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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신안군 '몽니인사'…복수혈전 서막 아니길

 

나광운 기자 | nku@newsprime.co.kr | 2018.08.27 18:30:13

[프라임경제] 소련 독재자 스탈린은 권력을 잡고 '내 마음에 안 드는데 아직 모가지가 붙어있다니…'라는 말 한마디로 '공포정치'를 알렸고, 장기 지배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권좌에서 물러났을 때를 의식했다. 그래서 무리한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독재적인 측근정치 구축을 위해 잠재적 경쟁자와 반대파를 모조리 제거해 나갔다.

그가 뱉었던 것들 중에 '생각이 다르면 함께할 수 없다'는 말이 있다. 그는 이를 실행에 옮겼다. 생각이 다른 동족 500만명을 숙청시켜 버린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러시아인들이 뽑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인물 1위로 기억되기도 했다. 극단적 양면을 가진 독재자로 기록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 규모가 이에 견줄만 한 것은 아니겠지만, 신안군을 빗대 본다.

이 지역은 한때 인구 17만명을 넘어서면서 가능성의 땅으로 주목받기도 했다. 긴 역사와 정통성을 갖춘 보물 같은 곳으로 회자됐고, 크고 작은 많은 아름다운 섬들이 모인 '성국'으로 인근의 부러움을 샀다. 하지만 지금은 인구 5만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서지역에 머물고 있다. 

그렇다고 끈끈한 인심까지 줄어들지는 않았다. 섬사람 특유의 인정이 넘쳤다. 자긍심도 뒤지지 않았다. 대한민국을 이끈 걸출한 지도자를 키워낸 자랑스러움도 늘 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따뜻함 보다 살벌함이, 화합보다는 반목과 복수가 넘치는 것 같아 슬프다. 강직하고 따뜻한 정서에 흠이 생겼고, 흉한 골이 깊어가고 있다. 이웃 간에 눈치보기를 예사로 하고, 심지어 원수지간까지 돼버리기도 한다.  

왜 이렇게 됐을까. 몇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정치적인 문제가 큰 것 같다. 민선자치가 시행되면서 작은 섬들이 지지자들의 성향에 따라 의견을 달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혈연을 끊는 일도 벌어졌다. 

신안군은 역대 24년의 민선 임기 중 4명이 군수 직을 이어왔다. 그런 가운데 1995년과 1998년 이후 두 명이 연속해서 16년을 돌아가며 군수 자리를 주거니받거니 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새 군수가 돌아오는 선거철이 되면 공직자들은 눈치보기도 바쁘고 마음도 바쁘다. 어쩔 수 없이 '줄서기'를 새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공직사회가 때만 되면 겪는 '고통의 시간'이다. 

지난 6·13 지방선거 때도 '두 사람'의 경쟁이 치열했고, 공직사회도 이 눈치 저 눈치 보기에 여념이 없었다.   

새 군수가 입성했고, 관심사는 인사에 쏠렸다. 그런데 우려했던 현실이 펼쳐졌다. 이 달에 단행된 신안군 인사를 두고 "역대 최고의 인사보복"이라는 뒷말이 무성하다. 일말의 화합을 기대했던 공직사회는 다시 혼돈의 시간으로 빠져들고 있다. 

"새 군수가 행정을 이끌기 위해서는 당연하다"는 우호적인 목소리도 있지만, "정도를 넘어 선 보복인사"라는 정반대 평가도 적지 않다. 

이번 신안군 조직개편 때 13명의 사무관 승진 의결자가 나왔다. 이들은 새로 생긴 민간사회단체 등에 파견되는 식의 인사발령을 받았다. 

당사자들은 특별한 내색을 않고 있지만 '전직 군수 최측근들에 대한 보복 인사'라는 시각이 짙다. 새 군수의 인사권한이 아무리 막강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물갈이 해야 하나, 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끓고 있는 것이다. 매번 이런 꼴을 보지 않으려면 인사원칙과 관련한 법적 제도 장치를 둬야 할 것이라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楚平王(초평 왕)의 무덤을 파고 그의 시체를 꺼내 300대를 내리친 뒤에야 그만 두었다'는 데서 유래된 말이 있다. '무덤을 파헤치고 주검에 채찍질을 한다'는 '굴묘편시'라는 사자성어다. '지나친 복수'를 멀리하자는 교훈이다. 

한 촌로(村老)가 기자에게 "신안군의 군 역사에 이토록 잔인한 인사가 있었을까"라고 물었다. 그는 이어 "왜 당신네들(언론)까지 신안군의 역사에 역행하고 있느냐"고 다그쳤다.

"인사는 인사권자의 권한 아니겠습니까"라고 답했다간 "너도 똑같은 놈"이라고 야단 맞을 것 같았다. 두려운 마음에 말문이 막혔다.

인사가 만사라 했다. 신안군 수장으로 7년의 신안군 행정을 책임졌던 사람이 4년간의 공백을 깨고 새로 입성했다. 박우량 군수는 스스로 '행정가적 판단이 좋고, 군민을 사랑하는 군수'라고 자평했었다. 

공직자도 군민이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일을 하는 지역일꾼이고, 유권자다. 정치적 노선이 달랐다 하더라도 공직자를 포함한 모든 군민은 존중받아야 할 지역의 주인이지, 보복인사 따위를 당해야 할 간단한 대상이 결코 아니다. 

군민을 진정 사랑한다면, 모든 공직자까지 아끼고 보듬으면서 분열 없는 아름다운 섬 신안군을 이끌어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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