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범석의 라멘기행] 스타일이 자유분방한 '카고시마라멘'  

2018-09-28 11:14:02

- "라멘은 국민식, 라멘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

[프라임경제] 큐슈지역 라멘으로 하카타와 쿠마모토 라멘이 많이 알려져 있지만, 카고시마(鹿児島)라멘도 이에 못지않게 매력적이다.

카고시마라멘은 기본적으로 직선면을 사용한 톤코츠 계열이다. 하지만 쿠루메(久留米)를 원조로 하는 큐슈의 다른 지역에 비해 스프 농도가 옅고 맛이 순하다. 다시를 낼 때 돼지 뼈에 닭 뼈와 야채를 함께 넣고 비등점과 시간을 조절해 한다쿠(半濁, 탁함이 옅음) 상태로 끓여내기 때문이다. 면은 간수를 넣지 않은 흰 면을 사용한다. 굵기도 제각각이다. 여기에 점포마다 독창적이고 다양한 요리법이 가미된다. 이쯤 되면 라멘의 정체성이 모호해질 수밖에 없다.

▲챠슈가 독특한 노보루야의 카고시마라멘. ⓒ 홈페이지 캡처

굳이 공통점을 들자면 '흰색 면, 부드러운 톤코츠 국물, 가격이 다소 비싼 편' 정도다. 가격이 높은 것은 점포마다 특화된 면을 사용하느라 제면원가가 올라가서다.

보통 지역을 대표하는 고토치라멘은 오리지널 점포 한 두 곳을 중심으로 유사한 스타일이 주변에 퍼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카고시마에는 표준으로 지목할 만한 라멘이 없다. 특징이 없는 것이 특징인 라멘이 카고시마라멘이다.

카고시마는 오키나와의 영향으로 다른 지역과 달리 일찍부터 돼지고기를 먹어 왔다. 카고시마의 전신인 사츠마한(薩摩藩)은 1609년 유구왕국(현 오키나와)을 복속시켜 속국으로 삼는데, 이때부터 돼지고기 식용문화가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돼지고기 특유의 비린내를 중화시키기 위해 마늘이나 볶은 파를 사용하는 조리법도 어렵지 않게 터득했을 것이다. 이러한 식문화를 가진 카고시마가 라멘을 도입할 때 전통방식을 응용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푸드 테마파크의 개척자 이와오카(岩岡)씨는 카고시마라멘을 "카고시마 사람들의 자주성 강한 성격, 연구는 하되 모방하기 싫어하는 전통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보고 있다. 라멘을 먹을 때, 얼음물 대신 차(茶)가 나오고 단무지가 제공되는 것도 카고시마의 라멘 문화다. 츠케모노(漬物)라 부르는 단무지는 한국의 짠 무와 외관과 맛이 비슷하다.

지역을 대표하는 노포로는 1947년 창업한 노보루야(のぼる屋)를 비롯해 노리이치(のり一)·코무라사키(こむらさき)·토겐(桃源), 1972년 창업한 카고시마라멘 가루후텐몬칸(我流風天文舘)본점 등을 들 수 있다. 코무라사키는 쿠마모토라멘 편에서도 소개한 적이 있지만 두 점포는 서로 관련성이 없다. 코무라사키(濃紫)는 보라색 열매를 맺는 키 작은 낙엽수로 일본인들이 좋아하는 관상수다.

카고시마의 노포 중 2014년 폐업했다 다시 창업한 노보루야의 스토리가 흥미롭다. 노보루야는 폐업 때까지 카고시마의 인기 라멘 집 중 하나였다. 연로한 여주인과 비슷한 연령대 여직원이 고객을 맞고 있었는데, 점포를 어어 갈 아들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점포를 휴업하면서 후계자를 찾았으나 사정이 여의치 않아 문을 닫았다. 

갑작스런 폐업에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던 중, 열혈 팬 한 명이 전 주인의 허락을 받아 다시 문을 열기로 한다. 하지만 제대로 된 레시피도 없이 오너의 감(感)에 의존해 온 맛을 재현하는 데 상당한 시간이 소요됐다. 다른 업자의 협력을 받고 총 35회의 시식회를 여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2016년 다시 오픈하게 됐다. 

시식회에는 연인원 500여명이 참가했고, 많은 노보루야 팬이 헌신적으로 협력했다 한다. 눈물 없이 먹을 수 없다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카고시마 시청 근처 대로변에 위치한 두 번째 노보루야에도 늘 내외국인 행렬이 늘어선다. 참으로 꼼꼼하고 재밌는 사람들이다.

◆카고시마현과 카고시마시

사쿠라지마 활화산, 세계유산 야쿠시마(屋久島), 우주센터가 있는 타네가시마(種子島), 사츠마도자기로 더 잘 알려진 카고시마. 큐슈 섬 남쪽 카고시마만을 낀 반도 두 개와 태평양상의 많은 섬을 행정구역으로 두고 있어 남북 간 거리가 600㎞에 이른다. 

고대국가 시절 중국·조선·동남아시아 교역 거점 중 하나였고, 나가사키와 함께 왜구의 근거지가 되기도 한 곳이다. 중세 휴가(日向)국에서 갈라진 사츠마(薩摩)와 오스미(大隅) 지역이 에도시대 사츠마한(藩)으로 통합된 후 1873년 카고시마현이 된다.

