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현대중공업, 재해를 처리하는 '갑의 방식' ①

2018-09-05 14:14:13

- 대한기업 "제 멋대로 재해 합의 후 책임 전가" 억울함 호소

[프라임경제] 현대중공업이 자사 근로자 과실로 발생한 사망재해 책임을 하도급 업체에 전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예상된다.

현대중공업 하청업체(대한기업) 소속 직원 A씨는 지난 2015년9월2일 4도크 북편 PE장에서 용접부위 제거 및 사상 작업 완료 후 작업 케이블을 정리하던 중 블록에 충돌해 12미터 아래로 추락했다. 이 사고로 A씨는 같은 해 10월5일 사망했다.

▲9월3일 현대중공업에서 작성한 '안전 사고 즉보'에는 자사 소속 근로자의 과실임을 인정하는 내용이 적혀있다.



사고 다음 날인 9월3일 현대중공업에서 작성한 '안전 사고 즉보'에는 "현대중공업 건조3부 소속인 신호수가 블록 탑재를 위한 권상(卷上, 와이어로프 등으로 들어 올림) 전 대피 수신호한 후 재해자 일행의 대피 완료 확인을 못해 사고가 발생됐다"고 명시돼 있다. 현대중공업 직원의 과실을 인정한 셈.

현대중공업은 본 사건의 책임을 물어 △사고 원인 제공자인 신호수 양 모씨 정직 8주 △부서장 차 모 부장 정직 1주 △ 담당 중역 정 모 상무 감봉 등의 징계를 내린 바 있다. 

관계자는 "사고 수습을 위해 관련자 징계를 포함한 행정적 조치를 했으며, 유족과 원만한 합의를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설명했다.

◆합의 과정에서 배제…대한기업 "대리인 내세울 이유 전혀 없어"

이 같은 현대중공업의 해명에 대해 대한기업 측 김도협 대표는 "겉으로 드러난 게 다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는 "원만한 사태 해결이라는 미명 하에 대한기업에 피해를 전가했다"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대한기업 소속 근로자가 사망했는데 재해보상금 합의 과정에 대한기업이 참여할 수 없었다"고 운을 뗀 뒤 "현대중공업에서 책임질 것처럼 얘기해 한 발 뒤로 물러서 있었는데 합의서에 서명하도록 강요하고, 이후엔 합의금 중 일부를 부담하라고 강요했다"고 밝혔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재해의 과실을 인정했기 때문에 당연히 책임을 질 것으로 믿었다"며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던 이유를 설명하고 "합의금 중 일부를 부담해야 했다면 당연히 적극적으로 합의에 임했을 것"이라고 아쉬워했다.

재해자 유족은 협력사협의회 회장과 보상금 합의를 했다. 현대중공업과 대한기업의 대리인 자격으로 협력사협의회 회장이 개입한 것.

김 대표는 "사고 책임이 대한기업에 없던 상황에서 우리가 대리인을 내세울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현대중공업에서 일방적으로 현대중공업과 대한기업의 대리인으로 협력사협의회 회장을 내세워 합의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이어서 "합의 과정에 전혀 참여하지 않았음에도 합의서는 유족과 대한기업 대표인 내가 서명했다"라며 "심지어 손해배상금이었던 5억6500만원도 합의가 이뤄진 2015년11월18일 처음 확인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A씨 유족과 김도협 대표 간 작성한 합의서의 가와 라 항에는 현대중공업 인사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다.



내용을 보면 손해배상금 외에도 △A씨 부친을 현대중공업에 복직시킨다는 내용 △현대중공업이 A씨 배우자를 현대중공업 사업장내에 취업 등이 합의안에 포함돼 있다. 

원청인 현대중공업의 인사에 하청에서 관여할 권한은 없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즉, 본 내용을 근거로 합의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의 개입 혹은 승인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은 "당사가 합의를 진행한 바 없으며 협력사협의회 대표와 김도협 대표의 친형인 김영찬 주도로 합의한 것"이라는 주장만 반복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권영국 변호사는 "하청업체인 대한기업이 재해자 배우자의 현대중공업 취업을 요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지 않느냐"며 "또한 본 재해의 과실이 현대중공업에 있는데 배우자 취업에 대해 합의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의견을 밝혔다.

권 변호사는 "대기업은 사고가 외부로 알려져 비난의 대상이 되거나 법적 책임 공방이 발생하는 상황을 방지하고자 합의 내용이 외부로 공개되길 꺼려한다"라며 "현대중공업의 합의 방식은 이 같은 전형적 대기업의 방식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협의회를 내세워 합의를 하는 것은 현대중공업뿐만 아니라 다수 대기업의 교섭 수법"이라면서 "이 때문에 보상할 주체와 서류 상 합의 주체가 불일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실질적 서류의 작성 주체는 현대중공업이라 볼 수 있고 하청인 대한기업이 동원돼 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이해하는 게 타당하다"라며 "비단 전문가뿐만 아니라 이렇게 이해하는 게 상식적 해석이다. 실질적인 합의 주체인 현대중공업이 서류 상 책임의 주체라는 사실을 남기지 않으려고 이상한 방법을 쓴 것으로 보인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특히 외부 유출 시 '보상금을 회수한다' 혹은 '배우자 취업을 취소한다' 등의 단서 조항을 달아 문제가 확산되지 않도록 조치하기 때문에 합의 내용이 외부로 유출되는 경우는 드물다"고 덧붙였다.

