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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시연금보험 논란, '수용' 주장 배짱도 없이 '여론전'만?

'당국 약관심사 실패 후, 보험사 팔 비틀기' 주장…잘못 떠넘기려 감독기능 침해

임혜현·하영인 기자 | tea@·hyi@newsprime.co.kr | 2018.07.23 11:03:16

[프라임경제] 만기환급형 즉시연금보험 문제가 시끄럽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당국의 팔 비틀기'로 봐야 하는지, 원론적 재검토를 해야 할 필요가 제기된다.

23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 분쟁조정위원회가 보험업계에 즉시연금을 보험약관에 따라 지급하라고 지시한 가운데 보험사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오는 26일 삼성생명(032830)이 이사회를 열어 이 문제 대응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생명(088350)은 일단 당국의 요구에 반발하지 않는 선에서 현실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KDB생명도 약관의 법률적 검토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진다.

즉시연금은 보험에 가입할 때 보험료 전액을 일시에 납입하는 형식의 상품이다. 바로 그 다음달부터 매월 연금이 지급된다. 만기가 됐을 때 만기보험금을 지급하는 만기환급형과 일반 즉시연금형으로 크게 나뉜다.

최근 논란이 된 것은  만기환급형 상품이다. 대형보험사들은 이 상품을 블루오션으로 생각해 대대적 마케팅을 했고, 삼성생명이 주도하는 가운데 한화 등 일부에 편중되는 시장 구도가 형성됐다는 후문.

삼성이 내놓을 때만 해도 옥동자, 저금리의 덫에 걸려

그런데 보험금을 적게 지급한 게 아니냐는 소비자들의 불만이 발생했고 결국 분쟁으로 이어졌다. 소비자들의 민원과 정식 문제 접수가 이어지자 금융감독당국이 이를 면밀히 들여다 보게 됐고, 부족분에 대한 '일괄구제'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보험사들이 한꺼번에 거액을 물어줘야 할 처지에 놓인 것. 삼성생명만 4000억원대의 부담을 지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체적으로 최대 1조원에 달하는 큰 덩치의 폭탄이 보험권에 떨어진 셈이라 그렇잖아도 불경기를 통과 중인 보험업계에서는 '앓는 소리'가 나올 수밖에 없다.

원인은 다름아닌 '저금리 시대의 덫'이라는 평.

어떤 상품이나 그렇지만, 운용에 자금이 소요된다. 기본적인 이 비용을 모두 충당하고 회사에서도 이익을 일정 부분 남긴 뒤 보험금을 지급할 여력을 만들어야 하므로 자금운용은 대단히 중요하게 다뤄진다.

운용수익은 순보험료에 공시이율(운용자산이익률과 외부지표금리를 가중 평균해 산정)을 곱해 계산한다. 물론 이것도 모두 지급되는 게 아니다. 사업비가 공제된 만큼 만기에 돌려줄 원금 충당을 위해 일정액(만기 보험금 지급재원)을 뺀 다음에야 잔여액을 연금으로 지급하는 빠듯한 숫자싸움이 늘 이뤄지고 있는 것.

그런데 고금리 시절에는 상대적으로 운용이 쉬웠다. 주식시장에서 굴리든 안정적으로 은행에 넣어두든 큰 문제 없이 이익 추구와 보험금 지금여력 마련이 가능했다. 하지만 저금리 시대가 열리고 이것이 만성화되면서 허덕이게 되고, 자금운용의 기본틀에서 비용을 제하는 과정에서 점차 소비자가 얻어갈 이익분이 줄어드는 상황까지 닥쳤다.

이때서야 소비자는 가입한 금융상품 구조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의혹을 품게 되지만, 다툼 과정에서 보통은 보험사의 주장을 꺾는 게 쉬운 건 아니다.그런에도 당국이 이 건에 대해 일괄적으로 구제하라고 소비자들의 편을 들어준 데에는 이유가 있다.

약관에 연금 지급시 만기보험금 지급 재원을 공제한다는 내용이 없었던 점이 부각됐다. 보험금을 적게 지급하면서 분쟁이 발생했는데, 약관을 교부받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런 복잡한 과정을 미리 예견할 수 있는 아무런 단서를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물론 보험상품 전체의 사업구성에는 이런 계리적(회계적) 내용이 들어가 있다. 설계가 잘 되었든 못 되었든 이 같은 일을 하는 조직이 보험사 내부에 당연히 존재하기 때문. 단순히 상품 개발과정의 일환이라고 보기에는 적절치 않을 정도로, 보험계리사 영역은 대단히 특화돼 있는 꽃에 해당한다.

