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혁재의 건강창작소] 나름다움의 텃밭

2018-10-16 22:32:10

[프라임경제] <건강창작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아리따운 진정성을 아름답게 창작해 가는 생생한 텃밭입니다. 그런 텃밭을 함께 만들자는 제안을 담고 있는 이름입니다. 오늘은 첫날이니 이 '생생한 텃밭'을 안내하려 합니다.

먼저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 독자들은 '건강'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한마디는 무엇일지요? 서로 여러 가지로 다를 텐데, 그럴 때마다 나는 '생생하다'라는 낱말을 떠올립니다. 식물이나 동물이나 사람이나 시들거나 지치지 않고 살아 있는 상태를 '생생하다'는 표현만큼 잘 느끼게 해주는 낱말이 없다고 나는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사서삼경의 하나인 '주역(周易)' 계사상전(繫辭上傳)에서도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라는 글줄이 있습니다. '낳고 낳음을 사귀어-바뀜(易)'이라고 이른다'고 옮길 수도 있겠습니다. '생생(生生)'만을 좀 더 풀어보자면, <낳고 낳음이 끊이지 않는 것>, <서로 함께 살도록 돕는 것>, <어미가 보살피는 '살림'과 어린새끼가 자라는 '살이'가 함께 만나는 '살림살이'>라는 뜻이 됩니다. 따라서 '생생지위역'은 <자연본성(nature)과 도시문명(civilization)과 인간(human)이 서로 사귀고 함께 바뀌는 끊임없이 살아있는 움직임>이라고 필자는 생각하곤 합니다.

'주역'을 영어옮김한 제임스 레게(James Legge)는 '생생(生生)'을 <프로덕션-앤-리프로덕션(production and reproduction)>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생생지위역(生生之謂易)'이란 글줄은 <프로덕션-앤-리프로덕션>이 체인지(의 과정)이라고 불리는 것이다(Production and reproduction is what is called (the process of) change)라고 영어로 옮기고 있습니다. 프로덕션이나 리프로덕션 그리고 체인지를 따로 한글옮김 하지 않은 까닭은 느낌을 비슷하게 옮길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것이니 낯설더라도 이해해 주길 바랍니다. 

나아가 <건강창작소>에서는 여러 생생함들 중에서도 개인들의 생생함이 어떻게 창작되어 왔고, 앞으로 어떻게 창작해갈지를 깊고, 넓고, 높고, 부드럽게 살피려고 합니다.

여기서 '개인'은 '인디비두얼(individual)'이라는 학문용어의 옮김말입니다. '인디비두얼'은 라틴어 '인디비둠(individuum)'에 기원을 두고 있습니다. '원자(atom)'과  마찬가지로 '더는 나눌 수 없는 무엇'이라는 뜻인데, 주로 인간에게 쓰여 '어떤 단일한 인간존재(a single human being)'를 가리킵니다. 긴긴 진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지금 지구에 함께 살고 있는 70억 인간들 모두 원칙적으로는 개인들입니다.

하지만, 지구에서 사는 모든 개인들이 한껏 자유롭지는 않습니다. 정치학자인 필립 페팃(Philip Pettit)은 <다른 사람의 '지맘대로의 의지(arbitrary will)'로부터의 자유>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건강창작소>는 이런 '지맘대로의 의지'에 휘둘리지 않는 <넌-도미네이션으로서의 자유(freedom as non-domination)>를 누리는 개인들이 더 늘도록 고민하고자 합니다. 여러 까닭으로 아직은 자유롭지 않은 개인들이 더 많을 텐데, 그 까닭을 찾아 여럿의 생각(thought)과 의지(will)와 판단(judgement)이 담긴 <자유로운 개인되기 처방들>을 차근차근 모으려고 합니다.

쉽게 말해, 자유로운 개인들은 누군가를 만나든지 괜히 주눅이 들어 눈길을 피하지 않습니다. 또한 누군가가 눈을 내리깔지 않는다고 기분 나빠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서로가 자기 내면의 취약한 민낯을 드러내고 함께 공감하고 연민의 이모션(emotion)을 주고받는 생생한 관계를 만들어 냅니다.

그러한 진정성(authenticity)을 잃지 않도록 돕는 살아있음이 <자유로운 개인들의 생생함>입니다. 이런 '생생함'이야말로 수치심(shame)과 경멸(contempt)과 질투(jealousy)가 부추기는 차별(discrimination)을 이겨내고, 나름 에고(ego)를 자아(self)로 길러내는 힘이 됩니다.

나아가 개인들은 나름의 '아리따운 것(the aesthetic)'과 나름의 '아름다운 것(the beautiful)'을 모두 담고자 애를 씁니다. 아리따움은 진정성(authenticity)과 짝을 맺고, 아름다움은 창작성(creation)과 짝이 맺을 때가 어울린다고 필자는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개인들은 아리따운 진정성을 길러, 비로소 아름답게 창작되기를 애쓰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으로 <건강창작소>에서는 '나름다움'이라는 새로운 낱말을 만들어 부르는 게 어떨지 조심스럽게 제안해봅니다. <자유로운 개인들이 아리따운 진정성을 아름답게 창작해 가는 생생함>이라는 뜻으로 말이지요.

기억나는지요? 글 첫머리에서는 <건강창작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진정성을 나름대로 창작해 가는 생생한 텃밭이라고 했습니다. '나름다움'이란 낱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건강창작소>는 '나름다움의 텃밭' 또는 '나름다운 텃밭'이 되겠네요.

길게 돌아오기는 했지만, 오늘 첫 만남에서 꼭 하고 싶었던 표현이 바로 이 글줄입니다. 앞으로 '나름다움'이란 씨앗이 텃밭에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생명의 나무가 될지 함께 지켜보고 따로 또 같이 '나의 나름다움'을 키우면 좋겠습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텃밭'이란 낱말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터'를 볼까요. 텃밭에서 터는 집터를 가리키지만 터는 문명생활이 나고 자라는 곳입니다. 집뿐이 아니라 도시문명(civilization)은 모두 터에서 길러지게 됩니다. 인류문명의 '나름다움'의 역사에서, 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공간들이자 또한 여러 공간들에 겹겹이 쌓인 시간들입니다.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s)이 호모 파베르(homo faber)가 되어 그 터에 시간을 새기고 인류의 기억을 물려 줬습니다. 도시문명에 새겨진 인류의 공통 가치를 담은 기억이 바로 터일 것입니다.

또한 ‘밭’은 바탕이 되는 땅입니다. 콩을 심으면 콩을 내고, 팥을 심으면 팥을 냅니다. 그래야 밭이고 바탕이 됩니다. 너무 자주 겪어서 우리는 의심하지 않지만, 콩에서 콩이 나오고 팥에서 팥이 나오는 일은 기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여러 사귐과 바뀜 가운데 바로 그런 정직함이 '나름다움'을 비로소 경작하게 합니다. 이렇게 <건강창작소>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아리따운 진정성을 아름답게 창작해 가는 생생한 텃밭>, <나름다움의 텃밭>, <나름다운 텃밭>이 됩니다.

오늘부터라도 이 텃밭을 함께 일궈보면 어떨지요? 여러 개인들이 함께 말입니다.

신천 함소아한의원 대표원장 / MBC 본사 의무실 한방주치의 / EBS 역사드라마 <점프> 한의학 자문 / 연세대 물리학과 졸업 / 경희대 한의학과 석사졸업·박사수료





이혁재 원장 press@newsprim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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