1543년 한 포르투갈 선박이 표류하다 정박한 곳이 카고시마에서 남쪽으로 100여㎞ 떨어진 섬 타네가시마라는 섬이다. 그 배로부터 조총을 전해 받은 일본은 동북아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다. 100년 넘게 끌어온 전국시대의 지루한 싸움이 신무기에 의해 손쉽게 결판나자, 이번에는 명나라를 치겠다며 조선을 침공해 임진왜란을 일으킨다.

근세에 들어오며 카고시마는 사이고 타카모리(西郷隆盛)라는 걸출한 인물을 배출한다. 메이지정부를 탄생시킨 유신 3영웅 중 1인인 그는 신정부에서 정한론(조선을 정벌하자는 주장)을 주장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고향에 돌아와 사설군사학교를 연다. 

그 학교에 새로운 체제에서 소외된 무사출신 등 2만여 명이 모여들고, 이 세력이 1877년 일본의 마지막 내전으로 불리는 세이난(西南) 전쟁을 일으킨다. 평소 의리와 인정을 중시하던 그는 생도들에게 옹립돼 정부군과 맞서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자결로 생을 마친다. 사츠마한의 하급무사 아들로 태어나 한 시대를 풍미한 이 영웅은 카고시마의 전설이 됐다.

카고시마현은 일본 내 유수한 농업지역이다. 농업생산량이 큐슈지역 1위, 전국 3위를 차지한다. 고구마(사츠마이모)·강낭콩·카고시마 차(茶)의 주요 산지이고, 소주와 돼지고기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특히 토쿄에서 카고시마 하면 돼지고기를 떠올리는 사람이 80%에 달할 정도로 맛과 품질이 뛰어나다. 지명도가 낮지만 장어양식도 1위를 기록한다. 카고시마현에는 19시·8군·20쵸(町)·4촌에 인구는 160만, 현청소재지를 카고시마에 두고 있다. 1989년 한국 전라북도와 자매맹약을 맺었다.

현의 중서부 카코시마만 서안에 위치한 카고시마시는 '동양의 나폴리'로 불린다. 시가지에서 바라보는 사쿠라지마(桜島)를 풍경이 나폴리에서 베수비오 화산을 보는 것과 흡사하다 해 붙여진 이름이다. 카고시마라는 지명은 지역 심벌인 사쿠라지마의 사방이 절벽(고어로 카고)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카고시마시는 1341년 시마즈(島津)가문의 6대 영주가 시미즈(清水)쵸에 있는 토후쿠지(東福寺)성을 접수하며 도시로 모습을 갖춰나가기 시작했다. 중세시대 선교사가 기독교 전파를 위해 이곳에 처음으로 상륙하고, 에도말기 일본 최초로 제련소가 건설되는 등 서양문물의 유입창구로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세이난전쟁과 1945년 연합군 대공습으로 유서 있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카고시마시는 2011년 큐슈신칸센이 개통되며 쿠마모토와 후쿠오카 등 대도시로의 이동시간이 대폭 단축됐다. 시는 이러한 변화가 새로운 발전의 기회가 될 것으로 기대하는 한편, 스트로효과에 의한 인구감소를 염려하고 있다. 

실제로 2010년 4월 60만5000명이던 인구가 금년 4월 59만6000명으로 9000명 이상 감소했다. 카고시마시 중심은 사츠마 8대 영주가 천체관측을 위해 세운 텐몬칸(天文館) 일대 상업지역이다.

◆명소 소개

△시로야마(城山) 공원
세이난전쟁 최후의 격전지였던 산성으로 국가사적 및 천연기념물로 지정. 중세 지역토호가 쌓은 성을 시마즈가문이 접수해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예비성으로 관리. 1614년부터 입산금지 구역으로 지정돼 원시산림 상태로 보존, 1906년부터 일부를 시립공원으로 개방, 해발 107m 전망대는 시내를 한 눈에 내려다 볼 수 있고 야경을 조망하는 포인트로 유명. (교통편) JR 카고시마중앙역 버스 20분, 택시 8분.

△사쿠라지마(桜島)
카고시마만(금강만)에 위치한 화산지대, 원래 섬이었으나 1914년 분화에 의해 오스미반도와 연결, 동서12㎞·남북10㎞·둘레55㎞·면적77㎢, 일본화산 중 비교적 생성 연대가 짧아 활동이 왕성, 국제 화산학회가 지정한 16개 특정(위험)화산 중 하나, 1117m 최고봉 북악을 비롯해 중악과 남악 등이 있음, 남악이 화산활동 중인 봉우리로 3.5㎞ 떨어진 유노히라(湯之平)전망대(해발 373m)에서 관찰가능, 섬 내 약 5000명 주민 거주. (교통편) 카고시마중앙역 버스10분 수족관입구→도보7분 페리터미널→페리15분 사쿠라지마항,

△이부스키(指宿)온천
연간 국내외 관광객 300만명이 방문하는 큐슈지방 온천의 명소, 스리가하마(摺ヵ浜)온천 검은 모래찜질이 유명, 숙박 없이 해안에 건설된 공영시설 이용 가능, 온천은 용출온도 82℃의 나트륨 염화물성분, 1일 12만 톤 분출되는 온천수는 양식과 농업용수로도 이용. (교통편) JR중앙역에서 이부스키 마쿠라자키(指宿枕崎)선 60분 이부스키역 도보 5분.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장범석 푸드 칼럼니스트 bsjang5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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