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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선수 '총체적 홀대'? 광운대 아이스링크 사고 판결 논란

남보다 비싼 대관료 내고도 안전무시…사고시 치료비·미래소득 판단도 푸대접 多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09.23 23:45:18

[프라임경제] 사고 이후 6년 세월만에 나온 판결들. 하지만 형사사건 판결도, 민사법원의 판결도 모두 건장하게 미래를 향해 달려가던 한 스케이트 선수의 미래를 되돌려 주지는 못했다. 특히 민사재판의 경우 운동선수에 대한 보호나 마비장애인에 대한 기본적 이해 등 주요 논점들을 모두 놓치고 있다는 안타까움을 낳고 있다.

2013년 3월 당시 체육 전공 대학생 A씨는 전도양양한 스케이트 선수였다. 이런 선수들은 전문시설에서 연습을 진행해야 하는데, 주변에 그런 시설이 많지 않아 그는 다른 학교(광운대학교)가 운영하는 아이스링크장으로 가곤 했다. 여기서 훈련을 하던 중 그는 불의의 사고를 당했다. 앞서 주행하다 넘어진 선수를 피하던 그는 결국 안전 펜스에 부딪히는 사고를 당했는데, 이로 인해 척수손상에 의한 하지마비 증세를 보였다.

이러한 전문시설은 국제규정에 따라 안전 펜스를 설치할 의무가 있다. 펜스에 매트를 적정하게 둘러치는 방식을 국제빙상연맹(ISU)이 정하고 있다.

하지마비가 되면 보행은커녕 혼자 일어서는 것도 불가능하다. 치료 후에도 A씨는 현재 마비 상태다. 안전관리 미비점을 문제삼아 긴 분쟁을 시작하게 된 이유다.

경찰서와 검찰청에 서류를 내고, 지난한 싸움이 시작됐다. 검찰의 형사사건 공소제기가 2016년에 이뤄졌다. 이 사건은 광운대 아이스링크 관리 담당자 B씨와 C씨를 피고로, 금년 1월 하순에 1심 형사소송 판결이 나왔다.

치료비 등 피해 배상을 받기 위해 민사재판도 시작했다. 2015년 제기, 2017년 타재판부로 이송된 민사소송은 직원 B씨와 C씨 외에도 학교법인 광운학원 등도 함께 피고로 삼았다. 

1심 민사재판, 비싼 대관료 내고도 알아서 펜스치고 운동하라?

형사재판 끝에 두 직원은 업무상과실치사가 인정돼 각각 1000만원의 벌금을 선고받았다. 민사소송의 경우 1심에서 치료비 등 산정에 원고의 청구취지 중 일부만 인정(일부승소)됐다. 형사사건과 민사사건 모두 항소 중이어서, 최종 확정 판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형사사건을 맡은 1심 재판부는 보호의무가 있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고, 다만 학교 직원으로서 관리의 전문성을 기대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는 등의 이유로 형을 다소 낮게 잡은 이유를 설명했다.

문제는 민사사건의 1심 판결. 재판부는 "펜스의 매트는 원고와 같은 쇼트트랙 선수들의 훈련장으로 이용돼 안전사고의 위험이 높은 이 사건 아이스링크의 안전장치로는 하자가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인정하고 "시설 책임자와 시설관리 실무자는 위 하자가 있다는 점을 알았거나 알 수 있었음에도 위 매트를 안전한 것으로 교체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도 판결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후 판결에서 "하지만 매트를 이 사건 펜스에 한 겹으로 부착한 것은 원고인 점, 남은 매트 여분을 위 펜스 코너 부분에 추가로 붙일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은 점" 등이 인정된다며 책임 비율을 하향 조정했다.

간단히 말하면 시설을 빌려 운동 연습을 하러 들어온 대학생 선수 A씨가 '왜 한 겹으로만 펜스에 매트를 둘렀는지' 문책당하는 상황이 된다. '알아서 펜스를 더 튼튼히 보강하고' 탔으면 사고가 일어났어도 피해가 적었을 것이므로, 그 비율을 피고(학교법인 및 광운대 직원들) 측과 '쌍방과실로 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상식에 대단히 어긋나는 판결이라는 지적이 이 부분에 쏟아지는 이유다. 체육시설을 이용할 때, 운동 선수들은 오히려 일반 이용객에 비해 높은 비용을 물고 있다.

이 사건 광운대 아이스링크의 경우도 '일반이용자'와 '대관이용자' 사이에 여러 측면에서 다른 조건으로 아이스링크를 사용하게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반이용자가 △이용료 8000~9000원 조건으로 △정빙작업(스케이트날에 의해 얼음이 패이는 것을 중간중간 정비해, 안전사고 가능성을 줄이는 일)도 2~3시간마다 1회 △안전매트 제공 의무 자체가 없음에 비해, 대관이용자는 △12만~15만원으로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을 내며 △50분 사용 후 10분 정빙을 받도록 돼 있고 △안전매트를 아이스링크장에서 제공하도록 돼 있다.

아울러 1심 민사재판을 진행한 재판부는 일실수입(사고로 인해 얻지 못하게 된 손실) 산정에서도 운동선수의 미래를 대단히 푸대접했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

A씨는 이 사건 피해액 일실수입분 기준으로 60세 정년 기준, 도시 일용노동자 품삯을 기준으로 금액을 평가받았다.

