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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우려 속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 초읽기

근로자-기업 간 온도차 극명…시행 초기 혼란 우려

조규희 기자 | ckh@newsprime.co.kr | 2018.06.15 14:22:35
[프라임경제]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개정 근로기준법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행복한 변화의 시작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1주를 7일'로 명시함에 따라 휴일근로가 12시간의 연장근로에 포함됐다. 이로써 1주에 법정근로시간 40시간과 휴일근로를 포함한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한 52시간까지만 근무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가 명확해졌다.

7월1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을 시작으로 기업 규모에 따라 △50인 이상 300인 미만 사업장은 2020년 1월1일부터 △5인 이상 50인 미만 사업장은 2021년 7월1일부터 적용이 예정됐다.

중소‧중견기업의 충격 최소화를 위해 법 적용 시점에 차등을 뒀다. 또한 30인 미만 사업장에 한해 2022년 12월31일까지 한시적으로 특별연장근로 8시간이 추가 허용된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에는 '주 52시간 근무' 외에도 △휴일 연장 근로 시 200% 임금 지급 △근로시간 특례 업종 26개에서 5개로 대폭 축소 △근로 특례 업종의 11시간 연속 휴식 보장 △관공서의 공휴일 규정 민간에 적용 △연소근로자 보호 강화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난 3월5일 문재인 대통령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노동시간 단축으로 국민 삶이 달라지게 됐다"며 개정 근로기준법에 큰 기대감을 드러낸 바 있다. 

문 대통령의 기대처럼 최근 핫이슈로 부상하고 있는 '워라밸'과 '근로환경 선진화' 관점에선 근로기준법 개정이 환영받을 일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최대 16시간에 달하는 근로시간이 금지돼 당분간 혼란이 예상될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은 근로시간 단축을 앞둔 372개사를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55.4%가 '경영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답했다고 밝혔다.

비단 기업뿐만이 아니라 직장인도 기대와 걱정을 함께 하고 있는 상황이다. 잡코리아가 근로시간 단축 대상 직장인 90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76.7%가 '보통' 혹은 '기대된다'는 긍정의 반응을 보였으나, '걱정된다'는 대답도 55.2%에 달했다.

직장인들은 근로시간 단축으로 '업무강도 상승', '반강제적 야근과 근로 수당 외면', '직원 충원 미비' 등을 우려하며 성공적 법안 정착을 위해서는 혼란 최소화를 위한 노사 간 대화와 부족 인력 채용이 '필수'라고 답했다.

◆'1주=7일', 기준 명시…1주 최대 근로시간 52시간 한정 명분 마련

근로기준법 개정의 가장 큰 의미는 1주를 7일로 명확히 했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제50조(근로시간) 1항에는 '1주 간의 근로시간은 휴게시간을 제외하고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다'고 규정돼 있다. 얼핏 논란의 소지가 없어 보이는 문구지만 '1주의 기준'을 근로일인 평일 5일로 볼 것인지 휴일을 포함한 7일로 볼 것인지를 두고 해석이 제각각이었다.

1주를 5일로 볼 경우 평일에 법정 근로시간 40시간과 12시간의 연장근로가 가능하고, 휴일에는 하루당 8시간씩 최대 16시간 근로할 수 있다. 연장근로와 휴일근로를 개별적으로 인식해 7일 최대 68시간의 노동이 가능하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본 해석에 따라 기업들은 60시간 혹은 68시간 노동 기준에 맞춰 직원을 채용해왔다. 비용을 줄여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3명을 채용해 법정 근로시간만 근무시키는 것보다 추가 수당을 주더라도 2명을 채용하는 편이 효율적 선택이었다. 그 결과, 직장인은 비자발적 '워크홀릭'이 될 것을 강요받아 왔다.

2016년 통계 기준으로 OECD 회원 35개국 중 한국(2052시간)보다 근로시간이 긴 국가는 멕시코(2348시간)가 유일했다. OECD 평균 근로시간이 1707시간이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한국인은 평균 대비 20% 이상 노동에 시달려온 셈이다.

OECD 주요국 연간 노동시간 비교(2016년 기준). ⓒ고용노동부



근로시간 단축의 명분이 확실하고, 선의의 정책이라는 면은 누구나 공감한다. 그러나 법 시행을 앞두고 우려의 목소리는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1주 근로시간이 52시간으로 제한되면서 기업은 근로자 일인당 8~16시간에 달하는 업무 공백이 불가피하다. 기업이 인력을 충원하거나 총 업무량을 줄이는 방안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지만 기업의 인력 충원 의지는 미지수다. 

오히려 신규 채용보다는 조직 효율 향상을 위한 구조조정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상황이 여기저기서 목격되고 있다. '사람인'이 559개 기업에 설문조사한 결과 '신규 채용을 할 것'이라는 응답은 26.3%에 그쳤다. 