◆"이면 합의서 작성 시도 있었다"

대한기업은 합의금 작성 과정에서 실제 보상액보다 낮은 금액을 명시한 이면 합의서 작성을 시도한 정황도 있었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합의서 작성 후 현대중공업 관계자에 보고하자 금액이 왜 4억5000만원이 아니고, 5억6500만원이냐며 나무랐다"고 전했다. "합의 금액조차 알지 못했는데 이면 합의서를 작성하지 않았다고 지적해 어이가 없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현대중공업이 비슷한 사고 발생 시 낮은 합의금 근거를 만들기 위해 이면 합의서 작성을 요구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권 변호사는 "이면 합의서 작성은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으로 널리 활용되는 방식"이라며 "합의서에 공개 방지를 위한 단서 조항이 많아 사실 확인이 어려울 것"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비도덕적, 비합리적 절차에 따라 합의가 이뤄졌음에도 김도협 대표가 할 수 있는 일은 서명밖에 없었다고. 김 대표는 "업체 유지를 위해 불합리해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게 을의 현실"이라고 하소연했다.

◆권영국 변호사 "전형적 원청 갑질"

합의서가 작성된 당일인 11월18일 현대중공업은 대한기업에 6억1400만원을 송금했다. 합의금 명목이었다. 대한기업은 입금된 6억1400만원 중 합의금액인 5억6500만원을 유족의 계좌에 즉시 입금했다.

현대중공업이 대한기업에 6억1400만원을 지원한 근거는 11월10일 현대중공업과 대한기업이 작성한 '지급이행 합의서'에서 찾을 수 있다.

▲정확한 금액을 명시하지 않은채 작성된 지급이행 합의서.



지급이행 합의서는 현대중공업이 6억1400만원(1억 위로금 포함)을 지원하고 향후 대한기업이 근로복지공단의 산재 보상금 전액과 단체상해보상금 수령금 전액을 현대중공업이 지정한 계좌에 이체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김도협 대표는 지급이행 합의서 작성 과정에서 현대중공업의 강요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김 대표는 "합의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대한기업이 A씨의 입원비와 장례비를 처리하고 이를 현대중공업에 청구했더니 지급이행 합의서에 서명해야 결제할 수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고 말했다.

그는 "결제 대금 처리가 시급했던 터라 현대중공업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라고 덧붙였다.

합의서 지급이 완료돼 문제가 일단락됐다고 믿고 지낸 한 달 뒤 지급이행 합의서가 발목을 잡았다. 지급이행 합의서를 토대로 재해보상금 선지급금 반환 합의서를 작성해야 했으며, 작성 하루 만에 현대중공업이 요구한 2억5297만9860원을 반환해야 했다.

▲2억5297만9860원을 반환하라는 내용의 재해보상금 선지급금 반환 합의서.



현대중공업이 과실을 인정해 책임을 질 것으로 믿었던 대한기업으로선 날벼락 같은 손실이 발생한 것. 대한기업은 "현대중공업이 원청이라는 우월적 지위에서 '갑질'한 것"이라며 울분을 토했다.

권 변호사 역시 이를 갑질로 분석했다. "원청 직원의 과실로 하청 노동자가 사망한 건은 하청 대표가 책임질 일이 아니라 원청 직원과 원청 직원을 고용한 사용자에 책임이 있는 상황"이라며 "선지급금 반환 요구는 현대중공업에서 구상을 청구한 개념인데, 하청에 과실이 없기 때문의 구상의 대상조차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하청의 잘못으로 원청이 배상액을 먼저 지급하고 구상권을 청구할 수는 있으나 이번 상황은 구상금을 청구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전형적 원청의 갑질"이라고 분석했다.

한편,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기업 대표가 문서에 서명하기 전 관련 내용 검토를 안 해봤다는 게 말이 되냐"라며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특히 대한기업의 문제제기에 대해선 "일방적 주장"이라며 일축했다.

이어서 "합의 당시 김도협 대표가 아닌 김도협 대표의 친 형인 김영찬씨가 관여했다"며 "김도협 대표가 당시 실제 대표 역할을 수행했는지도 명확치 않다"고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대한기업 대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김도협이다"라고 강조하며 "친 형인 김영찬은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수행비서였다. 인맥이 넓어 회사 설립 초기에 도움을 받은 적은 있다. 재해자의 부친과도 친분이 두터워 재해 처리 초기 일 처리를 위해 관여한 적은 있지만 이 때문에 나를 대한기업 대표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대한기업은 내 자본과 내 노력으로 일군 업체다"라며 현대중공업의 의혹을 정면 반박했다.

②편에서 계속

조규희 기자 ckh@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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