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임경제] 감귤 농사를 짓던 집안은 가난했다. 아이가 발가락을 다쳤는데 먼 병원에 데려갈 돈도, 시간도 부족했다. 결국 발가락 둘이 끝내 기형처럼 붙었다. 그 아이는 크면서 제법 공부를 잘 했고, '학력고사 수석, 이번엔 제주도에서 탄생' 뉴스를 만들어 내며 섬을 떠났다. 서울에 있는 학교에 원서를 내기 위해서였다. 이후에도 서울대 법대 수석 입학, 사법시험 수석 합격 등 소식을 고향으로 만들어 보냈다.
하지만 IMF 환란을 지켜보며 본인의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1998년 8월 검사직을 그만두고 변호사 개업한다. 그리고 1999년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쪽에서 정치를 함께 하자는 제안이 있었고 그때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보수를 이루겠다"고 천명하면서 한나라당에 입당, 본격적인 정치인의 길을 가게 된다.
원희룡의 이야기다.
그런 그가 6.13 지방선거에서 제주특별자치도의 수장으로 다시금 선택됐다. 이미 도지사로서 직무를 열심히 하고 있던 중에 재선 소식이라 감격이 약간 덜 하지 않겠느냐는 풀이도 있으나, 결코 그렇지 않다. 문대림씨 등 쟁쟁한 여러 당 후보를 물리치고, 그야말로 필마단기 무소속으로 이뤄낸 '오로지 혼자의 힘, 오로지 도민들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이번 지선을 앞두고 바른미래당을 탈당할 때 당에서는 무척 아쉬워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유승민 공동대표 등에게 힘을 실어줄 가장 강력한 선봉장 감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결국 지금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이 보수 결집에 서로 실패하고 있는 양분 와중에서 자기가 설 자리가 없다고 생각하고, 일단 고향 일에 매진하기로 하고 무소속 선거전을 결행했다.
그런 와중에 가난에 늘 시달리면서 밖으로 돌던 변방의 사나이가 일궈낸 이번 도백 당선증은 보수 전반에 관심 대상이다. 그러면서 자한당 고참 당원들은 오래 전 그의 모습과 기억을 소환한다.
신선한 인물, 보수파 정당에 입당하고서도 늘 입바른 소리 혹은 불편한 말을 하면서 당 개혁의 아이콘이 될 것이라고 기대를 모았던 '앙팡 테리블'이 그때엔 무척이나 불편했으나, 이제 행정가로 또 정치인으로 성큼 훌륭하게 자란 상황에 그런 불편한 과거의 부분은 큰 문제가 아니다.
이제 본인은 열심히 재선 임기를 수행하려 하겠으나, 육지는 다시금 섬에 그를 보내달라고 아우성을 칠 태세다. 실종된 왕자를 구해 오라는 임무를 받고 홀로 적진에 뛰어든 조자룡의 신화를 오늘날 보수 정치권에서 쓸 인물은 당신 뿐이라는 다급한 타전이 곧 쏟아질 텐데, 과연 그는 무념무상 도지사실을 지킬 것인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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