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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공공부문 정규직화인가?

기관에 공 넘긴 노동부…'자회사'형 문제점 속속 드러나

조규희 기자 | ckh@newsprime.co.kr | 2018.10.30 14:47:47
[프라임경제] 문재인 정부의 고용 관련 핵심 정책 중 하나인 공공부문 정규직화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늘고 있다. 꼼수가 판을 친다는 지적인데, 그 중심엔 자회사형 전환 모델이 자리잡고 있다.

수많은 이용객이 인천공항을 이용하고 있다. ⓒ 연합뉴스



환노위 국정감사에서 김동철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인천국제공항공사, 한국공항공사, 조폐공사, 가스공사, 마사회 등 주요 대형 사업장이 자회사를 설립해 간접고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당 의원인 송옥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자회사 설립 채용 방식은 간접고용 관계를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라며 자회사 모델이 정규직화 핵심 모델로 자리하는 현 상황을 우려했다.

차별적 조건은 개선되지 않은 채 외주 업체에서 자회사로 소속만 변경된 무늬만 정규직이라는 지적. 또 다른 형태로 차별받는 '중규직'이 양산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공공부문 정규직화는 문 정부의 야심찬 정책이다. 17년 5월 취임 뒤 첫 외부 일정으로 방문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 문 대통령은 "인천공항공사를 포함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당찬 선언을 했다. 

인천공항공사는 NICE 기업정보 기준으로 평균연봉 7000만원을 상회하는, 시쳇말로 '신의 직장'이다.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반색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대통령이 직접 정규직화 의중을 밝힘에 따라 최저 수준의 처우에 머물러 있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한 줄기 빛을 봤다.

비단 인천공항공사뿐만 아니라 주요 공기업과 정부기관, 지자체 소속 20만5000명을 2020년까지 순차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다는 결정이 발표되면서 노동자의 기대감은 최고치에 달했다.

◆공공기관 타의 모범 보여야…노사 협의 기반 정규직 전환 필요

그러나 장밋빛 기대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사라지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정책 시행 과정에서 노사 간 입장차가 쉽게 조율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기관은 직고용으로 발생되는 비용이 부담스럽고, 노동자는 정규직으로 전환되면서 누릴 수 있는 혜택을 포기하기 어렵다. 

둘 간의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서, 전환 계획을 발표한 기관은 있어도 전환이 완료됐음을 선언한 기관은 찾기가 드문 형국이다.

새롭게 고용노동부 장관에 취임한 이재갑 장관은 "공공기관이 모범적 고용주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규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재갑 장관은 "공공기관이 모범적 고용주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 연합뉴스



단, "정규직 전환 과정에서 국민의 추가 부담이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며 대원칙을 확인하고 "자회사도 하나의 방식으로 인정하고 직접고용할지 자회사로 할지는 각 기관 상황에 맞춰 노사협의체에서 결정하도록 가이드라인이 내려갔다"는 입장을 밝혔다. 자회사 설립에 대한 책임을 기관에 넘긴 셈이다.

장관이 이 같은 입장을 밝힐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총액인건비 제도가 직고용의 장해 요소로 자리하고 있으며 △정규직 전환 시 실익이 낮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보여진다.

◆기관도 노동자도 제도 실익에 의구심

총액인건비 제도는 각 행정기관이 인건비 한도에서 인력의 규모와 종류를 결정하고, 기구의 설치 및 인건비 배분 자율성 내에서 결과를 책임지는 제도다. 120다산콜재단 설립 단초를 제공한 제도이기도 하다.

서울시는 2014년 12월 직접고용 방침을 발표했으나 총액인건비 제도와 타 업체와의 형평성 등을 이유로 공무직 전환 대신 재단 설립을 결정했다.

최근 본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는 있지만, 이와는 별개로 기관에선 여전히 정규직 전환을 부담스럽게 생각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규직화를 준비 중인 한 기관은 한정된 예산으로 인해 노동자의 처우수준 개선의 여지가 없고, 오히려 노사갈등의 소지가 있다고 분석했다. 더불어 예산의 증액 없이는 고용 규모 축소와 운영 위축에 의한 대국민 서비스 질 저하를 걱정해야 할 수도 있다고 털어놨다.

노동자 역시 정책 발표 초기에 비해 기대감이 많이 떨어졌다. 오히려 정규직화로 피해를 입는 게 아니냐며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한 노동자는 "정규직화가 승진, 직무 전환 기회를 박탈하는 이유가 될 수 있다"는 비관적 예상을 내기도 했다.

아웃소싱 사 정규직 신분인 노동자는 처우 개선 없는 정규직 전환이 무슨 득이 있냐며 의구심을 드러내기도 한다. 

◆120다산콜재단, 모범사례로 보기엔 역부족

지난 24일 서울시의회 권수정 의원이 개최한 '서울의 공공기관 비정규직 정규직화 현황진단과 과제 토론회'에서는 자회사 모델로 정규직화를 해결할 수 없음이 더욱 극명하게 드러났다. 여러 기관에서 자회사 설립 롤모델로 삼은 120다산콜재단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제기된 것.

김길남 정의당 서울시당 노동국장은 "자회사 형태의 정규직화로는 근본적인 문제인 노동조건 차별을 개선할 수 없다"며 자회사가 정규직화의 솔루션으로 비춰지는 데 반대의견을 제시했다.

그는 120다산콜재단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며 "고용안정 이외엔 개선된 부분이 보이지 않고, 오히려 임금하락을 보이기도 한다"며 "특히 실제 업무를 서울시 본청과 함께 진행해야 하는데, 노무관리 책임은 재단에 있어 충돌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문제는 서비스 질 저하라는 안 좋은 결과로 나타나고 있다. 120다산콜재단 설립 후 콜센터 평가 기본 지표인 응대율, 서비스 레벨이 큰 폭으로 저하됐다는 점은 이미 업계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화상담 1차 처리율 역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7월 재단이 서울시의회에 보고한 주요업무보고에 따르면 120다산콜재단의 1차 처리율은 78.8%에 불과했다. 82.1%의 낮은 목표치를 설정하고도 이조차 달성하지 못했다.

재단에선 목표 달성을 위해 접근·취급 권한이 필요한 행정정보 목록을 조사하고, 권한 부여를 위해 서울시·자치구·산하기관과 협력할 것이라는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뒤집어 생각하면 자회사의 업무상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탁상공론'으로 만든 정책이라는 오명을 쓴 채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할 위기에 봉착한 공공부문 정규직화. 완료 예정 시점인 2020년까지 만족스런 제도로 거듭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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