그럼에도 보험회사들은 이 같은 당국의 결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약관심사라는 무기를 꺼내드는 것이다.

당국에 약관을 미리 보내 심사를 받는데, 왜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이나 미비점을 애초에 잡아내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어폐가 있다. 금융감독원 등에서 약관을 심사하는 것도 사실이고 이를 토대로 한결 더 믿고 소비자들이 상품 가입을 할 수 있는 것도 맞는 이야기다.

다만 일본에서 대충 베껴오는 약관에 서로 표절을 거듭하면서 약관을 만들어 상품을 구성, 판매하는 보험업계 전반의 태도를 반성하기 전에 감독을 거쳤으니 문제점 예상의 의무와 예방 대책 등 활동에서 벗어난 게 아니냐고 항변하는 건 옳지 않다.

이는 일단 어떤 형식으로든 당국의 손길을 타고 나면 업계에서는 모두 '면책'된다는 논리를 펴는 셈이기 때문이라 어불성설이라는 평. 더욱이 보험권에서 내놓은 상품이 왜 은행 적금처럼 원금을 모두 보장해야 하느냐는 식으로 지금 여론 계도를 일부 업계 종사자들이 하는 것도 문제다.

약관 잘못 만들고도 큰 소리? '수용유사침해' 전개할까?

상품의 안정성을 매력포인트로 해서 대단히 재미를 본 뒤에 '불완전판매'가 된 구석이 있다면 책임을 지는 게 상도덕인데 그 점을 간과하고 업계 특성이나 자율성 등을 거론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 당국의 감독을 전면적으로 회피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수용유사적 침해' 등을 들어 보험계에서 당국의 행정조치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지 못할 것이면 이런 논리를 전개하며 라운드 밖에서 여론전을 하는 듯 보이는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는 주장도 뒤따른다.

위법해 보이는 조치이지만, 행정청에서 고의나 과실 없이 단행해 위법한 결과 문제를 만들어 냈을 때 전형적인 국가배상책임과 다른 수용유사책임이 성립한다고 한다(고의 및 과실이 존재해야 전통적인 배상 논리가 성립한다는 점과 다르다).

여기서 보면, 당국은 감독을 제대로 한다는 측면에서 보험권에 약관과 보험설계상 짊어지기 어려운 운용상 손실 부분을 자체적으로 떠맡도록 명령하고 있다. 불법의 고의나 과실은 없이 적법한 행위로 스스로 판단하고 있는 것. 하지만 지금 보험사들의 논리대로라면 이는 적정하지 않아 위법성을 따져야 한다.

보험사들은 그럼에도 왜 분쟁이 지속되고 감독을 당하면서도 이에 제대로 응해 지급을 단행하지도, 그렇다고 정면으로 법정공방전을 시도하지도 않고 있는 것일까?

독일에서는 2차 세계대전 패망 이후 주택이 모자라는 상황이 되자, 국가에서 임의로 여유 주택공간에 세입자를 배정하는 법을 만들고 집행한 바 있었다. 세입자를 이렇게 배정하면, 당연히 임차료를 제대로 내지 못하는 이가 생기는 등 부담을 건물주가 지게 되고 불만이 팽배해 결국 국가소송이 접수됐다.

당시 독일 법원은 이런 부담을 지우는 것은 (전후 복구 차원이라는 비상상황임에도) 재산권의 본질적 침해여서 문제라고 짚었고, 그런 점에서 집주인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수용유사침해가 인정된 첫 사례다.

하지만 이번 보험 건은 재산권의 본질적인 침해도 아니고, 어디까지나 적정한 감독이 재산권 일부를 침해하는 위법의 겉모습으로 보일 따름이라는 해석이 유력하다.

이런 불법성을 감수하는 게 재산권의 행사 한계에 들어간다는 점이 행여라도 재판 기록에 명시된다면, 앞으로 문제가 있는 보험을 파는 데 무척 부담이 걸릴 것이라는 우려를 보험업계에서는 안 할 수 없는 것.

따라서 현재 일부 언론에서 보험업계의 부담을 이유로 지급 결정 전반이 부당하다는 식으로 당국 문제점만 부각시키는 것은 어폐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심지어 삼성그룹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탄압이 거세고  삼성 측에서도 변화와 자정 노력을 하는데 너무하는 게 아니냐는 측면을 거론하는 점은 대단히 정교한 논리이긴 하나 그래 봐야 '물타기'에 다름아니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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