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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범석의 라멘기행] 해외에서 더 유명한 '쿠마모토 라멘'  

"라멘은 국민식, 라멘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 bsjang56@hanmail.net | 2018.09.13 14:16:02
[프라임경제] 쿠마모토(熊本) 라멘은 후쿠오카현 쿠루메에서 쿠마모토현의 타마나(玉名)를 거쳐 쿠마모토시와 그 주변에 전파된 라멘이다. 큐슈지역 라멘으로는 하카타 다음으로 전국 지명도가 있다. 진한 톤코츠 계열로 면발이 굵고, 닭 뼈를 섞어 우려낸 부드러운 스프가 특징이다. 소박하지만 깊은 내공이 느껴지는 맛이다.

쿠마모토역 근처 키요켄의 라멘. ⓒ 岩下雄一朗블로그 캡처

쿠마모토 라멘이 다른 지역과 차별화 되는 가장 큰 요소는 '마늘 칩' 고명을 사용하는 점이다. 마늘을 잘게 썰어 마유에 볶거나 튀긴 칩이 톤코츠 특유의 냄새를 중화시키고 풍미를 높여준다. 하카타 라멘의 카에다마(면추가) 시스템이 쿠마모토에는 없다.

쿠마모토 라멘은 세 남자의 우정이 만들어 낸 작품이라고 한다. 대만에서 유학 온 유(劉)라는 학생이 전쟁 통에 본국으로부터 송금이 끊긴다. 곤경에 처한 유를 학교 친구 키무라가 집으로 데려가 가족처럼 대해준다. 그는 쿠마모토대학을 졸업해 조미료 제조로 돈을 번 후, 두 친구와 함께 부동산과 중고차 사업을 시작한다.

그러던 중 전업을 할 수밖에 없는 계기가 찾아온다. 1953년 큐슈북부를 강타한 대홍수로 사업의 터전을 몽땅 잃게 된 것. 그때 타마나(쿠마모토시와 쿠루메 중간지점에 위치)에 맛있는 라멘집이 있다는 소문을 듣는다. (본 라멘기행 쿠루메(久留米)편에 나오는 산큐(三九)의 타마나 지점이었다.) 그곳에서 바이탕(白湯) 스프의 매력에 빠진 3인은 라멘에 인생을 건다.

키무라는 곧 쿠마모토 시내에 '마츠바켄(松葉軒)'이라는 점포를 차리고, 야마나카는 이듬해인 1954년 '코무라사키(こむらさき)'를 오픈했다. 유는 케카(桂花)의 주방근무를 거쳐 1968년 '아지센(味千)'을 창업한다. 쿠마모토 라멘의 심벌이 된 마늘 칩은 유가 케카에서 근무를 할 때 개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케카와 코무라사키는 토쿄 등 칸토지방에 진출하는 등 성공을 거두고 지금도 쿠마모토를 대표하는 노포로 남아 있다. 아지센은 쿠마모토는 물론 해외에서 영향력 있는 외식그룹으로 성장했다. 공식 홈페이지에 의하면, 2018년 9월 기준 국내78・해외739 총 817개의 체인점을 보유한 것으로 나타난다.

해외 점포가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는 중국에만 669개 점포가 있기 때문이다. 라멘의 발상지이자 유사한 면 요리가 즐비한 중국에서 일본식 라멘으로 인기를 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중국과 비슷한 식문화를 가진 싱가포르・태국・필리핀은 물론, 식문화가 판이한 미국·캐나다·호주 등 총 12개국에 아지센 체인점이 있다. 한국에도 2009년 서울 1호점을 개설했지만, 다른 라멘에 가려서인지 크게 호응을 얻지 못하고 철수했다.