중소기업도 상황은 비슷하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 '신규 인력 충원을 고려한다'는 응답은 25.3%에 불과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500개 업체를 대상으로 진행한 '근로시간 단축 관련 중소기업 의견조사' 결과를 토대로 "평균적으로 현재 대비 20.3%의 생산 차질이 예상되며 근로자 임금은 247만1000원에서 평균 220만원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경제연구원 조사 결과 '근로시간 단축이 영업이익 등 전반적 경영 실적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하는 기업이 55.4%에 달했고, 축소된 임금에 대한 노조의 보전 요구와 생산성 향상 과정에서 노사 간 의견 충돌, 인력 추가고용에 따른 인건비 부담 등이 발생할 것이라는 부정적 의견도 다수 있었다.

◆고용노동부 가이드라인 제시…"현실 반영 못해" 비난 봇물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근로자의 삶의 질이 향상될 것이며, 청년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누누이 강조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사용자는 물론 근로자조차 개정안이 근로 환경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 목소리를 내고 있으며, 시행 초기 노사 갈등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과 노동자 간 팽팽한 갑론을박이 오가는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지난 11일 노동시간에 대한 판단기준을 포함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중재에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근로시간 해당 여부 판단 기준 및 사례' 자료를 통해 노동시간을 '근로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명시적인 것뿐 아니라 묵시적인 것을 포함) 아래 종속된 시간'으로 정의했다.

더불어 관련법과 판례를 들어 대기, 교육, 출장, 접대, 회식 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노동부의 판단 기준에 따르면 △출장은 노동시간으로 간주하며 △해외출장 시 비행, 출입국 수속, 이동 등에 걸리는 시간 기준은 노사가 합의해야 하며 △근로시간 외 접대의 경우 사용자의 지시나 승인이 있을 경우 노동시간으로 인정할 수 있다. 

또 △사용자가 의무적으로 실시하는 각종 교육은 근로시간으로 포함 가능하지만 이수 권고 수준의 교육은 노동시간으로 보기 어려우며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 있는 워크숍은 노동시간이며, 근로시간을 초과하는 회의는 연장근로로 인정할 수 있지만 친목 도모 시간은 노동시간으로 보기 어렵고 △구성원의 사기 진작, 조직 결속, 친목 도모 차원의 회식 역시 노동시간으로 인정이 어렵다는 의견을 밝혔다.

직장인 A씨는 "회사가 흡연, 커피 등 환기의 시간은 물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제한한다"라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얻게 될 효익보다 불이익이 많을까 우려된다"고 걱정했다. 

B씨는 "상사의 눈치를 보고 사는 게 직장인"이라고 단서를 달고 "상사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 감독을 받는 기분인데, 회식과 워크숍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단이 직장인의 상식으로 이해가 힘들다"라며 아쉬워했다.

직장인 C씨는 "촌각을 다투는 급한 업무가 발생할 경우 업무를 처리할 수밖에 없는데 근로시간 단축으로 근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사례가 생길 수 있다"고 우려했다.

기업 관계자 D씨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시점이 너무 늦은 감이 있다"며 아쉬움을 드러내며 "특히 가이드라인에 제시된 판단기준이 현장과 다소의 간극이 있으며, 모호한 해석이 많아 향후 논란의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 E는 "가이드라인이 지극히 근로자 친화적"이라며 "급격한 정책 변화로 충격을 완화해야 하는 시점에 오히려 더 혼란만 가중한다"라며 비판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지 3달이나 지났다. 법 시행을 앞둔 현재 정부, 재계, 노동계의 논의가 부족했던 정황이 여기저기서 목격된다. 특히 고용노동부가 정책 시행이 한 달도 안 남은 시점에서 부랴부랴 발표한 '가이드라인'으로 논란이 심화되는 분위기다. 

고용노동부는 노동시간 단축으로 '워라밸'을 이룰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물론 고용노동부도 새로운 정책 시행을 앞두고 기업의 신규채용 시 임금보전 지원 강화를 밝히는 등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1~2년간 증가노동자 1명당 월 40~80만원을 지원하고, 사업주가 임금감소액을 보전할 경우 기존 재직자 1인당 월 10~40만원을 지원할 방침을 밝혔다. 

이밖에도 청년추가고용장려금, 시간선택제 신규고용 지원, 신중년 적합직무 고용지원, 청년고용증대세제 등의 고용창출 지원금 사업을 확대해 고용 창출을 유도할 계획이다. 단, 고용에 국한된 정책 일색이라는 점은 다소 아쉬운 대목이다.

개정 취지인 '일과 가정의 양립', '노동자의 저녁이 있는 삶'에 근로자가 보다 빨리 다가갈 수 있도록 정부와 업계의 이해와 노력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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