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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의회주의 ②] '조국 전횡' 깨는 힘과 능력 '300'

문재인 아이디어는 속출, 다시 공은 여의도로? 법안 처리권 이상의 역할과 비중 분명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6.25 14:41:12

[프라임경제] "사적 친분이 없지만 뜻이 같으면 동지(同志)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친분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친소관계가 아니라 뜻을 함께 하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김부선 논란' 성명서에서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여와 야를 떠난 국정 협의,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도 동지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다. 공론화의 장, 의회의 몫은 어디에 있나?

이번 지방선거 그리고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는 철저히 여당의 승리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국회 구성 역시 여당에 유리하게 재조정됐다. 하지만 특정 정당의 승리, 다른 정당의 궤멸로 단순히 볼 것인지에 대해 본질적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5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자리에서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도가 2주 동안 상승을 했다가 이번 주에는 조정 국면으로 접어든 것 같다. 75.4%로 지난주 대비 0.5%포인트 빠졌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그는 "지난 주 더불어민주당이 57%로 창당 이래 최고치를 찍었는데, 금주에 (민주당) 지지율이 54.1%로 지난주 대비 2.9%포인트 빠졌다. 자유한국당도 0.9%포인트 내린 16.7%로 지방선거 이후에 계속 내림세를 보이고 있다. 정의당은 8%로 1.1%포인트 올랐는데 지금 4주째 3위를 기록하고 있다"고 짚었다.

이념적 정체성이 불명확해 6.13 지선에서 철저히 외면당한 바른미래당의 지속적 부진은 차치하고, 일단 주요 정당들에 대한 명확한 호·불호 상황을 시민들은 지선이라는 치열한 전투 이후 거둬들이는 양상이다. 오히려 대안 정당 정의당이 그대로 굳히기를 하며 달팽이 걸음이나마 세를 불리는 양상이다.

민주당의 꺾임 상황은 청와대에 대한 국민들의 애정이 식는 점과 맞물려 더 의미심장하다. 한반도 평화 이슈 단일 아이템만으로는 경제 실정을 모두 가릴 수 없고, 각종 현안을 모두 청와대에서 만기친람형으로 주도해 달라고 요구해서 될 일도 아니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읽을 수 있기 때문. 단순한 정치냉소주의와도 다르고 보수파의 패배 이후 충격과 침잠 현상만으로 보기도 어렵다는 점에서 이런 상황은 의미심장하다.

조국 내세운 드리블 실패, 결국 입법부 무시 어렵다 靑도 판단?

최근 수사권 조정과 관련,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었음을 눈치챈 이들도 적지 않을 것이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이 국면에서 다시금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지난 번 개헌 추진안 설명 국면에서 전면에 나섰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이 할 일을 일개 수석이 설친다는 지적까지 받았던 상황을 의식, 이번에는 이낙연 국무총리가 주도하기는 했다. 하지만 결국 실세에 대한 주목도가 높은 만큼 조 수석에 대한 언론 주목이 강했다.  

민정수석실은 주요 공직자 후보 검증 실패 등으로 비판 도마에 올랐다. 결국 앞으로 개헌이나 수사권 조정 등 큰 건에서 조국 단독 드리블로 처리하지 않겠다는 청와대 고위층 판단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행사 중간에 현안을 고심하는 듯한 조국 민정수석. ⓒ 프라임경제

하지만 '비고시 출신 실세'의 헌법이나 수사권 관련 개입은 여기까지가 끝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 조정안 발표에 앞서, 검찰과 경찰 수장 등을 불러들여 오찬을 하고 대화 내용의 대략을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경찰에 "자치경찰제를 받아라. 다만 그 시기는 국회의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정부는 입법 추진을 할 권한이 현재 법체계상 주어져 있고, 여권에서도 검찰 수사 관리감독권의 힘을 빼 경찰에 사실상의 힘을 대부분 넘기는 구상을 밀어붙일 수 있다. 그럼에도 청와대는 굳이 총리나 수석이 나서서 조정안 서명식 등 공식 국면에서 발언을 하기 전, 오찬 관련 사실 공개를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하는 식을 택했다.

당연히 이 제스처는 청와대는 법안 입법 처리에 개입하고 싶지 않다는 신호를 여의도 정가에 보낸 것이라는 풀이가 나온다. 이는 편리만을 추구하는 발상이라고 비판받아 마땅한 구석이 있다. 다만 그럼에도, 여권의 힘으로만 이를 밀어붙일 전투력이 실제로 원구성 상황에서나 협상력에서나 부족해 정상적 입법 조율을 해야 한다고 가닥을 잡은 점은 수확이라는 평이 나온다.

개헌 추진조차 정당성 강조만으로 국회 전반과 대결하듯 시도했던 청와대로서는 장족의 발전이라는 것. 여기에 과거 나왔던 금태섭 의원의 쓴소리, 즉 "중국 공안과 검사 시스템을 배워 오자는 것이냐? 중국이 사법 선진국은 아니지 않느냐?"는 공격에 박 법무부 장관이 쩔쩔 맸던 점에서 '의원들의 전투력과 정보력, 저력'을 청와대 등에서 깨달았다는 설도 나돈다.

