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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의회주의 ⑤] '중진역할론' 아닌 '아이템전쟁' 초인 절실

아무 말이나 막 던지는 파상공세나 얄팍한 이합집산·이전투구 아닌 진짜 합종연횡 필요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6.27 12:16:10
[프라임경제] "사적 친분이 없지만 뜻이 같으면 동지(同志)다. 민주사회에서 정치는 친분이 아니라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친소관계가 아니라 뜻을 함께 하는 동지가 되어야 한다"고 이재명 경기도지사 당선자는 '김부선 논란' 성명서에서 이렇게 정의한 바 있다. 하지만 여와 야를 떠난 국정 협의, 심지어 같은 당 안에서도 동지를 찾기가 어려운 시대다. 공론화의 장, 의회의 몫은 어디에 있나?

1948년 5월31일, 우리나라 제헌국회가 업무를 시작한 이래 우리나라 국회는 많은 일을 감당해 왔다. 때로 발췌개헌 등 위협과 폭압에 못 견진 이상한 개헌 및 법률안 마련 작업에 들러리 역할을 하기도 했고, 제왕적 대통령이 국회 구성원 중 일부를 임명하다시피 하는 유정회 등 쓰라린 제도가 등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정치 문화는 크게 변화하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지난 6.13 지방선거 결과를 받아든 많은 정당이 승자든 패자든 각자의 고민을 시작하고 있는 점은 그야말로 '정치는 생물'임을 방증하는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중앙당 폐지 등 과격한 논의, 이론 아닌 현실로 편입

심각한 지방선거 후유증에 직면한 정당으로는 일단 바른미래당과 자유한국당을 들 수 있다. 제1야당이라는 자존심에 큰 생채기가 난 자한당은 수면 아래로 깊이 잠복하는 것 같았던 '친박 대 비박 갈등'까지 이번에 불거져 더 해결이 어려운 상황이다. 그야말로 비상대책이 절실한 상황.

하지만 의미있는 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될 토양이 기초적으로 마련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특히 안상수 의원(인천광역시장 역임)에게 비상전권을 주기 전, 김성태 임시대표가 '중앙당 조직의 해체' 등 전위적인 조치를 거론한 점이 관심을 모았다.

미국에서는 중앙당이 전국 조직을 보좌하는 연락사무소 정도의 기능만 맡는다는 게 정치학계의 분석이다. 거물 정치가 오래 뿌리내려온 우리는 중앙에서 지방을 콘트롤한다는 인식이 강하고, 특히 우리의 경우 지구당 제도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폐지된 이래 각 지역 조직의 활동이 상당히 위축된 전례가 있다.

이런 패턴은 작게는 JP 별세를 통한 완전한 3김 정치의 종식, 크게는 6.13 지방선거로 확인된 유권자들의 20여년 묵은 지방자치제도의 전면적 재구축(리모델링 내지 리빌딩) 필요 공감대를 등에 업고 수술해야 할 필요가 있다.

비록 여러 정당이 중앙당 조직을 실제 해체하는 등 노력을 단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대단히 의미있는 정치 문화의 기본적 담론, 중앙 대 지방의 분권적 정치 역할 분담 논의 등이 불붙게 됐다는 것.

여의도 정치 낯선 문재인의 집권,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도와 각종 정치와 정무 현안에 개입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비중과 역할 등에도 관심이 모아진다. 그는 청와대에서 각종 보직을 맡을 때나 첫 대선 출마 때까지만 해도 일명 여의도 정치에 대단히 낯설어 했고 거북함도 느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패턴은 장미대선 와중에는 대단히 개선됐지만, 이는 '수권의지'의 문제이지 정치에 대한 기본적 이해도 자체가 높아진 것으로 연결지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잔존해 왔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개헌 추진 등 여러 상황에서 국회의 힘을 경시하거나 일부러 낮잡아 보는 듯한 태도를 보였고, 이는 실제로 개헌 불발, 추경 확보 어려움의 반복 등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하지만 여의도 일각에서는-심지어 보수 정치권의 관계자들 일부조차-우리 정치 문화를 바꿀 수 있는 소중한 촉매로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독특한 입장과 성정을 주목한다.

