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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비환자, 더 긴 세월 알아서 고생하라' 방치하는 법원

60세 정년연장법 등 사회추세 못 따라가…개호 인정 인색해 넓어지는 사각지대 논란

임혜현 기자 | tea@newsprime.co.kr | 2018.10.01 10:15:20

[프라임경제] '고령화사회'를 넘어서서 '초고령화시대' 담론이 부각되고 있다. 기대수명이 늘고 경제활동도 더 오래 하는 시대가 닥쳐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막상 우리 사회는 개인이 어느 연령대까지 일하고 삶을 꾸려갈 수 있을지, 이를 어떻게 도아야 할지 스케치하는 것에 아직 완벽한 청사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기회를 잃게 됐을 때 어떻게 이를 보상(혹은 배상)하고 다른 방법을 강구해 줘야할지에 대한 고민 역시 대단히 인색하다.

선천적 장애인 외에도, 사고나 질병으로 장애를 입는 후천적 장애인 규모가 적지 않다. 그러나 이들의 피해와 삶에 대해서 법원이 지나치게 소극적인 판단 태도를 보이고 있다.

장애인으로 살아갈 '남은 기간' 길어지는데, 인정 않는 법원

최근 1심 판결이 나온 한 손해배상 사건은 장애인을 둘러싼 각종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광운대 아이스링크에서 연습 중이던 A씨(당시 20대 체육 전공 대학생)는 사고를 당했는데, 안전 시설 부족으로 피해가 확대돼 하반신 완전마비를 입었다.

사회 평균적으로 기대수명이 늘어난다는 것은 불의의 사고시 여명(잔여수명)도 길어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물론 사고를 입은 경우 병상에서 평온하게 일반인과 동일한 수준으로 여생을 누리지는 못한다. 이런 경우 여명은 일반 시대수명에 비해 짧다는 게 의료계 통설.

하지만 A씨 사건에서 보면, 법원이 근래 논의되는 장애인의 여명 판단 연구결과에 귀를 닫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이 사건에서 1심 재판부는 금년 4월 판결에서, 감정일 기준 41.5년의 여명이 예상된다고 판단, 이를 기초로 각종 손해 배상 규모를 산정했다. 이는 A씨와 같은 하지 완전마비 환자의 경우 일반인 대비 약 77%의 여명을 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마비환자를 둘러싼 일부 판결 태도가 보수적이다 못해 사회 현실에 지나치게 동떨어진 태도로 모순을 낳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은 휠체어를 이용해 버스에 탑승 중인 마비환자. ⓒ 뉴스1

과거 21세에서 40세 즉 가장 왕성한 대외적 활동이 예상되는 연령에서 불의의 사고 등으로 하반신이 마비되는 경우 향후 기대여명은 일반인 대비 71~81%로 의료계에서는 판단한 바 있다. 다만 이에 기초되는 연구는 1940~1990년에 조사된 자료라는 지적이 나온다.

오히려 근래 미국 재활의학회지 등에 실린 자료는 1970년대 이후 척수손상 환자의 여명은 빠르게 늘고 있다고 한다. 2012년 발간된 'Life Expectancy after Spinal Cord Injury' 등에서는 25세 기준 하반신 마비 환자의 여명이 일반인 대비 88% 이상이라는 '도발적인' 결론까지도 내놓고 있다.

살아갈 날이 더 많이 남은 것 같은데 이를 둘러싼 판단 문제에 지나치게 보수적인, 과거의 기준이 답습된다는 것은 문제다. 특히 의료 등의 발전으로 더욱 많은 날이 기대되는 '앞길이 창창한' 시기에 사고를 당한 경우라면 현실적 감각이나 가까운 미래의 기대치에 상당히 괴리된 기준을 고수하는 법원에 문제 제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여명 산출(계산)의 오류 혹은 예상치 못한 연장 등에 대해서는 '일단 합의(조정 등에 따른 청구권 포기)가 있었어도' 추가로 다른 판결을 구할 수도 있다.

2001년 대법원에서 다룬 사안을 보면, 교통사고로 심한 뇌손상을 입고 식물인간 및 사지마비 상태가 된 피해자의 여명이 위 사고시로부터 약 6년 2개월 정도로 예측된다는 감정결과를 기초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합의가 이뤄졌으나, 이후에 피해자의 여명이 종전의 예측에 비해 약 8년 3개월이나 더 연장된 경우 이른바 '추가청구권'을 인정한 바 있다. 이 추가청구권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상당한 경우가 다뤄져 판례도 축적돼 있다.

