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G 발급기금 역할론 부각 국면, 해양진흥공사의 길은?

2018-09-13 15:22:47

- '조선업은 업무 영역 아니다' 'WTO 제소 가능성' 우려에도 융합적 역할모델 주문 높아

[프라임경제] #. STX조선해양이 한 고비를 넘었다. KDB산업은행이 12일 오후 선수금환급보증(RG)을 발급하기로 결단을 내린 것. STX조선해양은 목줄을 죄던 자금 논란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간 확보한 수주 물량마저 놓치는 등 고난을 겪었던 상황에서 벗어나, 이제 연말까지는 수주 잔고 확보에 집중할 수 있게 됐다.

이 같은 상황은 STX조선해양에만 한정된 이슈는 아니다. 선박을 건조하는 일은 우수한 기술력 외에도 막대한 자금이 움직이도록 해야 하는 일이다. 

간단히 말해, 선주가 자기 자본으로만 배를 건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목돈을 미리 쌓아놓고 일에 착수하는 것도 아니다. 자금을 융통하고 정해진 납기에 우수한 배를 건조하는 일은 일을 맡기고 맡는 측 외에도 다양한 금융기관이 개입해야 하는 상호종합예술이다.

▲STX조선해양이 최근 RG 우려를 덜어내 미래가 밝아졌다는 풀이가 나온다. ⓒ 뉴스1

특히 배를 건조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면서 선주 측에서 고심하는 외에도 일감을 맡은 조선소(조선업체)에서 자금 문제를 처리해야 할 필요도 높다.

선수금을 받았는데, 조선소가 중간에 배도 제대로 만들지 못한 터에 망하는 등 변수가 적지 않기 때문.

긴 건조 기간 내내 선수금 문제를 부담해야 할 보증 기능이 필요하다. RG가 바로 이런 조선업체의 선박 발주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에 대비하는 아이템이다. 금융회사가 선주에게 선수금을 물어주기로 약정하는 보증이 바로 RG다.

그래서 조선산업 관련 논의가 있을 때마다 RG 개념이 거론된다. 하지만 관련업 외에는 이에 관심을 갖지 않기에 찻잔 속 태풍처럼 취급돼 왔다.

다시 STX조선해양의 예로 돌아가 보자. 이 업체가 올해 잡았던 목표 수주량은 15척. 하지만 RG 발급에 난항을 겪으며 여기 배를 맡겨도 되냐는 의구심이 일부 글로벌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 제기됐고, 결국 뛰어난 능력 대비 저평가되면서 영업에 상당히 애로점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RG 물꼬를 튼 것은 이런 어려움을 일거에 해결할 수 있는 마중물을 부어준 셈이다.

이렇다 보니 RG에 대한 관심이 다시 부각되고 있다. 과거처럼 해당 영역의 문제만으로 치부할 게 아니라는 경각심도 높아졌다.

현재 조선업 수주 전망이 마냥 어두운 것은 아니다. 최근 선가 상승으로 그리스와 대만 등 선주사의 탱커 수요가 꾸준하게 부각되는 등 각 영역에서 나름대로 꿈틀대고 있다는 평. 이런 가운데 한국 조선계만 RG 문제 등으로 손만 빨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가 높다.

◆김경수 지사 등 RG 문제에 관심 높아

정치권 일부 특히 조선업 이슈를 피부로 느끼는 지역 수장 등이 이 RG 이슈에 관심을 높이는 이런 문제의 중대성에 기반하고 있다.

김경수 경상남도 지사가 5일 RG 발급기금 조성 등을 언급해 눈길을 끈다.

그는 경상남도 의회에 출석, 도정질문에 답하는 자리에서 "조선산업과 관련해 가장 심각한 현안이 RG 발급이 이뤄지지 않는 문제"라고 짚었다.

이어 "올해 도내 조선업체가 8척을 수주하고도 RG가 없어 최종계약을 하지 못하자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에 수차례 협조를 요청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정책금융기관에 대한 RG 발급을 계속 촉구하면서 한국해양진흥공사 등이 참여하는 소규모 RG 발급기금 조성 등 별도 금융자본을 활용한 RG 발급이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올해 하반기에 방안을 강구하겠다"고 제언했다.

이런 해법이 과연 온당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일단 논란이 있을 수 있다. 한국해양진흥공사법은 그 설립 근거에서 해운업 혹은 해운항만업에 대한 지원을 주목적으로 선언하고 있기 때문. 선박의 취득·관리 및 처분의 수탁 등이나 해운 관련 정보의 취득 및 융합을 통한 리스크 관리 등 역할들도 맡지만, 조선업 지원까지 본업에 해당하느냐는 사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것.

하지만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이런 역할을 해주기를 바라는 김 지사 등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 단정할 것만도 아니다. 해운과 조선은 사실상 이와 입술처럼 맞닿아 있기 때문에 한 산업의 흥망이 바로 옆으로 전가될 수 있다. 

