 우선 방법적으로도 불가능했을 것이고, 주민들의 환경권 이익보다 당국의 행정상 재량권을 중시하는 결론이 나왔을 것이지만 실제로 히로시마지방재판소는 예비적 금지소송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경우는 어떠할까? 우리도 행정소송법 개정을 통해 예방적 금지소송을 도입하자는 의견이 적지 않았으나 아직 이런 개정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실제로 행정소송 영역에서는 취소소송을 제기하면서 집행정지를 구하는 식으로 대응해야 하는데, 막상 이것이 예방적 금지소송에 비해서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과 함께 실제로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우려도 있다.

사상구나 북구의 경우 새롭게 소음 문제의 당사자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막상 중앙부처에서는 이를 도마에 제대로 올려놓고 문제를 검토하는 것 자체에도 인색하다는 것이다.

김해신공항으로 동남권신공항을 만드는 것을 일단 결정(기정사실화)하고, 소음 문제에 대해서는 이를 추후에 보상 문제로만 추가 접근하면 된다는 것인데 결국 해당 구역 주민들이 '환경권'과 '침해 개연성'을 어떻게 주장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지는가에 문제가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법원은 봉은사 사건에서는 환경권을 이유로 유지청구(방해배제청구)를 하는 것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음성태극광산사건에서는 "수인한도를 넘어서는 환경침해가 발생할 개연성" "토지소유권과 환경권에 기초한 공사 중지와 청구의 권리가 존재" 등 표현을 사용, 폭넓은 해법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여러 구미 선진국, 혹은 가까운 일본과 비교해도 한국에서는 공항을 둘러싼 중앙부처의 전횡 가능성이 여전히 큰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를 악용해 원천적으로 잘못된 공항 증설이나 활주로 방향 설정이 이뤄지는 등 단추를 '처음부터' '고의로' 잘못 끼우는 경우까지 방치할 정도는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해당 지역주민들과 지방자치단체가 어떻게 유기적으로, 의지를 갖고 일단 단계적이고 복잡한 방식의 싸움에 대처하는가가 관건인데 이번만큼은 부산시가 주민 보호를 위해 충분히 중앙부처와 맞설 '의지'를 보일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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