A씨의 경우처럼 기대되는 여명이 일발인의 70%대냐 80%%냐의 두자릿수 문제로 벌어지면 10년여의 차이가 생긴다. 대법원까지 올라가면서 치열하게 다툰 2001년 판례가 8년여의 여명을 둘러싼 논쟁인 것을 감안하면, 나중에야 다른 사건으로 다뤄 바로잡으면 된다고 편하게 말하는 것이 사치이자 어불성설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애초 의학 등의 발전 동향 등을 고려해 자료 산정을 상식적 수준으로 계속 고쳐나가는 노력을 법원이 하면 이런 틈새를 상당 부분 '미리' 메울 수도 있는데, 나중에야 새롭게 다시 일종의 '착오이론'에 기반해 불필요한 수고를 재차 반복하도록 할 필요가 있는지 문제다. 

◆'정년연장' 고민 없고, '건강하지 않은 삶' 오히려 강요 

일명 '60세 정년연장법' 통과로 근로 가능 연령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크게 높아진 바 있으나, 법원에서 아직 제대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과거 정년 연장이 의무화되기 전에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평균 정년은 55세 전후였다. 대한민국 기대수명이 80세를 넘어선 상황이고 숙련된 근로자의 은퇴 연령을 늦출 필요 역시 높다는 문제의식에서 제도가 바뀐 것이다.

과거 확립된 판례를 보면 도시 일용노동자의 근무가능연령은 60세 기준으로 돼 있었다.

하지만 이 60세 기준의 형성 기준은 과거 기능직 공무원의 정년이 58세, 기초연금 수령 연령대가 60세이던 점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된 것이다. 현재의 정년 연장이나 연금 수급 연령의 상향 조정 패턴과도 이미 대단한 간격이 있다.  

2016년 12월 수원지방법원에서 나온 판결과 금년 5월 서울중앙지방법원(항소부)에서 나온 판결 등에서는 이 같은 가동가능(노동 및 근무 가능)연령을 더 높게 잡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놓고 있다. 판결에서 "공사현장에서도 60세 이상의 인부를 흔히 볼 수 있는 현실과의 괴리"를 언급하고 있는 것.

그런데 A씨 사건은 60세 노동자 기준으로 기대수입 손실을 계산했다. A씨가 일용노동자가 아닌 스포츠 선수 혹은 코치 등으로 상당 기간 일할 수 있는지 논란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앞으로의 일할 수 있는 '기대치의 범위'에서도 일을 맡은 재판부에 따라 과거의 입장과 현실을 고려한 판단이 들쑥날쑥하게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은 항소심 내지 대법원에서 조율할 문제지만, 일을 겪는 개개인으로서는 법원이 비상식적이라는 불망을 자칫 가질 수 있는 위험요소다.

'개호' 기준에서 지나치게 짠 판결을 내리는 재판부가 적지 않다는 점도 마비환자가 '남은 기간을 건강하게'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는 큰 문제점이 있다.

A씨 사건의 경우 모 대학병원과 타 병원 등 2곳의 전문가가 1일 6시간, 성인 여성 1인의 간병(개호)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제기했으나, 1심 재판부에서 1일 4시간으로 하향조정했다. 이 점도 주요한 재판 불복(항소) 사유로 꼽히고 있다.

마비가 일어난 환자는 혼자 움직일 수 없다. 물론 종일 온갖 수발을 타인이 들어주도록 비용 산정을 할 수는 없겠지만, 각종의 최소한의 필요(필수불가결한 이동과 용변 처리 등)를 생각하면 하루 사람이 깨어있는 시간을 감안해도 6시간조차 넉넉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이를 4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하는 것은 용변 등 각종 필요를 '몰아서 처리'하는 게 가능하다는 기계적인 사고방식이고 인격적인 처우가 아니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더욱이, 개호 지원을 부족하게 받는 마비환자는 자신이 사용 가능한 부분을 부이 무리하게 사용할 수밖에 없고 이런 무리수는 여명 단축 위험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의료계에서는 말한다.

사회적으로 기대가능한 여명이 늘어난 점을 법원에서 제대로 고려해 주지 않고, 오히려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이 여명을 갂아먹도록 강요한다면 이는 대단히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과거 마비환자 대비 오늘날의 마비환자들이 누리고 기대하는 바가 더 커야, 그리고 이를 사회가 뒷받침해 줘야 '발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일부 판결은 이런 대전제에서 비껴서 있는 셈이다. 법원 전체가 아닌 일각의 태도겠지만, '더 긴 세월을 알아서 고생하다 죽으라'는 모순은 분명 문제다. 빠른 시간 내에 결국 통일적이고 합리적인 해석을 대법원 뿐만 아니라 법원 전반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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