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컷] 우리 시대의 당간지주

2018-08-29 09:35:54

[프라임경제] 오래된 절 그 중에서도 제법 규모가 있는 곳에 가면 큰 기둥들이 서 있는 걸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일명 당간지주인데요. 가운데 간을 유지하기 위해 양 옆으로 나란히 두 기둥, 즉 지주를 세우는 것입니다. 큰 일이 없는 때 절에 가서 본다면, 이 지주들만 딱 눈에 띄는 경우가 많습니다.

당간지주를 만드는 소재로는 돌이 주로 쓰이지만, 경우에 따라선 철기둥으로도 세우고 나무로 만들기도 합니다. 절 앞에 이런 걸 세운 건 통일신라시대부터라고 합니다. 

그 주변 지역이 신성한 영역임을 표시하는 역할을 했다는 설명이 있고요. 그래서 이런 풀이를 내놓는 이들은 당간지주가 '솟대'와도 의미가 상통한다고 이해합니다. 한편, 실제로 쓰임새가 있는 구조물이라는 점이 더 중요하다고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엄연히 '행사용'이거든요.

당간지주를 활용해 깃발을 걸어 아래로 늘어뜨리는 것이죠. 설법이나 법회 등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렇게 합니다. 단순히 색깔 깃발이 아니라 당(幢)이라고 해서 불화를 그린 기를 걸죠. 부처님의 가르침 등을 표현하는 이런 기를 내거는 방식으로 권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통은 절에 그런 게 있었나 싶었던 당간지주지만 가장 중요한 때에 빛을 발하는 것이죠. 사실 그런 예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여름은 무척 혹독했는데요. 폭염으로 건강을 해친 이들도 많고 에어컨, 선풍기며 냉장고 같은 전기로 돌아가는 물품이 그렇게 요긴하게 느껴진 경우가 또 없었던 것 같습니다. 사진은 전봇대 사진인데요. 평소 전봇대를 누가 눈여겨 보나요. 하지만 이번 여름 같은 특별한 때를 넘기고 보니, 전봇대가 우리 시대의 당간지주가 아닌가 생각해 보게 됩니다.

▲ⓒ 프라임경제

아마 사진 속 전봇대는 전기 배분 단계에서 가장 끝 부분에 해당하는 곳인가 봅니다. 평소 전봇대는 다른 전봇대에서 또다른 전봇대로, 릴레이로 전선을 이어받고 다시 넘겨주는 수평선을 만드는 도구로 이미지가 남아있는데요.

이 경우에는 이제 소비자를 만나러 가는 경우인지, 아래로 깃발 늘어뜨리듯 전선을 나눠주고 있습니다. 평소에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던 기둥이지만, 이게 없었다면 어떻게 살았을지 생각해 보게 되고 늘어진 전기선의 고마움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또 그런 소중한 전기를 쓰는 문제는 돈 있는 사람이 원하는만큼 사서 쓰면 된다는 식의 '일반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논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일례로 한동안 다들 관심없어 하던 누진전기요금제 폐지 논의가 이번 더위를 계기로 불거졌죠. 낭비 등을 막기 위해 누진제를 하는 것인데, 오히려 꼭 써야 하는 이들, 형편이 어려운 경우에 폭염에도 불구하고 전기를 폭탄 요금 걱정에 제대로 쓰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부각됐습니다. 서민 부담 증대 등의 원칙적 문제 때문에 누진제 폐지에 미온적인 여당 내에서도 일부 의원들이 누진제 폐지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합니다.

어느 종교든 자비와 은총은 가장 요긴한 곳을 중심으로 뿌려져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전선을 타고 흐르는 전기 역시 당간지주를 타고 늘어진 당(깃발)처럼 가장 좋은 방식으로 소중하게 나눠졌으면 좋겠습니다.




임혜현 기자 tea@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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