현행 형사법체계상 검사는 수사‧공소‧공판 및 재판의 집행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단계의 형사절차에 관여한다. 영장청구권은 검사에게만 인정되고 사법경찰관의 모든 수사에 관하여 지휘하는데, 자칫 잘못 칼질을 해서 경찰권을 키웠다 후폭풍을 감당키 어렵다는 것. 인사 검증조차도 제몫을 못 해내는 민정라인이 이런 일의 주인공으로 자꾸 대두될 위험을 열어두느니, 차라리 더디 가더라도 확고히 입법 추진을 하도록 하자는 '대대적 역풍 예방론'이 선택된 셈이다.

마이크로데이터 막강…'노무현 실패 사례'도 재추진할 '힘'

국회의 힘, 그리고 의회주의를 책임지는 의원 300명들의 힘은 비단 특정 건에서 해외 입법 사례를 주르르 꿰고 해당 부처나 최고 권부에도 쓸소리를 할 수 있다는 점에 한정되지 않는다.

물론 일각에서는 우리 한국의 정당 정치와 의회 사정에 대해  입법 활동이 최우선이 돼야함에도 선후가 바뀌어 있다고 지적한다. 지역구가 1번, 정당이 2번, 입법은 그 다음에나 머물고 있다는 비판은 과거 권위주의 시절부터 여전히 반복돼 왔다.

하지만 다양한 입법 지원을 받으며 사회 현안에 대해 공들여 안건을 만들 능력, 필요에 따라서는 매번 쏟아지는 각종 데드라인에 맞춰 안건을 정리, 통과시킬 '초치기' 능력까지 갖춘 의회를 가진 나라를 지구상에서 또 찾기 어렵다는 점은 분명하다.

매번 불필요한 정쟁 논란으로 더 일이 커지는 감이 있기는 하나, 일단 정쟁이 필요할 땐 다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인 우리나라의 예산안을 시한에 간신히 맞춰 준비하고 통과시킬 수 있는 의회는 한국 국회 정도라는 것. 아울러 마이크로 데이터 활용이나 후분양제 이슈화 등의 뚝심 역시 여의도에서만 발휘되는 힘이다.

의원들의 의정 활동 자료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적인 정보 수집과 가공 등에서도 발군의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국회입법조사처가 최근 빅데이터와 마이크로데이터를 한 데 꿰어 융합력을 보여주는 역사적 정치 실험에 나섰다.

국회입법조사처 등은 의정 연구 작업 지원을 위해 마이크로데이터 협약을 맺었다. ⓒ 국회입법조사처

4월 국회입법조사처는 통계청 등과 협력해 이 같은 시스템의 기틀을 놓았다. 최근 빅데이터를 포함한 정보 및 데이터 수집·분석·평가의 필요성과 중요성이 증대하고 있으나, 국회 내외에 산적한 마이크로데이터(국가통계 원자료)를 잘 활용하지 않으면 이런 빅데이터 시대 준비라는 외침은 허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국회입법조사처는 마이크로데이터 제공과 이용을 총괄할 센터를 설치하고 나선 것.

의원들이 각 지역구와 관련기구, 지인들은 물론 상임위에서 대응하는 각 부처와 기업 등에 대해 파악하는 모든 마이크로데이터를 다시 재가공해 새로운 힘으로 융합해낼 길이 열린 셈이다. 앞으로 한국 의회의 정보력과 통찰력이 한결 깊어져 입법 활동 전반에 개입과 영향력을 키울 고속도로가 뚫린 것으로까지 볼 수 있다.

특정 스타 정치인 심지어 대통령도 해내지 못한 일을 우회적으로 의회 직무와 의원들의 노력으로 깨부순 일들도 이미 적지 않다.

일례로, 아파트 후분양제는 2004년 노무현 정부에서 최초로 시도했으나 건설사들의 강한 반발로 사실상 무산됐던 골칫거리 안건이었다. 이후 한동안 수면 아래로 침잠, 사실상 사장됐다는 한탄의 대상이 됐다. 하지만 후분양제 논의는 지난해 국회의 힘으로 되살아났다. 

매번 무능하고 일도 안 한다는 식으로 비판받지만, 세계적으로 국정감사와 국정조사를 모두 손에 쥐는 경우, 그것도 두 힘을 모두 의욕적으 로 기회가 닿을 때마다 쓰는 의회와 정치인들은 한국이 유일하다고 헌법학자들과 정치학 연구자들은 지적한다.

실제로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많이 지적당했던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 문제의 연구를 국토부 직원들에게 독려했던 것으로 전해졌고, 실제로 그 수확으로 드디어 이달 말경, 주택 후분양제 로드맵이 발표될 것으로 알려졌다. '노무현도 못한 것을 해내는 힘'이 300명 국회의원과 의회주의의 힘이라는 점은 대단히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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