아지센을 상징하는 깜찍한 변발소녀 '치챵(チイチャン)'은 창업자 유의 딸을 모델로 한 마스코트라 한다. 딸 요시에는 세 살 때부터 TV에 출연하는 등 라멘업계에서는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홍콩에서는 요시에의 지명도를 살려 아지센라멘을 '변발 라멘'으로 광고하고 있다. 아지센은 1996 유가 세상을 떠난 후 아들과 딸이 각각 사장과 부사장을 맡아 운영한다. 법인명은 유(劉)의 일본식 성 시게미츠를 인용한 重光(중광)산업이다.

◆쿠마모토(熊本)현과 쿠마모토시

큐슈지방 중앙에 위치한 쿠마모토현은 비옥한 토양과 해산물 풍부한 아리아케(有明) 바다를 끼고 있다. 예로부터 주거환경이 양호해 선사시대의 석기와 패총, 고분이 많이 발굴되는 유서 깊은 도시다. 고대국가 시절에는 사가(佐賀)현과 나가사키(長崎)현을 포함하는 히노쿠니(肥国)의 중심지로 번성했다. 히(肥)는 불을 뜻하는 火와 발음이 같아 화산이 활발한 지역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쿠마모토라는 지명은 남북조시대(1336~1392) 이후 각종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隈本'이라는 한자를 사용했다. 하지만 현재 통용되고 있는 '熊本'는 카토 키요마사(加藤清正)가 1607년 隈本성을 대대적 증개축하며 새로 명명한 것이다. 영주가 거주하는 성의 이름으로 '두려워하다' '황공하다'는 뜻을 가진 외(畏)자보다는 같은 발음이면서 일반에 친숙한 곰(熊)이 낫다는 판단에서였다.

쿠마모토현은 큐슈 7개 현 중 사가(佐賀)현을 제외한 6개 현과 육지 또는 바다로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이다. 충청북도와 거의 같은 면적(7409㎢)에 175만이 거주하고, 현청 소재지를 쿠마모토시에 두고 있다. 쿠마모토시는 하카타시·키타큐슈시에 이은 큐슈 제3의 도시로 74만 인구를 가지고 있다.

쿠마모토시는 인구 50만이 넘는 세계의 대도시 중 지하수를 수돗물로 사용하는 유일한 곳이다. 그래서 붙여진 별명이 '물의 수도'다. 아소 외륜산에 내리는 비가 땅 속에 스민 후 시내까지 도달하는데 거의 20년이 걸린다고 한다. 이러한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농업분야 생산액이 1718개 기초지자체 중 6위에 랭크된다. 쌀·메론·가지 등 농작물과 킨보잔(金峰山) 기슭에 조성된 대규모 감귤 단지가 쿠마모토 농업의 근간이다. 또한 아리아케 바다 개펄의 혜택으로 김과 바지락이 대량 수확된다.

쿠마모토의 역사는 가토 키요마사가 등장하며 크게 바뀌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를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쳐들어온 일본군 선봉장의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는 천하통일을 이룬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 중 한 명으로 전쟁 직전 히고(肥後)국 영주에 봉해진다. 1592년의 임진왜란은 그에게 있어 주군에 대한 충성심을 보일 좋은 기회였다.

그는 내치에 뛰어난 수완을 발휘했다. 치산·치수·간척을 적절히 시행해 토지의 효율성 높이는 한편, 항구 시설을 정비해 외국과 교역을 적극 장려했다. 오늘날 쿠마모토 산업의 기본 인프라가 대부분 이 때 조성된다. 하지만 카토가 죽은 후 어린 세자가 대를 이은 카토가문은 에도막부에 의해 종말을 맞는다. 카토가 토쿠가와 이에야스(徳川家康)정권 성립에 크게 공을 세웠지만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그의 가문이 권력에서 배제된 것이다. 쿠마모토성 입구 미유키(御幸)다리 옆에는 색 바랜 키요마사의 동상이 외롭게 서 있다.

