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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듣는 귓맛'이 다르죠…독랄한 영도구청장 선거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6.10 14:28:40

[프라임경제] 벌써 나온 지 퍽 오래된 소설이긴 한데, 몽양 여운형 등 광복 이후부터 정부 수립 전까지의 해방 정국(미군정기)의 정치적 암투와 이합집산 뒷야이기를 소재로 한 '적과 동지'라는 작품이 있었다. 6권이 넘는 긴 분량이니, 지금 같으면 초고 단계부터 아예 출판 재검토 대상이었을 테고, 그러니 새삼 다시 복간본이 나올 리도 없다.

'건준' 등 다양한 역사적 개념들을 다루는데, 많은 사람들이 정치적 신념과 경제적 수지타산 때문에 대결하고 합치고 배신하는 이야기다. 당연히 대단한 호평도 당시 얻었는데, 고 송건호 전 한겨레신문 사장 같은 이나 최장집 교수 같은 정치학자 등도 정치 교재이자 인간학 독본으로 손색이 없다는 등 상찬을 한 바 있다.

보기에 따라서는 책 전체가 젊은 여운형의 비서, 홍모씨의 성장기이기도 하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비서가 일제 패망 직후, 막판에 재한 일본인의 안전 보장 등을 흥정하려는 일제 총독부의 행태를 중간에서 겪는 대목이 있다.

당시 총독부 조직 아래 보관 중인, 당시 돈으로 2억원(수천억원) 정도의 쌀을 건준에 넘길 테니, 여운형 영도 하에 전국적인 식량난 등을 잠재우는 밑천으로 삼고 대신 정책적으로 패전국 일본에 다소 우호적으로 협력해 달라는 제의가 들어온 것.

하지만 막상 쌀을 공익 목적으로 건준이 받을 계획이라는 게 아니고, 루머는 여운형 개인이 돈을 받는다는 것이었으니, 건준이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이었다는 내용이다.  

이 홍 비서는 또한 일본인협회로부터 안전 문제 흥정용으로 일정 규모 액수의 보관증(은행 보증도 어음 정도일까?)을 받아다 전달하는 역할도 하게 된다. 윗 사례와 마찬가지로 받은 뒤 불과 얼마 후, 일제 행정조직이 펼친 언론 플레이로 여운형 진영에서 액수가 대단히 부풀려진 돈을 받았다는 게 기정사실처럼 돼 버린다.

그때 여운형 등 주변의 인물들이 곤혹스러워 하는 상황에 여러 다른 인사들이 건네는 충고의 이야기가 "쌀을 받았다는 것과 돈을 받았다는 건 듣는 귓맛이 다르거든"이라는 표현이다.   

13일 지방선거가 목전에 다가왔다. 어느 지역이나 뜨겁지 않은 데가 없으나, 특히 부산은 자유한국당 계열 정당이 지방자치제 도입 이래 대대로 독점하다시피 모든 걸 장악해 왔다. 어느 더불어민주당 소속 출마자는 상대 후보에게 "당신은 재선 도전이 아니고, (그 뒤에 버틴 당을 생각하면) 7선 도전 아니냐?"라고 쓴소리를 할 정도다.

그런 중에 영도구청장 자리를 둘러싼 싸움이 치열하다. 정책 대결이 그렇게 불꽃 튄다면 얼마든 지금의 용광로 같은 갈등의 뜨거움을 참아줄 법도 하건만, 이 선거의 대결은 2000년대 초반 주고 받은 '식용유 선물'에서 비롯됐으니 이전투구 그 자체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해 보인다.

글쎄, 지금 그 세트가 얼마에 해당할지 시가는 잘 모르겠다. 보통 명절에 부담없이 주는 정도가 기름 두 병짜리이니 비싼 건 아닐 것이다. 준 것은 잘못했다고 민주당 출마자도 인정한다.

그런데 지금 기름이 아니라, 돈봉투를 건넸다고 이야기가 나온다니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오래 전 읽은 '적과 동지' 속 저 표현이 생각났다.

벌금도 90만원으로 죄질이 그렇게 나쁜지 아리송한 사안이었다. 당선무효형을 주지 않을 테니 알아서 자중하고 앞으로 개선하라는 법원의 메시지가 깔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런 이야기를 지금 15년 이상 흐른 이 때에 소환하는, 그것도 '귓맛이 좀 다른 형태로 설파하는 건' 정녕 온당한 일일까?

정치공학적 교전이 아닌, 정책과 소신으로 승부를 거는 정객들의 격투를 보고 싶다. 영도구청장 선거의 기름과 돈봉투 사이의 표현 간격은 그런 점에서 정말이지 독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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