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형의 M&M] 되로 주고 말로 받을 '가족'

2018-05-31 19:21:40

- 숨(Ergo Sum)의 분노, 페이시스(Faces)

[프라임경제] 영웅과 사랑, 서민의 노래(귀족 풍자), 예술과 대중의 조화…. 11세기부터 이어진 프랑스 대중음악 '샹송'의 변천사입니다. 우리나라의 전통민요 '아리랑'도 다양한 지역특색은 물론, 한국 근세와 근대의 민족사, 사회상까지 반영하고 있죠. 이처럼 음악은 시대상을 반영하거나 때로는 표현의 자유와 사회 비판적 목소리를 투영하기 위한 도구로도 쓰입니다. 'Music & MacGuffin(뮤직 앤 맥거핀)'에서는 음악 안에 숨은 메타포(metaphor)와 그 속에 녹은 최근 경제 및 사회 이슈를 읊조립니다.

'인간이 행하는 선악의 행위에는 반드시 그 과보가 있다' 앞서 행동했던 선한 행위에는 낙과(樂果)를 받고, 악한 행위에는 고과(苦果)를 받는다는 사상을 설명하는 인과응보(因果應報)는 애석하게도 선행보다는 그릇된 행위를 저지른 대가로 받는 악행에 주로 따라 붙습니다. 

이 간단한 덕목의 사자성어는 초등학생도 알만큼 너무나 보편적이지만, 현실사회에서는 이뤄지지 않는 모습이 더러 보입니다. '나쁜 짓을 하면 안 된다'는 기본적인 도덕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텐데 말이죠. 그런데 왜 이 간단한 것이 지켜지지 않는 것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대표적으로는 권리관계에서 우위에 있는 사람이 열위에 있는 사람에게 부당한 요구를 강요할 때 발생하는데요. 이런 사람들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잣대가 이치가 아닌 권력의 우열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것을 흔히 갑질이라고 말하죠.

스물 세 번째 「M&M」에서 선곡할 노래는 프로그레시브 록 밴드 에르고 숨(Ergo Sum)의 분노, 페이시스(Faces)입니다.

내 앞에서 웃는 그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 곳을 모두 불태워 버리고 싶어. 나는 도움사랑필요하다고 말하고 싶었는데 그들은 내 얼굴에 소금을 뿌리고 나를 장난감처럼 데리고 놀았지.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어.

재즈풍의 부드러운 밴드 사운드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소울 짙은 보컬까지 더해지면서 흔한 마초적 사랑노래일 것 같지만, 가사를 들어보면 꽤나 살벌합니다. 

곡 중 화자는 누군가에게 동정과 연민을 구했지만, 매몰찬 거절도 모자라 모욕까지 당한 듯 보입니다. 소금이 뿌려진 얼굴에는 분노만 남아있네요. 

모욕도 모자라 자신을 조롱하는 그들의 모습에 불을 지르고 싶다며 분노를 표출하지만, 화자는 그들에게 실수했다는 듯 그저 나지막한 경고만을 건넵니다. 

내 가죽을 벗기고 내 머리를 자르기 전에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힘든 대가를 치를 거야. 내 몸과 마음은 충격 받고 아직도 머리는 돌에 맞은 듯 몽롱해. 그들은 곧 몰락할 거야. 왜냐하면 내가 그들 때문에 머리를 조아리고 사지로 내몰렸다는 걸 그들은 기억하고 싶지 않으니까 말이야. 나를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지. 하지만 그들이 모르는 게 있어. 

화자는 자신에게 모욕과 조롱을 저지른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무엇' 때문에 대가를 치를 것이고 결국, 그들은 몰락할 것이라고 장담하는데요. 화자가 말하는 '그들이 모르는 것'은 '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입니다. 

화자가 이 사실을 최후의 무기로 삼은 이유는 간단합니다. 그 일을 기억하기 싫어한다는 것은 강자(甲)인 그들이 약자(乙)인 화자를 모욕하고 조롱했다는 얘기가 밖으로 새나가는 것을 껄끄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실이 사회적인 문제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겠죠.

하지만 그 사실을 화자는 알고 있습니다. 화자는 그들에게 수모를 당한 당사자이니까요. 그들이 모르는 또 한 가지는 그들이 기억하고 싶지 않은 사실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실을 당사자인 우리는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노래처럼 지위와 권력으로 인간의 자존감을 짓밟은 사건은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났습니다. 이 사건이 알려진 이후로 땅콩과 물컵만 봐도 화가 치밀어 오르는 사람들도 생겼는데요. 

'땅콩회항'과 '물컵갑질'로 불거진 한진그룹 오너 일가의 만행 때문입니다. 파문은 일파만파 커진 상태인데요. 현재 한진그룹에 대한 비난 여론은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으며 대한항공의 갑질, 비리를 제보 받는 채팅방까지 개설되면서 갑질제보도 잇따르는 상황입니다. 