이 후 쿠마모토한(蕃)은 메이지유신으로 신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239년간 히고(肥後) 호소카와(細川)가에 의해 통치된다. 1983년 전국 최연소로 쿠마모토현 지사에 당선된 후, 1993년 79대 총리에 오른 모리히로도 이 가문 18대 당주(장손)다. 쿠마모토시는 2004년 큐슈신칸센 개통으로 남쪽 가고시마(鹿児島) 57분, 후쿠오카의 하카타 33분, 740㎞ 떨어진 신오사카는 2시간 58분에 연결된다. 2010년 울산광역시와 우호도시 협약을 맺었다.

◆명소소개

△쿠마모토(熊本)성
쿠마모토시 츄오(中央)구에 위치한 일본 3대 명성의 하나, 일명 은행(銀杏)성으로 불림, 카토 키요마사가 隈本(쿠마모토)성을 접수해 개축한 평산성, 다음 영주였던 호소카와(細川)가문이 에도시대 거성으로 사용, 세난(西南)전쟁 때 대부분 소실된 것을 1960년대 재건, 망루·성문·성벽 13동이 중요문화재이고 성터는 특별사적, 천수각 내부는 시립박물관 분관으로 운영, 51만2300㎡(약 15만5000평)에 이르는 성내 수목원·미술관·박물관·전통 공예관 등이 있음. 2016년 4월 대지진으로 상당부분 보수공사 중(2018년 9월 현재). (교통편) 시덴(市電, 전차) 하나바타쵸(花畑調) 정류장 또는 JR쿠마모토역에서 버스 18분.

△스이젠지죠쥬엔(水前寺成趣園)
흔히 스이젠지 공원으로 부름, 쿠마모토한(藩)의 호소카와(細川)가문 초대 영주 타다토시가 스이젠지 찻집으로 시작해 3대 영주 츠나토시 대에 완성된 다이묘(大名)의 전용공간, 7만3000㎡(약 2만2000평) 면적을 모모야마식(16C후반)식 회유정원으로 조성, 인공산·화산석·잔디·소나무를 이용해 토카이도(東海道) 경승지 53곳을 표현, 1929년 국가명승 및 사적으로 지정, 연못의 물은 아소(阿蘇)산 용출수, 입장료 ¥400. (교통편) 시덴(市電, 전차) 스이젠지공원 정류장 또는 JR 스이젠지역 하차.

△아소(阿蘇)산
큐슈의 중앙부 아소지방에 위치하는 활화산, 국가명승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쿠마모토의 상징, 분화구 외곽을 둘러싼 외륜산(남북25㎞ 동서18㎞, 면적380㎢)의 칼데라 지형은 세계 최대급, 칼데라 내 타카다케(高岳) 등 5개 봉우리를 북쪽에서 바라보면 부처가 누운 모습(열반상), 로프웨이로 나카다케(中岳, 1506m) 정상에 올라 화구 견학, 2016년 대지진과 분화로 로프웨이가 손상돼 현재는 아소산 루프 셔틀버스가 대체운행 중, 셔틀요금 왕복 ¥1200. (교통편) 쿠마모토역~오이타(大分)역 관광열차 '아소보이(阿蘇BOY)' 하루 1왕복, 현재 중간구간(히고오즈(肥後大津)~아소) 불통으로 오이타~아소 구간만 운행.

△시마다(島田)미술관 ※미야모토·무사시 사료관
쿠마모토 무인 문화에 대한 역사자료와 고미술품 전시, 특히 에도초기의 무인 미야모토 무사시(宮本武蔵)의 무구·유품·서화 진열, 무사시는 29세까지 60여 차례 대결에서 패한 적 없다는 전설적 검객으로 많은 문학작품의 소재가 되고 있음, 말년 쿠마모토의 영주 호소카와 타다토시의 식객으로 예우 받으며 자서전과 병법서 저술, 1645년 62세로 생을 마감, 입장료 ¥700 (화요일 휴관). (교통편) 쿠마모토 교통센터에서 버스로 10분 지케뵤인(慈恵病院) 앞 도보 3분.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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