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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컷] 풀 뽑는 공정위의 시선, 혹시 우선순위 혼동?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7.18 14:56:35

[프라임경제] 요즈음에는 농삿일에 기계를 많이 쓰기 때문에 반듯하게 줄을 맞춰 모를 심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단 이앙기를 활용해 줄지어 심어두면 사이사이 돌아다니며 관리하기도 편하고, 잘 자라서 가을에 수확을 할 때에도 역시 그 간격에 맞춰 기계로 거둬들이기도 편합니다.

= 임혜현 기자

자 이제 봄날에 줄 맞춰 심은 모가 무사히 자라 벼가 된 그 사이사이를 돌아다녀 봅시다. 뜨거운 햇살과 물, 그리고 종종 뿌려주는 비료를 먹으며 자라는 벼 사이로 다른 풀들이 자라기도 하는데요. 이걸 피라고 부르고, 그 일을 피를 뽑는다고 합니다.

피를 뽑겠다고 돌아다니다 보면, 가끔 저렇게 (사진 하단의 파란 선 부분 참조) 줄 밖으로 삐져 나온 벼가 눈에 띄기도 합니다. 그건 이앙기를 몰고 가다 잠깐 '삐끗'한다든지, 혹은 심고 남은 모를 아깝다는 생각에 빈 칸 곳곳에 손으로 심어넣어서 생긴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임혜현 기자

어떤 경우이든, 나중까지 잘 자라 거둬들이면 알곡이 되겠지만, 너무도 엉뚱한 자리에 자라고 있어서 사람이 약을 치거나 잡초를 뽑으러 다닐 때에 걸리적거린다면 뽑아야겠지요. 사실 반듯하게 줄을 잘 맞춰 자라고 있는 다른 벼의 영양을 뺏어먹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쭉정이의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다른 벼와 너무나도 가깝고 어중간한 자리에 서 있다면, 제 아무리 태생이 벼라 손치더라도, 잡초처럼 뽑히는 운명을 맞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정작 이 줄에서 벗어난 이 벼를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심하다 정작 원래 목적인 피를 뽑는 건 잊고 넘어갈 수 있다는 점입니다. 농활을 온 대학생 등 원래 논일을 잘 해 보지 않은 이라면, 심지어 줄 안쪽 구석에서 한껏 얌전히 머리를 숙이고 있는 피(사진 중앙부 빨간 선 참조)는 내버려 두고, 줄 그 자체에만 집착해 애매한 벼만 신나게 뽑고 돌아다닐 수도 있습니다.

= 임혜현 기자

지금 공정거래위원회의 행보를 놓고 말이 많습니다. 김상조 위원장이 12일 한 학술대회 축사에서 "대기업의 성장이 더 이상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배분되지 않고 있다. 경제적 강자가 자기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공정한 경쟁이 아닌, 경제적 약자를 향한 횡포를 통해 얻는 결실은 이제 더 이상 우리 사회에서 용납될 수 없다"고 비판의 날을 세웠는데요.

김 위원장이 재벌 문제에 비판적인 학자 출신이긴 해도, 지난해 6월 취임한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소상공인 간 불공정 경쟁 문제를 적당한 선에서 지적했다는 평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엔 대기업 행태를 싸잡아 비판했다는 평이 많습니다. 횡포 등 거친 단어로 대기업 일반을 몰아세웠다는 소리가 나오는데요.

공정위가 해야 할 일은 공정한 경쟁 자체를 불가능하게 하는 불온한 시도 그리고 그런 행각을 벌이는 기업들을 규제하는 데 주안점이 맞춰져야 하는 것이지 자본주의의 경쟁 자체를 '톤 다운'하는 데 있지는 않습니다.

삐져 나온 이 풀이 벼인지, 피인지 일단 가늠을 해서 전자라면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고민 결정을 해야 할 텐데, 줄을 맞추자는 '어떻게 보면 부수적인' 편의성과 룰에 매몰되어서 정작 요점은 놓치고 있는 게 아닐까요?

지금 대기업 일반이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건 작은 우려 사항(줄 밖에 선 벼)이고, 대기업집단 내부거래 93.7%가 수의계약이라든지 편의점업계가 불황에 '출점 제한'을 논의해 달라며 비명을 지른다든지 하는 현안은 정말 고심을 해서 방편을 짜내야 할 큰 문제점(피)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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