▲'물벼락 갑질'로 물의를 일으킨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35)가 지난 1일 오전 서울 강서경찰서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뉴스1


논란의 발단은 지난 3월 한진일가의 막내인 조현민 대한항공 여객마케팅 전무가 광고대행사와 회의 중에서 자신의 질문에 즉답을 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광고대행사 직원에게 물이 든 컵을 던진 것에서 시작됐습니다. 

논란이 커지자 조 전무는 자신의 SNS에 사과를 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휴가갑니다' '#나를찾지마' 등 해시태그와 함께 기내에서 찍은 사진을 올려 비난의 폭만 키웠죠. 

조 전무의 갑질 논란을 둘러싼 국민의 분노는 사그들지 않고 계속 확산되는 이유는 한진일가의 만행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4년 전 장녀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기내 땅콩제공 서비스를 문제 삼아 이륙 중이던 여객기의 항로를 임의로 변경해 정상운항을 방해하고, 당시 박창진 사무장과 승무원을 폭행한 혐의로 지난 2015년 1월 구속기소 된 바 있습니다. 

그는 기분이 나쁘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부하 직원들을 무릎부터 꿇리고 고압적인 자세로 훈계하는 인물로도 유명합니다. 

둘째인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은 지난 2005년, 29세의 나이에 승용차를 운전하다 시비가 붙어 70대 노인을 폭행해 입건된 전력이 있습니다. 당시 조 부사장이 밀친 70대 노인은 당시 아기를 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죠.

또 2012년 인하대를 방문한 자리에서는 학교 운영과 관련된 정보 공개를 요청하는 시민단체 회원들에게 '내가 조원태다. 어쩔래 xx끼야'라고 욕설을 내뱉은 전력도 있다고 전해집니다. 

▲갑질 폭행 의혹을 받고 있는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부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이 30일 저녁 두 번째 경찰 조사를 마친뒤 서울지방경찰청을 나서고 있다. ⓒ 뉴스1


경쟁하듯 사고를 치는 삼남매의 가정교육 수준이 궁금해지지 않는 이유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아내이자 삼남매의 엄마인 이명희 일우재단 이사장도 자식들에게 질세라 갑질 만행을 뽐냈기 때문인데요. 

이명희 이사장은 인천 하얏트 호텔 공사현장에서 조경 설계업자에게 폭행을 가하고 공사 자재를 발로 차 업무를 방해한 혐의, 평창동 리모델링 공사현장 작업자에게 소리를 지르고 손찌검을 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이 이사장은 평창동 자택에서 출입문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비원에게 전지가위를 던지고, 구기동 도로에서 차에 물건을 싣지 않았다며 운전기사를 발로 차 다치게 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경찰은 이 이사장이 2011년 8월부터 올해 3월까지 피해자 11명에게 24차례에 걸쳐 폭언을 퍼붓거나 손찌검해 다치게 했다고 판단했는데요. 이에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이명희 이사장에 대해 특수폭행, 상습폭행, 상해 등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해 놓은 상태라 처벌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처벌을 원치 않으면 그 의사에 반해 처벌(기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에 해당하는 폭행 혐의와 달리 특수상해·상해·특수폭행·상습폭행 혐의는 피해자와 합의했다고 하더라도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지난 28일과 30일 두 차례 경찰에 출석해 각각 15시간, 11시간씩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은 자리에서 그는 언론에 공개된 일부 혐의만 인정하고 나머지 혐의는 대부분 부인했다고 전해졌습니다. 죄의식도 없이 사회적 약자에게 상습적으로 폭행과 모욕·상해를 가했음에도 말이죠.

▲대한항공의 사명 변경을 요청한 청와대 국민 청원의 참여자가 13만명을 넘어섰다. ⓒ 청와대 홈페이지


수사상황에 따라 한진 일가에 처벌 여부는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이번 논란으로 한진그룹의 경영에는 치명타를 입은 듯 보여지는데요. 

지난 달 한때 대한항공의 주가는 6.5% 폭락했고, 계열사인 진에어도 4%가 떨어지는 등 하룻 밤 새 시가총액 기준 2500억원이 날아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는 모두 대한항공 일가가 저지른 오너 리스크 때문이라는 분석도 뒤따랐죠. 

현재 한진 일가의 갑질 파문은 청와대 국민청원 사이트에 오르며 대한항공의 사명(社名)을 바꿔달라는 요구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처벌이 어찌됐든 한진일가에 대한 이번 국민들의 공분은 쉽사리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란 대목인데요.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말은 에르고 숨이 노래한 분노처럼 사회적 약자에게 저지른 한진일가의 갑질 만행은 오랫동안 힘든 대가를 치를 것입니다. 아, 그것이 몰락일 수도 있겠네요. 



이윤형 기자 lyh@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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