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ODA와 민간외교

2018-08-01 09:13:33

[프라임경제] 몇 년 전 베트남에서 근무할 때 닥락지방의 '부온마투옷 세계커피 대축제'에 참가하러 갔다가 우연히 코이카(KOICA)의 '부온호 현 공공상수도 건설 사업' 준공 기념식에 초청 받았다.

전날 나는 MBC Vietnam 직원과 함께 베트남국영 TV VTV와 리메이크 공동제작할 MBC의 한류드라마 '커피프린스' 현장답사차 한 커피농장을 방문했다.

그러나 당시 세계 제 2위의 커피생산국 베트남의 커피농장의 실상은 참혹했다. 생전 처음 본 커피나무의 꽃은 아름답고 향기는 강렬했지만, 기계장비 없이 엄청난 깊이의 우물을 파고 있는 농민들의 모습은 수심이 가득했다.

해발 800~1500m인 베트남 최대 커피생산지인 이곳에서 대부분의 농장은 천수답으로 커피를 재배하고 있었는데 가뭄이 들어 물을 구하기 위해 섭씨 35도가 넘는 날씨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었다.

물을 구하지 못하면 농사를 망치게 된다는 절박함이 그들의 곡괭이질, 삽질에서 고스란히 묻어 나왔다. 투박한 손, 이마에 깊게 패인 주름, 햇빛에 그슬릴 대로 그슬린 얼굴들, 마치 1960년대 하늘만 바라보고 천수답농사를 짓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 모습 그대로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예상치 못한 불청객을 따뜻하게 반겨주던 농촌인심도 내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농사를 짓던 외갓집, 작은집 친척들, 그 이웃들의 순박함 그대로였다. 그들이 낯선 방문객을 맞으려 새참을 내오고 베트남 막걸리로 취기가 오를 즈음 가장 연장자인 듯한 농민이 무심결에 말했다. 

"이 일대 커피농장이 원래 맹호부대 주둔지였다"고.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베트남전쟁 때 한국군 최정예 전투부대 맹호부대, 베트남(월맹) 병사들을 벌벌 떨게 했던 맹호부대의 캠프가 정녕 이곳이었단 말인가. 그 뒤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건성으로 듣고 황망히 인사를 하고 떠난 나는 호텔로 바로 돌아가 인터넷에서 자료를 검색해 보았다.

닥락지방의 수도 부온마톳과 인근 부온호 현은 북베트남의 전략물자 수송루트인 '호치민루트'의 중심 도시다. 휴전선인 북위 17도 선과 당시 남베트남의 수도 사이공의 대략 중간쯤에 위치한 전략적 요충지로 베트남전쟁 중 가장 치열한 전투가 벌어진 곳이며 따라서 가장 많은 사상자를 낸 격전지다.

나는 '부온호 현 공공상수도 건설 사업' 준공식에서 이런 사실을 떠올리며 우리나라가 ODA(Official Development Assistance: 공적개발원조)사업만큼은 참 잘하고 있구나 생각하며 감격했다. 왜냐하면 수많은 남과 북 베트남 병사들이 죽어간 이 곳이 커피농장으로 바뀌었고 천수답이었던 여기에 우리나라의 ODA자금으로 건설한 상수도시설이 곧 6만 농가에 물을 대게 된다는 역사의 아이러니는 감동이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다.

이제는 이곳 30만 농민이 하늘만 바라보지 않고도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시설을 한때 총부리를 겨누었던 우리나라가 건설했다는 사실.

그래서인지 내가 방문한 그 커피농장의 농민들은 모두 나에게 따뜻했다. 아마 그들의 부모, 형제, 친척 중에도 전쟁 중에 화를 입은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마치 가족을 맞아주듯이 반겨줬고 적의는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확신하건대 그들도 우리나라의 ODA 지원사업을 알고 비록 '과거에는 적이었지만 지금은 서로 돕는 친구'로 느껴서 일 것이다. 자칫 안 좋은 감정으로 남을 뻔한 베트남의 국민감정을 긍정적으로 바꾼 데는 한류드라마(Korean Wave)와 코이카(KOICA)를 비롯한 우리나라 여러 ODA 주체의 활약이 컸다. 

나는 여기서 '역사의 물줄기는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건설적 방향으로 바꿀 수 있다'는 큰 교훈을 얻는다. 

MBC 프로듀서, '전원일기' 등 연출 / 한국영상문화학회 부회장 / (전) 에미상 심사위원 / (전) MBC Vietnam 법인장 


최용원 프로듀서 press@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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