'선수의 미래' 저평가, 여명까지의 개호비 등 산정도 홀대

그러나 그는 문제의 사고가 없었다면, 향후 선수 그리고 은퇴 이후에도 코치 등으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었다. 비록 국가대표 주전선수로 선발된 적은 없었으나 국가대표 후보선수(상비군)로는 선출된 기록이 명확하고 그와 비슷한 혹은 못한 경력자들이 대부분 전업 쇼트트랙 선수로 활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업계에서는 국내 쇼트트랙 스케이팅의 경우 유치원생부터 대학생까지 선수 저변이 두껍고 인기가 높아 코치 등 지도자로 나갈 자리도 많은 편이다.

따라서 적어도  실업계 선수(쇼트트랙) 평균 근속연수나, 코치 등 지도자의 평균 근속연수 정도는 산정받아야 한다는 게 스포츠계의 탄식이다. 물론 운동선수의 수명이 짧다거나, 평생 운동이나 관련 산업으로 밥벌이를 하는 게 어렵다는 속설이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늙어서까지 앉아서 일할 수 있는 사무직원 등 보통의 직종에 비교한 이야기다. 적어도, 위의 두 근속연수를 보면 실업 선수 평균 근속 3.4년, 여기에 더해 코치 근속 연수 7.8년은 미래를 보장하는 것으로 판단해야지, 나름 전도양양한 이가 선수 생활을 하다 사고를 당했는데 '미래가 불명확하니 무조건 하루하루를 버는 무기술의 일용노동자 기준으로 지금부터 미래를 모두 평가하자'는 건 가혹한 처사로 볼 수 있다. 그 논란은 둘째치고, 수많은 스포츠 영역의 선수와 지도자 등 유관 종사자들의 명예감정과 미래를 모두 저평가하는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치료와 보살핌에 드는 일명 개호비용 계산도 향후 항소심 등에서 치열한 공방전이 불가피한 요소다. 1심 재판부는 A씨의 경우 1일 6시간 성인 여성 1인의 개호가 필요하다는 소견을 제출받았다. 이는 권위있는 D대학 병원의 촉탁자료였다.

우리나라 대법원 판례에는 전문가 의견이나 촉탁, 감정 등에 판사가 구속되지는 않고 상식적으로 판단할 재량을 열어주고는 있다. 그러나 이런 재량이 어디까지인지가 논란이다. 이 사건 1심 재판부는 D대 병원의 판단을 별달리 길거나 합리적 설명 혹은 논증하는 일 없이 상반신은 움직일 수 있으니 1일 4시간 1인 개호를 받으면 충분할 것이라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따라 피고 광운학원(광운대의 재단), 그리고 그 직원들인 B씨, C씨 등이 물어야 할 배상액이 상당히 감액됨은 불문가지다.

건장하던 젊은 성인 남성이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경우에 사실 여성 1인이 개호한다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어찌 보면, 거칠게 표현하기로는 평생 누군가 항시 졸졸 따라다니며 시중을 들 비용을 모두 산정하여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까지 책임을 지우는 게 사회통념상 불합리한 면이 있어서 부득이 감액하는 게 현실이다. 즉 사고를 낸 배상 책임자의 금전적 부담을 조정하는 게 사회 전체적으로 볼 때(사회운영상) 필요하므로 가장 절실하고 부득이한 개호를 평균적으로 판단해 배상이나 보상 처리 등에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개호 비용을 너무 많이 물릴 수도 없으나 불합리하게 혹은 타당한 설명 없이 감액하는 것도 상식적이지 않다. 이런 영역이야말로 전문가 의견을 상당히 존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법원 바깥에서 나오는 이유다.

1일 6시간 개호를 받아야 한다고 대학 산하 병원에서 제출한 유력한 의견을, 재판장이 님의로 4시간 내에 개호가 필요한 즉 하반신을 움직이거나 해야 하는 일을 모두 몰아서 처리하라는 식으로 하는 게 과연 법적 정의일까 논란이 일고 있는 것.

결국 우리나라 법원 전반이 이 광운대 아이스링크 사건 1심을 맡았던 민사재판과 같은 시각이라면 그건 운동 선수에게는 너무도 각박한 일일 것이다. 사고로 미래를 잃은 선수에게 △선수와 코치 등 전문가로서 얼마든지 일할  수 있었던 '기회비용'에 대해 전혀 무시하고 무기술 일꾼과 같이 처리하는 무신경함 △신체 고통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할 불편에 대해 개호 비용을 터무니 없이 깎는다는 논란을 법원이 선물해 주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천적으로 △선수 활동과 훈련 중에 꼭 받아야 할 서비스나 안전배려 등을 심지어 많은 비용을 내면서도 받지 못하는 게 당연하다는 첫단추를 끼우며 판결문을 쓰고 있다면, 그건 '애초 운동 (선수를) 하지 말라'는 직업적 차별이 아닐까? 그래서 이 일을 '법조계 주변에서 법리상으로는' 단순한 비율 산정의 문제나 불만으로 보겠지만, 스포츠계에서는 사실관계를 전부 부정당해서 새롭게 다퉈야 하는 경우 이상의 '존재와 자존심을 전부 부정당한 듯한' 막막함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민사소송 1심 판결의 항소심이 서울고등법원으로 올라간 상태라, 이번 가을과 겨울 진행 과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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