극단적으로 가정해 보면, 조선을 포기하고 해운만 챙길 수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상정해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두 산업간 관계가 그렇지 않고, 둘 다 모두 우리나라의 차세대 먹거리에 해당하는 중요 산업들이기 때문에 조선이 발달하지 않는 나라에서 해운업만 키운다고 나설 것인지 따져봐야 한다.

▲조선과 해운, 금융은 떼어놓고 이야기하기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배를 건조하는 일이 종합예술이라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 뉴스1

그래서 정부는 봄에 '해운재건 5개년 계획'과 '조선산업 발전전략'을 내놓은 바 있다. 사실상 두 문제가 연결된 하나의 과제로 보는 시각을 드러낸 셈이다. 

우선 해운업 관련 측면에서 보면, 정부는 한국해양진흥공사의 투자·보증을 활용, 2020년까지 벌크선 140척과 컨테이너선 60척 등 200척 이상의 발주를 지원키로 했다.

조선업 회생을 위한 대책도 이때 등장했다. 일감 제공을 위해 5조5000억원 규모의 공공선박 발주 등 국내 발주 선박에 대한 수주 노력이 모습을 드러낸 것. 

그러므로, 또다른 문제가 부각된다. 굳이 출범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앞으로 본격적으로 RG 등 조선업 진흥에도 일정한 직·간접적 지원 역할을 할 필요가 없다고 선을 긋는다 해도, 우리 관련 산업과 당국이 분쟁에 말려들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

◆분쟁 가능성은 어떻게든 닥칠 '상수', 과거 판례는 우리 편 

현재 한국 정부를 겨냥한 조선업 지원 관련 분쟁 파도도 높아지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대우조선해양 등 대형사들이 적자를 보는 가격에 선박을 수주하더라도 금융권으로부터 RG를 발급받을 수 있도록 정부가 돕고 있는 게 문제다. 아울러 중소조선사에 대한 RG 확대가 전향적으로 검토된 바도 있다. 

이런 경향에 해외에서는 반발한다. 한국 조선업을 눈엣가시 같은 경쟁 상대로 보는 국가들이 특히 그렇다.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따르면 일본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를 검토하는 한편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도 한국과 EU의 자유무역협정(FTA) 위반 여부 검토에 착수하는 등 관련 분란이 수면 아래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정부는 한진해운이 붕괴된 일을 겪고, 큰 트라우마를 갖고 있다. 특히 이를 전후애 비단 해운 뿐만 아니라 조선업계 역시 같이 취약해졌고 위와 같은 일종의 지원을 하고 있다.

그런데 WTO 체제에서는 수출보조금 제도를 기본적으로 규제한다. 특정국에서 막대한 국고 보조금 프로그램으로 해당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면, 다른 나라에 비정상적으로 싼 가격으로 물품을 팔 수 있다. 결국은 공정 경쟁의 원칙을 위반한다는 논리다.

일본과 EU 회원국들의 공격 포인트는 바로 이 대목이다.

바꾸어 말하면, 과거 정부가 WTO를 의식하면서 한국해양진흥공사 설립과 관련해 공사가 해운업은 지원할 수 있지만 조선업에 대한 지원은 어려울 것이라고 모호한 스탠스를 취했음에도 결국 일정한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수'라는 것.

2002년 EU에서는 우리를 상대로 WTO에 제소한 바 있었는데 주요 논점이 바로 1997년 외환위기 등 상황에서 조선에 관한 우리 정부의 정책금융(RG 등) 지원 및 기업부문 구조조정 조치를 보조금으로 볼 수 있냐는 점이었다. 

2004년에 나온 결정(판결)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이는 보조금으로 볼 수 없다고 해석됐다. 관련 사실이 확정되면서 비슷한 이슈의 WTO 제소 소지가 봉쇄됐다고 담대하게 볼 수 있는 것인데, 굳이 우리가 불필요한 저자세로 나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사 이런 점을 보조금 혜택 개념에 해당한다 치더라도 '수출보조금' 성격만 피한다면 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다른 회원국에 부정적 효과만 일으키지 않는다고 논리를 정교히 개발하면 된다는 소리다. 일명 '조치가능 보조금' 논리로 다른 정책적 배려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여러 각도에서 나오는 한국해양공사를 활용한 조선업 RG 관련 지원 논의를 꼭 포퓰리즘에 기반한 논의, 논리적 타당성이 없는 피상적 언급으로 치부할 건 아니라는 점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제기된다. 

한국해양진흥공사가 자본금 충당 등 출범 초입부터 적잖은 역경을 겪고 이제 돛을 펼쳤기에 더욱이 RG 문제를 위시, 조선 진흥 등에까지 자꾸 영역을 넓히는 것은 부담스럽다는 지적은 물론 타당하다. 

하지만 조선과 해양의 골든타임 해결을 위해 영역과 관할을 적극적으로 해석하거나 합리적으로 조정하려는 자세는 늘 열어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임혜현 기자 tea@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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