여권에 지나친 부담을 주지 않고 일을 처리하고 싶은 패턴은 때로 무책임하다는 비판에 직면하는 게 사실이나, 여당을 전투부대쯤으로 여기는 권위주의 정치 패턴에 선을 그을 수 있는 확실한 방패가 돼 준다는 풀이도 가능하다. '드루킹 특검' 등에서 매번 대야권 공세의 화력이나 의지력이 부족하는 평을 받고, 알아서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내는 쪽으로 움직여주지 않는 '청개구리 추미애 체제'를 끝끝내 끌어안은 점이 그렇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이 입버릇처럼 "국회의 역할, 국회의 몫"이라고 강조한 것 중에 일부는 청와대의 책임 회피 비판이 쏟아졌지만, 나머지 일부는 새 정치 교과서를 쓰자는 의사, '노무현 2.0 정부' 실현을 위한 몸부림이라는 동정론과 의미 부여도 뒤따랐다.

이런 점에서 여러 정당은 새 정치 방향의 씨줄날줄을 어떻게 짜고 있는가? 우선 민주당은 '추미애 체제의 야당과의 연정 강력 거부' 상황에 직면해 있다. 하지만 홍영표 원내대표가 물밑에서 민주당 우호 전선 강화를 위해 더듬이를 움직이고 있다는 평도 뒤따른다.

바미당의 경우 당의 정체성 확보를 위해 우선 치열한 내부 전쟁이 불가피한 상황. 다만 안철수 전 서울시장 후보의 무책임한 미국행 등과 별개로, 이런 논쟁의 전개 방향과 수위가 긍정적인 쪽으로 진행되도록 역할을 할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는 점이 기대를 모은다.

천정배 의회주의 큰 그림, 거대 정당에서 훔쳐낼 각오는?

정의당과 민주평화당은 이미 교섭단체를 공동으로 운영하는 실험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시너지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아울러 이런 양당간 협력으로 확보된 자신감은 민평당 크기가 작은 정당이 위축되지 않고 목소리를 내는 자양분으로 실제 발휘되기 시작해 주목을 끈다. 

이번 하반기 원구성 논란 중에 기존에 여권에서 국회의장을 당연히 차지하는 등 관행에 브레이크를 걸고 나서는 등 민평당에서는 적극적 패턴을 보이고 있다. "우리도 후보를 내겠다"며 단순한 몫 찾기나 상임위원회 구성(위원장 배분)에서 이익 도모를 하려는 게 아니라 기존 문화의 변화 촉구를 톡톡하게 하기로 포지셔닝을 하고 있는 것.

문재인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도 천정배 민주평화당 의원 등은 계속 의회주의 기반의 딴죽 의견을 제시해 눈길을 끈다. 사진은 천 의원 집안 혼사에 하객으로 참석한 문 대통령(대선 당선 전). ⓒ 뉴스1

정동영 의원 등 민평당 일각에서는 '중진역할론'을 꺼내든다. 하지만 아이템을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려는 소수정당의 생존전략을 큰 틀에서 짜야지, 속된 말로 막 던지거나 이합집산에만 매몰될 위험이 있다는 비판이 정동영식 정치에는 제기된다. 기틀이 되는 의지와 핵심가치가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역할론을 제기하는 게 아니냐며 백안시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는 것.

이 일정한 한계를 보강할 대체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장미대선 이후 숨가쁜 흐름과 거대담론에 묻혀 잘 부각되지 않는 측면이 있으나, 이런 상황에서 천정배 민평당 의원 등 여러 정당 소속의 정치인들이 정략적 이해관계가 아닌 큰 구도에서의 의회주의 본령 강화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을 계속 제기하고 있다. 

개헌이나 통일 추진 국면에서의 국회 역할론을 주장한 일부 정치인들, 때로 문재인 정부의 높은 인기에 각을 세우면서도 제기된 이런 논의를 소중히 보관, 재창조해야 할 시기가 20대 하반기 국회여야 한다는 주문이 그래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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