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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 묘수 '철도'…차관→철도기구 출자 논의 가능?

주주는 OSJD·주소는 미국…바르셀로나전력회사 사건 반면교사·국제사회 인정받아야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9.19 10:16:49

[프라임경제] 삼성을 위시해 유력 대기업 수장들이 이번 문재인 대통령 방북팀에 동행했다. 하지만 경제협력을 섣불리 논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각 그룹은 물론 정부 역시 신중한 모습이다.

미국이 현재 북한의 핵해제와 대북 제재를 연동시키는 완강한 태도를 굽히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이라는 이슈 역시 대북제재의 범주를 벗어나기 어렵다.

석탄 환적 의혹으로 이미 문재인 정부가 미국의 곱지 않은 시선을 받은 터라 사업적 개념을 이번에 뚜렷하게 의논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은 사실상 배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은 민간기업을 위시, 코레일 등 다양한 경제 관련 조직의 인물들을 대동했다.

일단 북측에 핵을 내려놓을 경우 열릴 다양한 선택지를 청사진이나마 제시할 '분위기의 문제' 그리고 실제로 손에 잡힐 듯한 가장 가까운 대안을 모두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그런 점에서 철도 이슈는 가장 관심을 모으고 있다. 우리 정부 및 민간 관계자들이 북한 일정을 소화하며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던 18일, 서울 한켠에서는 조용히 북한 이슈 등을 논의하는 자리가 열렸다. 한국무역협회가 미국 국제전략문제연구소(CSIS)와 공동으로 '리커넥팅 아시아 콘퍼런스'를 개최했는데, 18일 이 콘퍼런스의 핫이슈는 단연 '철도'와 '경협의 가능성'이었다.

◆대북 경제협력 재개의 난관, 무엇?

존 헴리 CSIS 회장은 "동아시아-유럽 연계 철도노선으로 물동량이 10년 안에 두 배 이상 증가할 것"이라며 북한 통과 철도망의 가능성을 밝게 제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후 한때 한국 주재 미국 대사감으로 거론됐던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역시 18일 기자들에게 "(재계 총수들의 방북은) 양날의 검과 같다. (북측의) 비핵화를 유도할 수 있는 (당근 같은) 카드가 될 수 있다"고 언급했다.

빅터 차 CSIS 한국석좌. ⓒ 한국무역협회

리사 콜린스 CSIS 연구원은 "북한은 에너지와 철도 등의 영역에서 개발 가능성이 많지만 투명성 이슈가 가장 큰 문제"라고 짚었다. "철도나 화물 물동량 등과 관련한 데이터 조차 제대로 공개된 것이 없다"고 그는 지적했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부담이 되는 투자 이슈라는 것이다. 결국 한국이든 글로벌 기업이든 간에 민간투자로 북한의 인프라나 사업 아이템을 구축 및 개발하는 게 쉽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걱정거리는 또 있다. 북한의 고질적 신용 문제다. 북한은 이미 냉전시대부터 국제적으로 다양하고 큰 규모의 빚을 져 왔다. 이는 차치하고라도, 우리 정부에 대한 빚(일명 차관)만 해도 상당한 수준이다. 식량 지원 등에 대해 갚지 않고 있는 부분은 빼고라도, 당장 북한이 갚지 않고 있는 철도·도로 건설 자재 등 관련 차관만 해도 3조5000억원 규모로 알려져 있다.

미국이 우리와 북측의 경제적 협력이 대북 제재 위반이라며 쌍심지를 돋우고 관찰하는 외에도 차가운 글로벌 사회의 시선을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체제가 함께 풀어나가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빚 갚고 이윤 추구 아닌' 대북 제재 우회로, 철도뿐?

그래서 이를 뒤집어, 차라리 국제적 참여와 동조를 통해 미국의 압박을 풀어가자는 생각을 할 역리버리지 전략을 생각해 볼 수도 있는 지점이 바로 이 요소다.

그런 맥락에서 철도가 유력하게 부상하고 있는 것. '유라시아횡단철도'와 '동아시아철도공동체' 등에 대한 관심이 근래 우리나라에서도 높은 점을 국제적 관점에서 다시 짚어보자. 두 개념은 약간의 차이가 있으나 결국 아시아 각국의 철도를 통한 협력을 기반으로 한다. 북한과의 철도 연결은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현재 낙후된 북한 철도의 보수 등 각종 공사 수요가 관심을 모은다. 저성장과 물가 상승 등 경제 악화에 시달리는 한국으로서도 나쁜 돌파구가 결코 아니다. 

유라시아횡단철도 개념부터 살펴보자.

유라시아철도망 연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의 시너지 가능성에 시선이 모아진다. 사진은 철도가 분주히 오가고 있는 서울역 구내 풍경. ⓒ 프라임경제

우리는 최근 유라시아 대륙철도망 운송협정인 '국제철도협력기구(OSJD)'에 정회원 자격으로 입성하는 데 성공했다. 이 조직체의 연원을 살펴보면 왜 우리가 이제서야 가입을 할 수 있게 됐는지 이해하기 쉽다. OSJD는 철도가 지나는 북한· 중국 · 러시아 · 동유럽권 등 28개국으로 구성된 협력체라 냉전시대엔 우리와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채널이었다. 이번에야 한반도 평화기류 상승으로 물꼬가 트인 것.

여기에 부산을 관문으로 동북아철도와 각종 여타 물류망을 구축하는 아시아적 구상도 문재인 정부가 공을 들이고 있다.

여기에 대북 제재의 사실상 유일한 우회 요소를 감안해도 철도의 투자 가능성은 주목할 만하다.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375호는 "북한과의 모든 합작투자, 협력사업을 금지한다"고 하면서도 "비상업적이고 이윤을 창출하지 않는 공공 인프라사업은 예외"라고 단서를 달았다.

대단히 인정받기 어려운 '바늘구멍'이지만 실제로 앞서 이미 공사를 진행하고 있던 북한과 중국 접경간 수력발전소 건은 이윤 추구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인정받아 예외 대상이 된 바가 있다.

유라시아철도와 동북아철도공동체 등도 비상업적이고 북한 수중에 달러 현금을 쥐어주는 방편이 아니라는 점을 국제적으로 어필한다면 예외 인정의 길이 없지 않은 셈이다.

바르셀로나 전차-전력 주식회사 사건 반면교사 필요

북한과 우리가 철도를 연결, 유라시아철도망에 연결한다면 그 운영과 수익 가능성은 당연히 일부 북한에 돌아가는 게 맞다. 미국 등에서 불만을 가질 요소도 이 지점이다.

그런데, 위에서 언급한 북한이 우리 정부에 갚아야 할 차관을 담보로 혹은 출자금으로 해서 철도 운영 관련 회사를 세울 때 북측의 옵션과 이익 배당, 이용료 수익 수수권 등을 제약한다면 사실상 비상업적 인프라사업과 같아진다고 해석하지 못할 것도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북한이 자기의 이익몫을 한국 정부나 이 운영 회사의 주주들에게 양보하는 구조를 국제적으로 확약하다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단서는 물론 남는다.

과연 국제적으로 차관 등에서 신용 없는 이 기구에 민간투자가 활발히 들어가는 것이 가능할까? 북측이 자기 지분이나 이익 수수권을 우리 측이 아닌, OSJD 등 국제조직에 넘기는 것도 가능하다. 동유럽과 러시아 등 각국의 참여 조직체를 유라시아횡단철도-동북아철도협력체에 북한이 평화적으로 참여할 것이라는 보증을 채울 수 있다.

일각에서는 주주들이 다국적으로 흩어져 있는 경우 국제 분쟁이 생기면 결국 해결이 요원하다는 우려를 하기도 한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불거진 바르셀로나 전차-전력 회사 사건의 경우 회사 설립지와 근거법은 캐나다, 사업지는 스페인, 주주는 벨기에로 구성됐으나 사업이 잘 되지 않아 국제적 분쟁으로 번진 사례다. 스페인 정부의 주주에 대한 배상 책임이 문제가 됐고, 벨기에 정부가 나섰으나, 국제사법재판소는 주주의 소속 국가들이 아닌 회사 설립근거국인 캐나다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해석해 흐지부지됐었다.

우리의 차관 포기나 초장기적인 재공여라든지, 국제적 철도 관련 조직인 OSJD가 형식상 주주로 참여하는 것만으로 분쟁 해결이 안 될 수 있고 북측의 강짜를 막기 어려울 수 있다는 시사점을 주는 사례다. 오히려 회사 설립지를 미국으로 하고, 미국의 법을 근거로 '북한과 유라시아횡단철도 연결 인프라 문제'를 다룰 회사나 법잉를 만들면 이 점도 돌파가 가능하다.

오히려 미국이 자신들의 감시 하에 철도를 중심으로 한 남과 북의 경제적 협력을 용인할 가능성도 오히려 넓다고 볼 수 있다. 비상업적 인프라 구축과 한반도 백년대계라는 순수한 측면에서의 철도 아이템이 떠오를 수 있을까, 이번 정상회담에 오영식 코레일 사장이 최태원 회장이나 이재용 회장 등 기라성 같은 경제인들과 함께 특별수행원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점은 그래서 상상의 여지를 넓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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